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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1)사랑

성령의 사람(1)사랑 갈5:16-22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세상에는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벌리 힐에서 최고의 호화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글속에서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바쳐 헌신하면서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에 해를 끼치며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미운 사람도 있습니다.

 

이같이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한사람도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만 필요한 것이아니고, 악한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존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하고, 존재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던 악한 사람이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많이 공급되면 공급될수록 세상을 더욱 아름다워 지는 것이, 사랑이 줄어 들면 들수록 세상은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아마존‘은 ’지구의 심장‘이라고 합니다.

또 지구의 ’산소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산소의 20% 이상이 아마존정글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아마존 밀림의 넓이는 미국 본토 땅의 넓이와 비슷합니다. 그렇게 넓은 지역이 빽빽한 밀림으로 차있습니다.

사람이 발을 디디고 들어갈수 없을 만큼 나무들로 차 있습니다.

그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산소로 인해서 지구는 생명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을 소유하고 있는 브라질에서 아마존의 나무들을 마구 베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아마존의 나무를 베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구에 산소가 모자란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끔직한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모두가 호흡기 장애를 일으킬 것이고, 정수기물을 받아 먹듯이 산소통을 차고 다녀야 할일 이 생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산소공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랑을 만들어 내는 곳입니다.

교회에서 사랑을 많이 만들어 내면 낼수록 세상은 아름다워 지는 것이요, 교회에서 사랑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세상은 그만큼 더 힘들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랑을 만들어 내야되는 사람들입니다.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세상에서 사랑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회적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예화가운데서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밥을 먹는데 긴 숫가락으로 서로 먹여주면서 잘먹고, 지옥은 밥을 먹는데 긴 숫가락으로 퍼저 자기 입에 넣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숫가락이 너무 길어서 아무리 자기 입에 넣으려고 해도 넣어지지 않습니다. 밥을 떠서는 흘려 버리고 흘려버리고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삶은 그런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면 그러한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많이 베풀 때, 나에게도 많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적게 베풀면 적게 돌아옵니다.

큰사랑을 베풀면 큰 사랑이 돌아오고, 적은 사랑을 베풀면 적은 것 밖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랑이 좋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하기 보다도 사랑을 깨기를 더 잘합니다. 사랑하기는 어렵고 미워하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 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성하는 일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제일 첫 번째의 일입니다.

 

오늘 말씀도 보면 성령의 열매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인간의 본능으로는 온전한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는 더 큰 사랑을 할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안수집사님이었던 스테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재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돌아맞아서 숨이 넘어가면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스테반집사님이 그렇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속에 계신 성령의 힘이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인간의 본능을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 분냄, 용서할수 없는 것들 이런것들을 이길수 있는 힘, 더 나아가서는 그들을 위해서 대신 죽어줄수도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본능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본능적인 사랑은 가족간의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사랑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사랑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할수 있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1차원 적인 사랑이라고 도 말할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작이라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1차원적인 사랑도 하지 못해서 티격태격 싸우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능적인 사랑도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간에 다툼이 있고, 형제와 형제 사이에 다툼이 있습니다.

심하면 죽이기 까지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인류최초의 살인사건은 불행하게도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사건이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랑인데도 잘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사랑해야 할 사람은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하면 안되는 것은 사랑합니다. 고장난 것입니다.

지난번에 한국에서 미사일이 엉뚱하게 발사되어서 사고를 낸 일이 있습니다.

원인을 조사한 결과 선이 중간에 합선이 되어서 발사스위치를 눌르지 않았는데도 미사일이 발사되어서 공중에서 폭발해 버린 것입니다.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무언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의지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족외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친구, 이웃, 직장동료, 교우간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더 힘이 듭니다. 자신의 의지의 힘이 들어가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달리 의지가 있습니다.

짐승은 본능에 따라 행동을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고, 의지에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본능을 초월해서 사랑을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늘 사랑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때로는 미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을 몰아내고, 사랑을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랑받을 일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미움받을 일들을 합니다.

미움받을 말을 하고, 미움 받을 행동을 합니다.

나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행동을 한 일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 자체가 미움받을 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착각속에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나는 바로 걷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해도 본의 아니게 남에게 미움을 받을 말을 하게 되고, 남에게 미움을 받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언제나 좋은 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사람도 때로는 나쁜 일도 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도 언제나 나쁜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일도 하는 것입니다.

금도 필요하고, 은도 필요하고, 나무도 필요하고, 질그릇도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한 존재라면, 모든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지적으로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남을 용서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남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도 사랑해야 하고, 짐승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귀한 것입니다.

 

셋째, 사명적인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랑입니다.

사랑받을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어지는 것이 예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할 때 우리의 사랑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공급되고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성화가운데서 예수님이 양을 앉고 있는 목자의 그림을 제일 좋아했다고 합니다.

몇 년전에 성지를 순례할 기회가 생겨서 이스라엘에 갔다가 마침 양치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양들이 풀을 뜯어 먹고있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그림 생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같이 자기도 양을 한번 안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양을 들어서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초도 못안고 있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림에서 보는 것은 푸른 초장에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지만, 실제 이스라엘에는 그런 푸른 초장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가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풀은 누렇게 말랐고, 사막에 모래 먼지가 불어서 양들은 흰색이 아니고 누렇게 변해있고, 그속에서 오줌싸고, 딩굴고 해서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안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달아나겠다고 몸부림치기 때문에 머리에서부터 먼지를 뒤집어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초도 안지 못하고 내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양을치라고 하셨기에 다행이지, 양을 안으라고 했으면 큰일날뻔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과 같아서 툭하면 목자를 떠나 도망하려고 하고, 목자의 길을 따르지 아니하고 잘못된 길을 가기를 좋아했었습니다. 양은 얼마나 고집이 셉니까?

제 고집대로 나가고 목자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양의 생명과 목자의 생명은 비교가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짐승의 생명이 어떻게 비교가되겠습니까?

그런데 목자는 양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명걸고 사자와 싸우고 곰과 싸우는 것입니다.

양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 그 양을 찾기 위해서 밤,낮으로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앞에 우리는 모두 그릇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면서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 하고 살았었습니다.

하나님을 없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 인지아십니까?

만약에 여러분들이 부모님들이 살아계신대로 불구하고 ‘나의 부모는 없다’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제일 큰 죄입니다.

그런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사람취급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건 인간도 아니야” 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모른다고 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죄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이 없다 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하나님앞에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돌을 던지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돌을 던지는 곳에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위해서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원천이요, 근원입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

성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성도가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그 사랑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양과 같이 그릇행하며, 제길로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몇몇 사람들만의 허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해서 죽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로마서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깨달을 때 영혼이 눈을 뜨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깨달을 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을 깨달을 때 부모가 다시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주가 다시 보이는 것이요, 인생이 다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을 때 세상이 다시 보이는 것입니다.

사명적인 사랑을 할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사랑의 근원지입니다.

이 사랑이 있을 때 산소공장같이 세상에 사랑을 공급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여기에 까지 와야 합니다.

본능적인 사랑보다.,의지 적인 사랑보다,

원수를 위해서 대신 죽어주는 십자가의

사랑의 단계까지 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됩니다.

사명적인 사랑은 가장 힘들이지만, 가장 열매가 큰 사랑입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첫째,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용서는 씻어 버리는 것입니다. 가슴속에 담지 않고 씻어 버리는 것이 용서입니다.

우리의 가슴은 많은 찌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많은 찌꺼기 들이 모여 있습니다.

청소기에 찌꺼기들이 남아 있듯이, 정수기에 찌꺼기가 끼듯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런 찌꺼기 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을 간직하고 있으면 고장이 나고 병이 생기게됩니다.

이런 찌꺼기 들은 씻어 버려야합니다.

 

둘째, 받아 주는 사랑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 주셨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습대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먼지 투성이의 양을 예수님이 앉아 주셨듯이 우리도 남의 허물과 남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 주어야 합니다.

고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는 안들지 몰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드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셋째, 희생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사명적인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나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 피해를 주는 사람, 미운사람, 보기 싫은 사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이 세상에 사랑을 공급하는 공장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의 사도들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만들지 못하면 이 세상은 질식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마음속에 찌꺼기들을 모두 씻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미움,시기,분냄,등등 이런 쓰레기들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가 쓰레기 통이 됩니다.

우리 속에 성령의 열매들로 채워 보십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 회개함으로 씻어 버려야 합니다.

둘째, 말씀과기도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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