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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9) 절제

성령의 사람(9) 절제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지난 4년을 피땀을 흘리며 연습을 하고, 경기에 참여를 했지만, 메달을 따고 기뻐한 선수들은 소수이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눈물을 훔치며 돌아 갔습니다.

11090명의 선수가 참여를 했지만 금,은,동 합해서 매달은 339개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주는 메달은 서로 경쟁해서 이긴 사람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은 ‘경쟁’에 의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얼마나 충실했느냐?’ 에 따라서 주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다른 집과 비교해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에게 어떤 부모이었는가?

어떤 아버지 였는가? 어떤 어머니 였는가? 에 따라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밖에서 아무리 성공하고 잘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에게 어떤 목사였느냐?

하나님앞에 어떤 목사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앞에 ‘어떤 성도였는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올림픽선수는 ‘실력’으로 ‘메달’을 따지만 성도는 ‘성품과 인격’이 더 중요한 메달입니다.

왜냐하면 ‘성품과 인격’이 곧 ‘거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것도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게 하신 그 행함의 동기도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봉사를 해야 합니다.

선한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함’때문에 거룩해 지지는 않습니다.

‘거룩’은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더 중요한 것입니다.

 

  •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영혼이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날 때 지옥의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는 두가지 선물을 받게 됩니다.

태어나면서 받는 두가지 선물은 ‘외모와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때도 두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은사와 열매’입니다.

 

‘은사’는 ‘봉사의 일’을 위해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사는 재능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고전 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능력입니다.

 

‘은사’가 아무리 특출나도 ‘성품’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 ‘은사’는 부족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습니다.

‘방언, 예언, 치유..’등 은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품’이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난’을 하게 됩니다.

 

  •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사람, 중국사람, 일본사람은 같은 동아시아에 있으면서도 ‘민족성’이 다릅니다.

‘민족성’이 만들어 지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정치와 역사입니다.

그리고 지리적 구조와 날씨 역시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람의 기본적인 심성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어떤 환경과 사회속에서 자라는가? 에 따라서 민족성이 만들어 지게 됩니다.

 

전 세계에서 국가별로 미국을 좋아하는 순서를 발표 했는데 한국은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중에 상위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을 싫어 하는 나라들 편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으로 보이기에는 한국은 반미데모를 많이 하니까 미국을 싫어 하는 나라 같이 보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일본은 미국을 싫어 하는 나라에 있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본사람들의 모습이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얄밉게 보이지만, 일본사람들이 우리들을 볼때는 미련한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지난번에 ‘포틀랜드’에 갔을 때 ‘Japanese Garden’이라는 곳에 들려 보았습니다.

파사디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비하면 훨씬 못하고 별로 볼 것도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줄을 서서 방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소개하는 표시판을 보면서 충격을 받을 만큼 깜짝 놀랐습니다.

1958년 ‘포틀랜드’시가 일본의 ‘사포로’시와 자매도시가 되면서 기념으로 그 땅을 임대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만들어진 때가 1963년-67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1958년이면 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13년 밖에 안되고,

6.25 전쟁은 5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때입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시작된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치룬 큰 전쟁이 었습니다.

그런 전쟁이 끝나고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고, 그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들이 여전히 살아 있는데 ‘포틀랜드’와 ‘사포로’ 가 자매도시가 된 것입니다. 일본은 미국의 대도시 중심부에 땅을 사서 그들식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무서운 나라들입니다.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이익을 추구해 나가니까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들이 된 것입니다.

 

만약에 1960년대에 일본이 우리 나라 서울 광화문에 땅을 사서 ‘일본식 정원’을 만들겠다고 하면 허락을 하겠습니까?

아마 지금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을 적대시 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 적대국이었던 미국에다 ‘일본식 정원’을 세운 일본 사람들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허락한 미국 사람들은 더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해불택세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넓은 바다는 물줄기를 가려서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육지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은 어떤 물이든지 거부하지 않고 받아서 ‘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큰 그릇’은 그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한국사람들은 ‘감정적’이고, ‘성질’내기 바쁘다 보니까 늘 손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만큼 발전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근래에 한국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유행어중의 하나가 웰빙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소위 웰빙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건강이라는 뜻만으로 통용되지만 본래 의미와는 많이 다른 것입니다.

‘웰'(well)은 ‘좋다, 완전하다, 건강한’이라는 뜻이고 ‘빙'(being)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균형잡힌 건강하고 행복한 삶’ 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적으로 동일하게 이런 의미를 담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샬롬’이라는 단어입니다. ‘샬롬’이 우리 말로 번역 될때 주로 ‘평화’라는 단어로 쓰여 지지만 본래의 의미는 매우 심오한 것으로 ‘균형과 질서가 잡혀있고,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한 존재의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바로 ‘웰빙’인 것입니다.

 

  • 오늘 성령의 마지막 열매인 ‘절제’는 이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웰빙, 샬롬’의 상태를 이룰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성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모두가 좋아 할수 있는 ‘향기’입니다.

월남국수에 들어가는 ‘실란트로’향 같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면 안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면 안됩니다.

 

성소에서 ‘분향단’의 향은 ‘소햡향, 나감향, 풍자향’ 그리고 유향에 소금을 섞어서 만듭니다.

하나님앞에 올라가는 ‘기도의 향’은 모든 것이 섞여져서 조화로운 향이 되어야 합니다.

 

  • 절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억제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절제억제와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억제라는 말은 말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절제를 그런 억제의 의미로 사용할때가 많습니다. 누가 좀 ‘지나친 행동’을 하면 ‘절제 하세요’라고 말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절제’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의미가 ‘억제하라’, ‘도를 넘지 말라’ 하는 그런 의미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 오늘 성령의 9번째 열매인 ‘절제’는 그런 의미가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절제’는 영어로 ‘Self-Control’ 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관리하고, 조절할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해 나가게 하는 그 힘을 ‘절제, Self-Control’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뭐든지 과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도 과하면 안되고, 봉사하는 것도 과하면 안되고, 뭐든지 너무 지나치면 ‘조화’가 깨어 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적당히’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되 ‘균형’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 제일 어렵습니다

 

  • 우리의 삶에는 해야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가정생활, 사회생활, 교회생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생활도 필요합니다.

어느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때에 따라서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다릅니다.

그리고 속에서 솟아나는 많은 욕망들이 있습니다.

명예욕, 권세욕, 식욕, 성욕, 탐욕 그리고 미움, 시기, 질투, 경쟁심, 분노 등등 인간을 힘들게 만드는 많은 욕망이 매일 매일 샘물같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관리하기가 힘든것 중에 하나가 ‘말’입니다.

‘말’ 때문에 실수하고, 낭패를 보고, 관계가 깨어지고 할때가 많습니다.

입에서 생각도 없이 튀어나오는 말, 그리고 말을 잘못 표현해서 오해를 받는일 등등 말로 인해서 어려움을 격는 일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도 조절을 잘해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속에서 솟아는 자신과의 싸움도 감당할 수가 없는데 외부에서 공격해 오는 무서운 유혹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유혹’ 뿐입니까.

‘걱정’은 얼마나 많고 ‘염려’는 얼마나 많습니까.

‘미움과 시기’는 얼마나 많습니까.

 

이 세상 살아보면 얼마나 고민이 많습니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 욕망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욕망이 우리를 다스리게 될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이 우리를 다스리게 되면 일어나는 일이 갈 5:19이하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욕망을 다르시지 못하면 온갖 악하고 추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웰빙의 인생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힘든 것은 삶의 균형을 잡고, 모든 것을 조절하면서 잘 해나가기가 심히 어렵기 때문인 것입니다.

 

‘절제’는 모든 것을 끝까지 ‘강약과 균형’을 잘 조절하면서 평안하고, 균형잡힌 삶을 살아갈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인 것입니다.

이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잠언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빼앗을수 있는 사람보다 낫다’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앞서가는 사람들은 ‘자기 관리’에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과거 KBS 드라마 ‘대조영’의 역할을 최수종은 전반부에 연개소문의 노비역활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노비처럼 보이기 위해서 7개월동안 밥을 전혀 먹지 않고 채소와 과일만 먹었다고 합니다.

 

이승엽 선수도 자기관리를 잘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훈련하는 몇 달동안 점심식사는 삶은 계란 20개만을 먹었다고 합니다.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몇 개만 먹어도 질린텐데 최고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사람도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잘한 사람들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런 의지만으로 인생이 행복해 지는것은 또한 아닙니다.

한 부분을 위해서는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 되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 한부분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세상에서 자기 관리를 아무리 철저히 잘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관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관리가 안되면 세상에서 자기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명쾌하게 답해주고 있습니다.

령을 좇아 행하라

그래서 성령이 주는 능력을 가지면 항상 기쁨이 충만합니다. 자유함이 있습니다. 유혹을 물리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영적인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들어도 영적인 힘을 가지면 모든 문제를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아무리 힘들어도 영적인 능력을 받으면 이겨 나갈수 있습니다.

위에서 주시는 능력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로 이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절제(Self-Control)는 욕망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힘입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합니다. 수비만 하면 절대 이길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공격적이어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억제하려고만 하면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공격적인 삶이었습니다.

매일 새벽에 기도하시고, 밤에 기도를 하셨습니다.

하루 종일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쁘면 딴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죄지을 시간도 없다고 농담삼아 말할때도 있습니다.

다윗이 일생 일대에 실수를 한 일이 있습니다.

(삼하 11:1-2)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저희가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으니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전쟁에 나가지 않고 궁전에서 빈둥거리고 놀다가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보고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간음죄를 짓게 됩니다.

 

내가 좋은 일에 시간을 쓰지 않으면 그 시간은 나쁜곳에 쓰게 됩니다. 내 인생을 좋은 일에 바쁘게 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의 인생을 죄짓는 일에 바쁘게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영적인 일’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절제인 것입니다.

하루 ‘24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읽고, 기도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사용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일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바쁘지 않으면, 마귀는 우리들을 죄짓는 일에 바쁘게 만들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사람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지나고 보면 그런 사람이 잘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길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성령님의 지배를 받을수 있습니까?

첫째, 그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이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지’가 생깁니다.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둘째,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할 때 성령님의 지배를 받습니다.

 

셋째,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영이십니다. 영적체질로 만드셔야 합니다.

육을 좋아하는 체질이 영을 좋아하는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적인 기도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체질은 영성화 되어 가는 것입니다.

 

넷째,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은 전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강하게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고자 하는 첫 번째 일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에 힘쓰고, 모이는 일에 힘쓰고,

말씀, 기도, 전도, 예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그분의 지배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첫째는 ‘성품’에서 닮아 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행함’에서 닮아 가는 것입니다.

 

① ‘사랑’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② ‘희락’은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③ ‘화평’은 분쟁과 갈등이 없는 평안입니다.

④ ‘오래참음’은 고난을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⑤ ‘자비’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⑥ ‘양선’은 선한일을 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⑦ ‘충성’은 변하지 않는 마음, 끝까지 맡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⑧ ‘온유’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넓은 마음입니다.

⑨ ‘절제’는 모든 것을 조화롭게 다스릴수 있는 능력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성령님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와 모습을 보여줄수가 있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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