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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2) 기쁨

성령의 사람(2) 기쁨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오늘은 메모리얼데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떠났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나, 집에서 쉬는 사람이나 연휴가 시작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은 괜히 들뜨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휴가를 가든지, 아니면 그룹으로 해서 가든지

연휴를 맞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똑같을 것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매일의 삶이 휴가를 떠나는 그런 기분을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학교다닐때는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날, 그리고 방학을 시작하는 날, 입학시험에 합격한날, 졸업하는 날들은 최고로 기분이 좋은 날들입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도 그런 즐겁고 기쁜날들이 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그런 기쁜날들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을 이땅에서 살게 하실때는 그런 꿈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매일 매일 잔치 하듯이, 기쁘고 즐겁게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완벽한 기쁨, 완벽한 행복 속에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인간속에 침투하면서 그것이 깨어 졌습니다.

병균이 침투해서 건강을 잃어 버리게 만들듯이, 암세포가 자라나듯이, 죄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천국같아야 할 인생이 기쁨을 잃어 버리고 고통과 번민속에 사는 인생이 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자동차가 망가지면 수리하는데 보내야 하고, 병이 나면 병원에 가야 하듯이, 망가진 인생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오직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에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망가진 인생을 고쳐 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종교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종교도 망가진 인생의 행복을 회복시켜 주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만이 망가진 인생을 치료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미 죄로 인해서 망가져 버린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인간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던 마귀란 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마귀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마귀란 존재가 있는 한 이 세상은 더 이상 더 좋아 질수가 없습니다.

 

지진으로, 태풍으로,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저지르는 전쟁으로 인해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서, 인간사이에 갈등으로 인 해서 이 세상에는 고통과 슬픔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자체를 고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하늘과 새땅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언젠가 이 땅과 우주도 사라져 버리면서 인간의 역사도 끝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를 힘들게, 괴롭게, 고통스럽게 만들지 못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될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나라가 오기 까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하면 기쁘고 즐겁게 살수가 있느냐?

사람들은 환경을 바꾸면 좀 더 좋아질까 생각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유일한 한가지 길은 이 세상의 환경을 초월할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힘이 아닌 하늘에서 주시는 힘, 영적인 힘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육신의 힘이 아닙니다. 영적인 힘이요, 정신적인 힘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꿀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바꿀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그 힘으로 만들어 지는 열매 그것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지배하는 열매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족스럽게 행동을 해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만족스러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은 평생 참 행복과 기쁨을 얻지를 못합니다.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기쁨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과 인격이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일반 세상 생활이나 할것 없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과 성품입니다.

인격과 성품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이 반듯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도 온전히 누리지를 못합니다. 계속 사람들과 갈등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바로 잡아줄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는 참기쁨과 참 행복을 누리면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도 바울의 예를 통해서 정말 그런 기쁨과 행복이 가능한 것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빌4: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도바울의 행복에 찬 이 고백은 감옥에서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도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사도 바울에 비하면 백배로 좋은 것입니다. 바울이 가졌던 신앙의 백분의 일만 가져도 바울이 누렸던 그 행복과 기쁨을 누릴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기뻐하는 4가지의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사랑을 받을때 기뻐합니다.

둘째, 소중한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기뻐한다고 합니다.

셋째, 자기의 형편을 좋게 받아 들일 때 기뻐합니다.

넷째, 소중한 것을 남과 나눌 때 기쁨이 온다고 합니다.

성령의 열매에서 말하는 기쁨도 이 범주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쁨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뭐가 쏟아져 내리고, 속에서 이상한 뭐가 솟아 올라서 기뻐하는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기쁨을 말합니다.

바울 자신처럼 우리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의 경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바울만큼 환란과 핍박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사실 때문에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큰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하나님의 사랑은 폭포수같이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인생이 힘들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조용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아플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바울처럼 우리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면 틀림없이 그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줍니다.

 

지난번 저희 아버님장례때에 중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저의 동생이 다녀갔습니다. 미국에 처음 왔기에 유니버설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를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느낀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경을 하면서 제일 놀랜 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표정들이 그렇게 밝고 여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마다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몸만 조금 스쳐도

I am sorry, Thank you 를 연발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다를수가 있는지 그게 제일 놀라왔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놀이터에 와서도 쉽게 화내고, 싸우고, 새치기 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 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잘못해놓고도 먼저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힘든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한이 많은 것이 한국의 역사가 특별히 더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더 많이 당해서가 아닙니다. 동양의 역사속에서도 인간의 삶은 비참했고, 서양의 역사속에서 인간의 삶 역시 비참했습니다.

똑 같은 고난을 당해도 그것을 한을 품게 만드는 것도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화적인 차이이고, 문화를 만드는 가장 큰 영향력은 종교에 있습니다. 어떤 종교가 그 사회를 지배했느냐가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인생의 고난을 한으로 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바울이 기뻐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을 얻었고, 예수님을 소유하며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큼 이 세상에서 소중한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만큼 우리에게 복이 되는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만큼 우리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는 분은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발견하자마자, 예수님을 소유하자마자 너무나 좋아서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취급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는 우리가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것인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소유하고 삽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소유함으로써 받아 누리는 은혜는 얼마나 대단합니까?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이 험한 세상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 때문에 하늘에 있는 모든 축복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응답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어떤것도 우리를 헤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소유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할수 있습니다.

 

셋째, 바울은 자기 형편을 좋게 받아 들였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4:11)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기가 당하는 모든 형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것으로 받아 들이면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비천하거나 풍부할 때도, 배고프거나 배부를 때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바울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형편을 살펴보면 솔직히 기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에겐 처자도, 혈육 한 점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노후를 위해서 1불도 저금해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각자가 처한 형편이 다 다릅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 우리는 바울처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형편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합니다.

(딤전 4: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좋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면 모든 조건에서 행복하게 됩니다.

 

감사와 만족은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더 많은 것과 비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희 집에 강아지를 기르는테 털이 길어져서 딸아이가 펫샵에 데리고 가서 털을 깍아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강아지 털깍는데 얼마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25불 주었다고 했습니다.

나도 이발하면 20불 주는데 강아지 털깍는게 25불이면 너무 비싼것 아니냐 했더니, 딸이 하는 말이 아빠머리카락보다 보다 강아지 털이 더 많으니 절대 비싼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떻하다 제 머리카락이 강아지 털보다 값이 안나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족과 가치라고 하는 것은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쁨이 그냥 속에서 저절로 솟아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고, 마귀도 우리의 생각을 지배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인격과 성품을 만들게 되는것입니다.

 

바울이 만약에 과거에 자신이 잘나가던 때를 그리워 했다면 지금 감옥안에서 절대 기뻐하며 행복해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늘 스스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죄인중에 괴수다.

나는 만삭되지 못해 난 자와 같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바울은 자신이 죽어 마땅한 자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 였다고 하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사도가 될 자격도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은혜로 사도가 된 것이 과분하다고 하는 것을 늘 생각을 했었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으면서 억울하고 분해서 이를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감옥에서도 호텔보다 더 편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냅니까? 무엇과 비교를 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이 시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둘째, 이 시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

셋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기쁜것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 바로 이시간입니다.

지금 이시간 병상에서 세상을 마감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이시간 단 일분이 소중합니다. 단한번 숨한번 쉬는 것이 소중합니다.

단 한번 내 발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고, 손 한번 만져 보는 것이 소중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할수 없는 것을 하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을 할수 있게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넷째, 바울은 가장 소중한 예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수 있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갇혀 있어도 복음이 증거 되고, 오히려 갇혀 있음으로 다른 사람이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나 기뻐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생각한다면, 그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는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전하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전도해 보십시오.

 

남을 기쁘게 하고자 늘 애쓰는 사람이 자신도 기쁜것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도 행복한 것입니다.

남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도 부유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과 성품을 만들어 가십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갈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면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열매가 풍성한 우리 성도님, 우리 교회가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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