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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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생활

예수님의 기도생활 눅5:12-16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5:12-16)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의 현장을 보면서 기독교 500년의 역사와 그 이전 카톨릭교회의 역사를 함께 생각해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럽은 기독교의 본 고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활동하신 곳은 예루살렘, 중동지역이지만 기독교가 실제로 꽃 피운 것은 유럽입니다. 기독교 역사 2000년 가운데 1900년은 대부분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만약에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의 남미 국가들을 보시면 알 것입니다.

무질서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들입니다.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제대로 예수 믿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것이고, 미국이란 나라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도 만들어 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종교개혁은 단순히 우리 개신교에서만 기념할 일이 아니라, 현재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념해야할 일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나 요한 켈빈은 그런 의미에서 세계 역사에 엄청난 일을 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교황이던 왕이던 어떤 사람의 말도 성경말씀 보다 위에 있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보수주의도 진보주의도 아닙니다.

모든 것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입니다.

시대가 바뀌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은 사탄과 마귀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이브를 유혹할때 했던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수백년전에 선지자들이 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사야 7장에 임마누엘 표적을 예언하고,

9장에 메시아 탄생을 예고 하고 있습니다.

11장에 메시아 왕국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32장에도 메시야 왕의 출현을 말씀하고,

35장에 메시아 왕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가서4장에는 메시아왕국, 5장에 메시아 탄생을 예언,, 스가랴 9장에도 메시아가 오심을, 10장에는 메시아 통치, 11장에는 메시아고난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하루도 걸르지 않은 것은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게 하는 힘은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이십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러 하심에도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교제입니다. 항상 하나님과 교제입니다.

끊임없이 교제가 이어지면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속에 있는 심장은 쉬지 않고 뛰고 있고, 몸속의 피는 한 순간도 고여 있지 않고 온 몸을 돌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이 멈춘다는 것은 썩어 들어가는 것이고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에게 가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특별히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놀랍게도 많은 분들이 기도가 어렵다고 대답을 합니다.

위급할 때 신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막상 하나님 앞에 기도하라고 하면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닙니다.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면에는 솔직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가진 육체를 입고 사는 미천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들리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손을 휘둘러 봐도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들리는 음성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승리의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말씀속에서도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기도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일보다도 기도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자를 고치고, 고통받는 자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기도는 우선으로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바쁜 생활을 하셨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치유받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치유를 받고 싶어 합니다.

용한 의사가 있다고 하면 땅끝까지라도 가서 치유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 간절한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 옴에도 불구하고

 

오늘 말씀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기도생활에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기도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를 멈추고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실 것입니다.

항상 마음이 바쁘실 것입니다. 처리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머리속에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물러가서 기도하는 생활’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의 비결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생활의 맨 앞에다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새벽기도)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녁기도)

(눅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수시로 기도)

(눅6:12)이때에 예수게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철야기도)

(눅9: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특별기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하루 일과중에 제일 중요한 일과는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기도가 중요한가?

 

첫째, 기도는 영적인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숨쉬는 것입니다.

우유를 먹기 전에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서 태줄이 끊어 지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숨 쉬는 것입니다.

숨을 쉬기 시작하면 살아나는 것이고 숨을 쉬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산소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산소를 마셔야 살아 갑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도 산소가 있어야 삽니다.

물고기는 코로 호흡을 하지 않지만 물에 녹아있는 산소를 먹고 삽니다.

산소가 없는 물은 썩은 물입니다.

그래서 물은 계속 움직여야지 움직이지 않는 물은 죽은 물입니다.

바다에 파도가 치는 것은 공기중에 있는 산소를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기들이 살아갑니다.

물에 산소가 부족하면 물고기들은 금새 배를 가뒤집고 죽어버립니다.

산소가 없으면 썩어 들어갑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산소공급기부터 코에 끼워 놓습니다.

몸에 산소가 들어가야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저항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호흡을 하지 않는 성도는 그의 삶이 힘이 없습니다. 부패합니다. 병이 듭니다.

기도가 살아있어야 우리의 삶을 생명력이 넘치는 삶으로 바꾸어 주게 됩니다.

 

기도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기 위해서 입니다

 

메마른 심령을 푸른 초장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려야 푸른 초장과 같은 심령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내 심령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 함이라 예수안에서의 싱싱하고 푸르른 풍성한 삶의 길은 기도로 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체질을 바꾸어 줍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체질이 바뀌게 됩니다. 동양사람과 서양사람의 체질이 다른것도 태어나면서 부터 무엇을 먹는가 하는데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릴때 김치를 먹고 자라느냐, 아니면 버터를 먹고 자라느냐가 평생의 식성을 바꾸어 놓습니다.

 

과거에 한때 알칼리물을 먹으라고 많이 광고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도 알칼리물에 심취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알칼리물을 먹으라고 침을 튀며 말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어디서 들었는지 사람이 병이들고 몸이 약한것은 산성체질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만날때 마다 체질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체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육적인 체질이 영적인 체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날때는 육적인 체질을 가지고 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한번더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두번째 태어 날때는 영적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영적인 체질로 바뀌게 됩니다.

 

육적인 체질은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체질입니다.

육체의 쾌락을 좋아합니다. 죄인은 죄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체질은 하늘의 것을 좋아합니다.

이 영적인 체질은 죄악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체질이 바뀌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해 나갈수가 있습니다.

이 체질일 바뀌지 않으면 참 괴롭습니다.

신앙생활과 세상생활 이중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해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저것해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제가 이번에 유럽을 방문하면서 당황스러웠던 것 중에 하나가 비록 관광 하러 온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가 한번은 가 보고 싶어 하는 유럽땅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좋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매여 있다가 오랫만에 나왔으니까.. 편하고 자유함을 느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옥에서 풀려난것 같은 그런 해방감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나오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교회밖에 생활에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평생 오른쪽 손을 쓰던 사람이 왼손을 사용하는 그런 느낌입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체질이 달라 집니다. 죄를 즐기던 체질이 죄를 거부하고 싶은 체질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결국 신앙생활에 충실해야 행복한 것이지 세상일이 아무리 잘되고 즐거워도 항상 그 마음속에는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으로 가기전에 40년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은 그들의 체질을 바꾸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급에서 400년을 지내며 그 세상의 문화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이지만 그들의 사상과 습관속에는 우상문화의 영향이 그대로 배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 40년의 광야생활을 시켰습니다.

그들에게 10계명을 가르치고, 성막을 지어서 제사를 드리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성결한 생활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세상에서 살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적인 체질로 바뀌려면 반드시 그 광야를 거쳐야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화되면서 영적인 체질로 바뀌어 가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훈련이 기도의 훈련인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육적인 체질은 서서히 영적인 체질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사람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세번째, 기도는 모든 것을 이기게 합니다.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남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의 기도의 마지막이라고 하면 겟세마네의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마음을 다스리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가지고 있어서 내일 십자가를 지실 것을 생각하니 육은 그것이 싫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니 육은 고통스러울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내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담대함이 생깁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마음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이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을 빼앗는자 보다 낫다고 잠언서 기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음으로는 잘하고 싶어합니다.

마음으로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다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마음이 자기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지만 자기의 마음조차도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문제인 것입니다.

 

아이들도 무엇이 옳은지, 나쁜지를 판단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이들도 압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의 마음대로 자신의 행동이 움직여 지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바른 곳으로 가게하는 힘을 줍니다.

 

기도는 자아를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늘 고민하는 것이 자기가 죽지 않은것이 아닙니까?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고 싶은데 이 자아가, 내가 죽지 않아서 문제가 아닙니까.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

나를 짖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예수여 나를 도와 주소서

 

마지막으로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는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제거해 줍니다.

기도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수 있는 믿음을 주게 됩니다.

 

기도하면 막혔던 담들이 허물어 집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 가로 막고 있는 크고 적은 문제들이 기도하면 해결이 됩니다.

내힘으로 할수 없는 일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힘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기도하면 가정이 살아납니다. 교회가 살아납니다.

사회가 살아납니다. 기도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어둠의 권세가 물러갑니다.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성도를 넘어뜨리는 악한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는 것은 기도외에 없습니다.

오직 기도의 능력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줄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넘어집니다.

돈있는 사람도, 권세있는 사람도, 마귀권세앞에 넘어집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만은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쫓아내고 몰아냅니다.

 

기도는 마치 국민학교 운동회때 오자미 던져서 과자봉지 터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양쪽에 높다란 장대에 둥그런 통을 달아 놓습니다.

그속에는 색종이며, 과자들을 집어 놓고 종이로 발라 놓습니다. 그리고 청팀,백팀으로 나누어서 달려가서 공을 던집니다.

그래서 열심히 던지면 한번 맞고, 두번 맞고 하다가 어느 순간에 터지면서 색종이 때로는 비둘기 까지 그속에 있다가 날아가게 됩니다.

 

기도는 마치 그런 것과 같습니다.

기도 한다고 즉시 무엇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간을 두고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응답 그자체 보다도 기도하는 모습을 더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응답에 관심이 있지만 하나님은 응답보다는 기도하는 그 자체를 더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터지게 됩니다. 한번 던지고, 두번 던지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 큰 공이 터지듯이,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앞에 한번 올라가고, 두번 올라가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응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하나님과의 교제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인생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말씀해 주는 것이고, 실제 우리의 삶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판단할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직업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느냐? 이민을 가야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아이를 몇명을 낳아야 하느냐?

이런 일들을 결정하는 것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본인이 결정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결정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수가 있고, 하나님과 친밀해 지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할수가 있게 됩니다.

 

기도는 신앙의 생명입니다.

기도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가 없습니다.

기도해야 우리의 신앙이 살아납니다.

기도해야 나를 이기고 죄를 이기게 됩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닙니다

기도는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는 실천입니다. 기도는 투자 입니다. 세상 투자는 투자하고도 건지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기도는 투자한 만큼 , 투자한것보다 수십배, 수백배의 것을 가져오는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입니다.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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