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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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관의 기도

고관의 기도 요 4:46-54

시대는 바뀌고, 환경도 바뀌고, 문화도 바뀌지만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힘들고 고통이 항상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문명이 발달할수록 환경은 점점더 파괴되고 있고, 의학이 발달할수록 고칠수 없는 질병도 같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할일은 더 많아 지고 더 바빠지고 피곤해 집니다. 전쟁도 더 많아지고 인간을 죽이는 무기도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 세상에는 고통이 들어오고 인생의 짐은 무거워 졌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도 보면 왕의 신하중에 아들이 병이든 사람이 있었읍니다.

이름은 없지만 왕의 신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인것 같읍니다. 이사람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무슨병이지만 성경에는 죽을병이 들었다고 했읍니다.

그러자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애원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애원을 듣고 아들의 병이 나았으니 돌아가라고 합니다.

신하는 그 말을 믿고 돌아가다 자기의 하인이 찾아 오는것을 만나 자신의 아들이 나았다고 하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은때를 물으니 예수님이 ‘너의 아들이 나았다’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워 하게 됩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죄악가운데 고통하는 인간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시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애를 쓰지만 바닷물이 말라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는 계속해서 문제거리들이 생길수 밖에없습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고, 고부간의 문제, 형제간의 문제, 부자간의 문제, 대인관계문제, 사업의 문제, 건강의 문제, 사고, 천재지변, 교회문제,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들을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길이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첫번째, 불평형이 있읍니다.

이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신세한탄하고, 팔자타령을 합니다.

두번째, 체념형이 있습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속으로는 불만이 나오지만 스스로 삭이려고 하는사람입니다.

세번째, 도전형이 있읍니다.

어떻게 이것을 풀것인가 도전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네번째, 감사형이 있읍니다.

문제가 생기면 감사하다고 넙쭉넙쭉 받아들이기는 잘하는데 ,잘못하면 그것이 체념형과 비슷해 질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첫째는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난후, 그다음에는 체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문제를 풀것인가, 마치 바위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이 어떻게 이산을 정복할것인가 계획을 세우듯이, 문제를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도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읍니까?

예수를 찿아가서 자신의 문제의 해결을 받았읍니다.

어린아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부모에게 달려가 문제를 해결합니다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면 정비소에 가야하고, 컴퓨터에 고장이 생기면 컴퓨터 기술자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문제에 문제가 생기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그 문제를 고칠수가 있읍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목적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읍니다

 

눅4: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10:10–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에겐 우리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예수님이 함께 있다고 하는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은 2천년전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모든 문제들을 직접 해결해 주셨는데 지금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는데 있읍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을 떠나실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근심하는 그들에게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것이라고 말씀 하셨읍니다

 

요14:13–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모든 문제들을 기도를 통해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최고의 축복이요, 강력한 무기입니다.

기도의 힘을 깨달은 사람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발견한 사람은 마치 새장에 갖혔던 새가 새장을 나와서 넓고 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것과 같읍니다.

 

사람은 자기 몸무게의 무게를 들기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개미는 자기보다 몇배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립니다.

그러나 기도는 자기의 무게보다 수십배, 수백배, 수만배의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게 합니다. 기도는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의 자신의 삶속에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면서 문제를 만날때 마다 기도함으로 앞에 있는 난관을 헤쳐 나갔읍니다.

 

홍해가 가로막혔을때 기도함으로 홍해가 갈라졌읍니다. 물이 없을때 기도함으로 생수가 터져 나왓읍니다.

먹을것이 없을때 기도함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되었읍니다.

 

여호수아는 기도할때 해와 달도 움직이는 것이 멈추었읍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모든 역사를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왔읍니다.

400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백성들의 원성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출했읍니다.

 

사사시대에 이웃나라의 압제에 시달리던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사사들을 보내어 구원하셨읍니다.

 

베드로가 옥에 같혔을때 온교회가 모여 기도하는 것을 들으시고 옥에서 구해 주셨읍니다.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인생길의 고비고비마다 기도함으로 모든 문제들을 풀어 나갔읍니다. 기도는 나의 힘의 100배 만배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많은 기도를 하셨읍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쉬지 않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기도할 시간이 되면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셔서 기도했읍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때 마다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읍니다. 기도할시간 없이 바쁜것은 ,필요이상으로 바쁜것이다.

무릎꿇는 횟수가 많을수록, 넘어지는 횟수는 적어 집니다.

 

과거에 신문에 난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LA에서 사업을 하시는 어떤 분이 미국은행에 1백만 달라융자신청을 했습니다.

은행의 융자담당관은 그분을 불러 인터뷰를 했읍니다.

그 융자담당관은 비즈니스 운영계획을 들으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읍니다. 실례지만 일년에 휴가를 몇번이나 가십니까?

질문을 받은 그분은 자기가 흥청거리며 노는 사업가가 아니라는것을 보이기 위해 대답하기를 자기는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이라서 휴가 같은 사치스러운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읍니다. 그러자 그융자 담당관은 이분을 쳐다 보면서 우리은행에서는 당신에게 돈을 빌려 줄수 없읍니다“ 그렇게 큰 돈을 융자해 가는 사람이 일년에 휴가한번 갈수 없을만큼 바쁘다면 당신은 회사 운영을 잘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당신이 과로로 쓰러지면 어디가서 돈을 받아낼수 있읍니까 하면서 끝내 융자를 주지 않았다고 하는 기사를 신문에서

저도 이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빨리 가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주실때는 가정생활을 할 시간도 같이 주셨는데 가정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 만큼 바쁜것은 문제가 있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빨리 가려고 하는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이 앞서 있는것입니다. 차라리 조금 적게 벌더라도 해야할일은 하고 지나가야 나 중에 더큰 피해를 막을수 있읍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질이 급해서 3년 공사해야할것을 1년 만에 완성하고, 10년동안은 그것 고치느라 정신없다는 말들을 합니다.

 

기도생활도 마찬 가지 입니다.

성도가 기도할수 없을만큼 바쁜것은 문제가 있는 생활입니다.

우리 민요 아리랑중에 이런가사가 있지 않읍니까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그런데 기도 안하고 가는 사람 오리도 못가서 발병납니다

 

기도는 우리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시간을 더효과있게 더 능력있게 사용할수 있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엄청난 보화를 묻어 두고 사는 사람이요,기도의 능력을 알고 사는 사람은 자기 능력보다 100배 만배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수 있읍니다.

 

두번째, 그러면 어떻게 해야 기도의 응답을 받을수 있겠습니까?

기도한다고 다되는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는 기도들이 있읍니다. 형식적으로 하는기도(안할수는 없으니까 체면상하는기도) ,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기도(바리새인들이 길가에서 하는기도) ,중언부언하며 자신도 무슨소리 하는지 모르는 그런기도,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교만한 기도

이런 기도는 아무리 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1)낮아져서 겸손한 기도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왕의 신하라고 하는 사람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가난한 목수 집안의 예수라고 하는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하게 되었읍니까. 그것은 심령이 가난해 지고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심령이 이렇게 낮아질수가 있었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 47절에 보면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하는 말이나옵니다. 왕의 신하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된것은 자기 아들이 이제 죽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때로는 짐승들보다 더미련할때가 있어서 죽게 생겨야 정신을 차립니다.

어떤 사람이 농담을 하는데 이런 농담을 합니다

곰을 손쉽게 잡는 방법이 있는데 곰이 지나가는 길에다 쇠뭉치를 나무에 달아 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곰이 지나가다 머리에 부닥치면, 어 이게뭐야, 이게 나보다더 쎄?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고 자기 머리로 그 쇠뭉치를 받다가 결국 쓰러진다 하는 말입니다.

물론 진짜가 아니고 곰이 미련하다는 것을 빗대어 하는 joke입니다. 사실 곰은 절대 그렇게 미련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의 신하와 같이 죽게 되서야 하나님을 찾읍니다.

이 왕의 신하도 처음에 자기아들이 병들었을때는 보통으로 생각했을것입니다.

좋은 의원 다불러 보고, 좋은 약 다써보아도 낳지않고, 이제 죽게 생겼으니 이제 마지막이다 싶으니까 그제야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바로왕도 하나님이 그렇게 무서운 재앙을 내려도 조금 숨을 통할수 있으니까 또마음이 강팍해 져서 하나님의 백성을 내주지 않았읍니다

 

여러분, 이렇게 죽게 되서야 마음이 낮아 져서야 되겠읍니까? 그러며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다 죽을병에 걸려야 하고, 사업이 다 망해야 되지 않겠읍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시는것은 죽기 직전 까지 고생하지 말고 미리 미리 겸손해 지라고 하는 말씀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왕의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자기의 하인을 만나니 자기 아들이 나았다 하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읍니다.

믿음이라고 하는것은 순종입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나았다하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을 생각했겠읍니까

그는 자기 아들이 치료될 것이라는 순종의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반대로 불신앙이라고 하는것은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염려와 근심 걱정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라고 하는것이 없읍니다. 인간은 실패 하지만 하나님은 실패 하지 않읍니다. 인간은 손해 보나 하나님은 손해보지 않읍니다

seeing is believing.이라고 하는 말이 있읍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사람은 believing is seeing.인 것입니다.

보아서 믿는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 염려 이런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생기거든 예수의 이름으로 좇아 버리고 , 나는 잘될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것이다, 오늘도 좋은 일이 생길것이다라고 하는 순종적인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79년 2월14일에 LA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적이 있었읍니다. 그때 산타모니카 말리부해변에 산사태가 일어나서 해변도로위에 1백16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게 되었읍니다.

언덕밑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공포에 질렸읍니다. 경찰은 해변도로를 차단 시켰습니다.

라디오에서는 매시간 마다 그 사실을 보도했읍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자기가 돈을 내고 이바위를 운반하겠다고 나섰읍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조각가인 브레트 스트롱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읍니다. 스트롱은 이바위를 가지고 기가막힌 조각품을 만들어 냈는데 유명한 영화배우 존 웨인의 전신을 조각한 것이었고, 이조각이 완성되자마자 애리조나의 억만장자 톰 머피가 1백만달라에 사들여 존웨인 암센타에 기증했다고합니다.

 

공포의 바위가 세기적인 조각품으로 변신했읍니다. 모두가 바위를 어떻게 운반해서 바다에 버리는가 만을 생각하고 있을때 조각가인 스트롱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것을 가지고 기가막힌 작품을 만들것인가를 생각하고, 또한 그의 생각되로 그 공포의 바위는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었읍니다.

 

우리 하나님은 조각가 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조각하는 조각가 이시고,우리도 하나님과 함게 우리의 인생을 조각해 나가고 있읍니다.

우리의 인생의 앞길에 놓여 있는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을 어떻게 배치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많은 문제속에 살고 있읍니다.

그문제를 체념하고 살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기도함으로 그 문제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킬것인가는 우리의 노력과 마음자세에 달려 있읍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이 진정한 문제의 해결책인가?

왕의 신하의 문제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병이 들었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그 병에서 낳는 것이 자신의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답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격던 사람이 경제적으로 좋아지고, 가족간의 문제가 있던 사람이 화목하게 됨으로, 문제가 해결된것으로 생각하고, 여러가지 문제에 부닥쳐 있던 사람이 그 문제가 풀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수 없습니다.

 

만약에 육신의 문제가 해결됬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것이라고 생각 한다면 성경의 깊은 뜻을 이해 할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믿어도 건강한 사람이 많고, 예수께 안나가도 각종 방법으로 병을 고치는 수도 있읍니다.

예수를 안믿는 사람이 더 돈을 잘벌고, 예수께 안구해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부터 해방받는 사람이 더많읍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하나님의 뜻을 육신의 것에 맞추려고 하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할수 없고, 이 성경말씀이 풀리지도 않고, 이해가 되지도 않읍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이 근본목적이 아니요,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분이요, 육신의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해야 성경이 이해가 됩니다.

 

축복도 영적인 축복을 생각하고, 육신의 축복을 말해야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가를 이해할수 있지, 육신의 축복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이해할수가 없고, 무엇이 진정한 축복인지도 알수가 없게 됩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촛점을 어디에다 맞추어야 하겠습니까?

아마 사람들은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았다고하는 점에 촛점을 맞추고 싶어 할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문제도 해결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분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촛점을 맞추기도 할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시면 어떤 병도 고칠수가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수 있는분이다 라고 하는데 촛점을 맞추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촛점은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은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것도 이 이야기의 촛점이 아닙니다.

 

예수만 믿으면 예수님이 행한 기적을 나도 행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도 더더욱 아닙니다.

 

오늘 이이야기의 촛점은 문제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 영혼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것이 오늘 이야기의 촛점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육신의 병든자 들을 수없이 고쳐 주셨읍니다.

예수님이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신 근본원인은 육신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영혼의 병을 고쳐 주시기 위함이었읍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원인은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보다 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것을 믿게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생길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 문제점 이런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깊이 이해하고,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성경이 해석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해석이 되고, 문제의 근원이 해결이 되지 문제자체에만 촛점을 맞추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짖읍니다.

하나님은 오늘 한 고관의 아들의 병고침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생의 여러가지 진리들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이땅에 사는날 동안에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그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기도를 통해서 더 큰능력도 발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통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고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축복인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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