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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3) 온유한 사람의 행복

온유한 사람의 행복 마5:1-10

①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②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③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④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⑤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⑥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⑦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⑧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나님으로 부터 두 가지의 선물을 받고 태어 납니다. 자신의 얼굴과 성품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굴은 바깥으로 보이는 것이요, 성품은 내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굴과 성품은 우리의 인생살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들입니다.

요즘은 외모가 출세에 영향을 준다고 해서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외모가 약간의 영향을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회에서 성공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외모가 시원치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영화배우나 미디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외모가 출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인생의 행복과 불행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내면의 얼굴인 성품입니다.

좋은 말로 하면 성품이고, 사나운 말로 하면 ‘성질’이라고 표현 할수 있습니다.

잘하다가 성질 때문에 손해를 보고, 성질 때문에 실패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의 말씀을 하시면서 다른 복들은 추상적인 것들이지만, 세 번째 복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눈에 확 띄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을 차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좀더 적나한 표현을 하자면 ‘부동산’의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부동산이라고 알아 들으시면 안 됩니다.

하여튼 땅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행복은 마음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은 마음의 행복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잘되는 축복의 원리는 온유함에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의 축복도 받고 이 세상을 성공하는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성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성질이 부드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부드럽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강하다고 해서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타고난 성질대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성질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으로 아름답게 변화해서 영광스럽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유’는 성질이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말하는데 겸손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를 화목하고, 참고, 인내하며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어주려고 하는 친절과 사랑에 관계된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유는 하나님이 주신 성품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인격이요, 그 열매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 성품이 온순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순한 것과 온유는 다릅니다.

온유는 중생함으로 만들어지는 받는 성품입니다.

 

온순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성품이고

온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성품입니다.

온순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인간성이요,

온유는 내면적인 속사람의 마음입니다.

온순은 사람의 뜻을 따르는 마음이요,

온유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입니다.

 

온순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겉으로 온순한 사람 중에 의외로 고집이 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겉으로 세게 보이는 사람이 속마음은 한없이 약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타고난 성품만 가지고는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는 단정 할수 없습니다.

다만 성질이 강하면 손해 볼일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심양에서 대학생 사역을 하고 있는 정재수선교사는 저의 동생이지만 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제 동생은 공부하는 것 보다 싸우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책가방 속에는 책이 있는 것이 아니고 쇠파이프나, 쇠고랑이 있었습니다. 군대를 갔는데 공수부대로 차출이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전라도 ‘이리’에 있는 7공수부대에 소속이 되어 있다가, 광주사태가 나니까 제1차로 광주에 투입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풀려도 그렇게 그쪽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사회에 나와서 공장장을 했었는데 사장의 아들이 마음에 안든 다고 두둘겨 패가지고 쫒겨 났습니다.

그리고 이대 정문앞에서 분식집을 했습니다.

껄렁 대는 고등학생아이들이 와서 눈꼴 사납게 구니까, 자기는 그보다 더 했으면서,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왜 까불고 다니냐 그러면서 두둘겨 패가지고 치료비 물어주고 그러면서 그 가게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성질 때문에 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질이 예수 믿으니까 또 얼마나 화끈하게 믿는지

중국에 선교사로 나가면서 먼저 2년 동안 요령대학에서 언어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이 40이 넘어서 언어공부를 시작하는데 과연 얼마나 배울까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실력을 알기 때문에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할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전화할 때 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데 저는 사실 상상이 안가는 일이 었습니다.

2년동안 언어를 배워야 얼마나 배우겠나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미국에 와서 살지만 2년동안 영어를 얼마나 배웁니까? 저도 이곳에서 대학을 6년을 다녔지만 시험 준비나 하는 영어였지 실제 영어는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령대학에서 2년과정을 마쳤는데 중국말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입니다.

정말 2년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고시 공부 하듯이 매 달렸다는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성질을 부리지 않는데, 그 성질을 부리지 않은 것을 보면 더 안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온유’는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길들여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인 온유와 겸손 그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누구든지 온유한 성품으로 만들어 질수가 있습니다. 타고난 성품이 과격하든지, 인생의 고난으로 인해서 상처가 많든지, 사막의 아카시아처럼 비틀어진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불을 받으면 다 펴지고,

새 심령으로 만들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셨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온유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성질들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훈련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과격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베드로도 성격이 급하고 과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격이 급하면 베드로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 베드로도 나중에는 한없이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 역시 과격하고 직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칼같이 날카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나중에는 한없이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유한 성품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 낼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위해 아낌없는 사람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과 성령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도와 교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인생의 많은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질투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막의 웅덩이인 사지에 던져 졌다가, 애급의 종으로 팔리워 갑니다.

그리고 억울한 옥살이까지 경험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그 가슴에 한이 쌓이고, 분노가 쌓이고, 그의 인격과 성품은 뒤 틀어 질대로 틀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요셉에게 ‘힘’이 생겼습니다.

억울한 일을 많이 겪은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 그는 그 힘으로 많은 사람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히틀러’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정치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모든 나라의 역사가 다 똑 같습니다. 한이 많은 사람이 힘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에게 힘이 주어졌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다시 7-8절을 보면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이기고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의 훈련속에서 온유함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을 향한 꿈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고난이 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난을 겪으면서 온유함이라고 하는 최고의 보화를 캐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 것입니까?

그 속에 믿음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그 차이인 것입니다.

그 생명은 마치 진주조개속에 들어간 모래와 같이 나중에 값비싼 ‘온유’라고 하는 보화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모든 것으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과 씨름하며 사랑을 배우게 하시고, 슬픔의 파도 속에서 슬픔을 넘어서는 기쁨을 배우게도 하시고, 때로는 불화의 딜레마 속에서 화평의 진리를 배우게 하시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 오래 참는 인격을 연단하게 하시고, 때로는 억지로 손해 보는 경험을 통해 관용을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온 결과물로서 업적이 아닌 우리가 빚어 온 인격을 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가 얼마나 거창한 일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날마다 부딪치는 일상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 인격으로 빚어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위’ 곧 doing이 아닌 우리의

‘존재’ 곧 being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생을 통해 하나님의 합격을 받은 대표적인 케이스가 ‘욥’이 아니겠습니까?

 

욥이 무슨 거창한 업적을 남긴 것이 있습니까?

업적이라면 그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인생의 시련들을 무던히도 잘 견디고 인내한 것 뿐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내 종(사랑하는, 의로운) 욥”이라고 계속해서 부르십니다.

 

야고보는 인내의 표상으로 그를 소개합니다.

약5:11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고 증거합니다.

 

욥이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지독한 고통의 순간들을 이겨 낼 수 있었을 까요?

욥23:10이 그 대답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그가 나를 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를 순금과 같은 인격으로 연단하시고자 함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잘 견딘 것입니다.

 

둘째. 온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천국의 축복만 약속한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의 축복도 약속하셨습니다.

(신 7: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땅은 부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돈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땅부터 사놓을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시작 부터 지금까지 ‘부동산’은 부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에게는 땅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어떻게 땅의 축복을 받을수 있습니가?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다시 말하면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사람을 얻을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사람을 얻는 축복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믿을수 있는 사람을 얻는다고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평생을 같이 살아 갈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입니다.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먼저 온유해져야 합니다.

향기 나는 꽃에 나비가 날라 오듯이, 온유한 향기가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들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자신이 먼저 희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희생함으로 가장 많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온유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이땅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칼과 총으로 확장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먼저 주셨습니다.

조금의 이기심도 없이 순수한 사랑으로 자신의 일생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수없이 얻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먼저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부요하신 분이 십니다.

세상의 학식 있는자, 권세 있는자, 돈 많이 있는자 모두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예수님에게 드립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이땅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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