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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7) 화평케 하는 사람의 행복

화평케 하는 사람의 행복 마5:3-9

①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②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③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④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⑤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⑥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⑦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⑧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미국시민권을 가지신 분들은 몇 년만에 한번씩 날라 오는 배심원 출석 통지에 난감해 합니다.

어떻게 하던 빠져 나가 보려고 하지만 결국은 한 두 번은 참석을 해야 하게 됩니다.

저도 몇 번 미루다 이번에 어쩔수 없이 뽑혀서 열흘동안 배심원 재판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미국 사법제도를 직접 경험해 보는것도 좋다고 생각하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나 흥미를 가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교통사고 소송 민사사건인데 교통사고로 신경계통의 이상이 생긴 사람이 자신은 이제 평생 제대로 일 할수 없게 생겼으니까 앞으로 남은 평생의 보상을 하라고 400만불을 요구하고 소송을 건 재판이었습니다.

상대방 보험회사 변호사는 큰 이상도 없으면서 평생 일을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해서 서로 공방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의사들이 나와서 증언을 하고, 교통사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증언을 하고 자신들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쪽 변호사는 증언한 의사에게 묻습니다.

당신 오늘 하루 얼마 받느냐?

한 의사는 대답하기를 6천불 받는 다고 했습니다.

하루 나와서 몇시간 증언해 주는데 6천불이나 받습니다.

그래서 의사법으로 일년에 몇 번이상 할수 없게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변호사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너희들이 그렇게 증언하는 것이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 하고 배심원들에게 의심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것입니다.

 

지난 열흘은 그런 증언을 듣는 것으로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종일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데 별로 지루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시간이 금새 지나가 버립니다.

학교다닐때 강의실에 앉아 있을때는 시간이 안가서 몸을 비트는데 법정에 앉아 있는 것은 전혀 지루하지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이상했습니다. 왜 지루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됬습니다.

세상에 제일 재미 있는것 몇 가지가 있는 데 첫 번째가 남의 집 불구경하는 것이고,

둘째가 싸움구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은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도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평화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화를 깨트리고 싶어하고,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악마적인 그런 마음이 본능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일 것입니다.

이 우주가 존재하고,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인식을 하고 계십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 먹고 사는 문제 그것이 평화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평화는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에 우리의 가정에 평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첫째, 가정이 가정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들도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아이들이 인격이 바르게 자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행복은 사라지고 살아도 사는것 같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평화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혜가 안될 것입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없어질 것입니다. 세상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입니다.

 

나라에 평화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들이 불안에 떨 것입니다.

나라의 경제는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패망하고 이웃나라에 속국이 되든지 없어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들마다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써서 나라의 평화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지 못하면 그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먹는것 같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어도 사는 것 같지 않을 것입니다.

불안, 걱정, 염려로 마음은 지옥일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도 잃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평화가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격는 고통의 대부분, 그리고 가장 큰 고통은 평화가 깨어 질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평화가 깨어 질때, 사람과 사람사이에 평화가 깨어 질때, 국가와 국가사이에 평화가 깨어 질때 그 고통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오래 지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진 평화는 또 다른 고통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 평화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가장 존귀한 신분입니다.

인간이 가질수 있는 어떤 신분보다 더 존귀한 신분입니다. 팔복의 앞에서 말한 어떤 것 보다

크신 축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영광, 이 축복을 누구에게 주시느냐 평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평화가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 생명을 바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 평화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평화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무관심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는 바람앞에 촛불과 같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평화는 저절로 얻어진 평화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수많은 생명의 댓가로 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도 늘 노력을 해야 하고,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평화가 깨어지게 되었는가 그 원인부터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평화의 나라 였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다툼이 없었습니다. 짐승들과도 친구처럼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화를 깨트리는 악의 존재가 등장을 합니다.

사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천사의 일부가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을 했습니다. 하늘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하다가 이 땅으로 쫒겨 나게 됩니다.

 

사탄은 모든 악의 근원이요 원조인 것입니다.

사탄은 뱀에게 접근을 합니다.

그리고 뱀을 시켜서 이브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한 선악과에 욕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래서 평화롭고 행복하던 에덴동산은 깨어 지게 됩니다.

평화가 깨어지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평화를 만들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 평화를 깨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어햐 합니다.

사탄의 목표는 평화를 깨뜨리는 것있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깨뜨리기 위해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자신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람들을 이용해서 평화를 깨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잘못된 생각을 집어 넣고, 시기심을 집어 넣고, 불만을 집어 넣습니다. 분노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할때도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고 하는 생각을 집어 넣었습니다.

(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음속에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사람과 사람이 갈라지게 하는 마음, 자신의 안일과 유익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마음 이런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마귀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절대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하지 않습니다.

갈2:22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평화를 깨뜨리는 데 사람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평화를 깨뜨리게 만듭니다. 아담과 이브가 스스로 자신의 보금자리 에덴동산을 망가뜨렸듯이, 사탄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보금자리를 깨뜨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이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것 처럼 보이게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고전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둘째, 평화가 깨어지면 모두가 불행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나에게 행복이 오느냐 하면 절대 그런 일은 없는 것입니다. 남의 평화를 깨뜨리면 자신의 평화도 깨어지는 것입니다.

 

참 평화의 개념이 뭡니까? 내가 이겼다고 평화가 아닙니다.

내가 이기는 순간 다른 사람은 지는 것입니다.

내가 이겼다고 기뻐하는 순간, 상대방은 뼈아픈 실패의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했다고 기뻐할 것이 못됩니다.

한 사람이 성공할 때 10명, 100명이 실패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동산을 싸케 샀다고 좋아하지만, 판 사람의 입맛은 쓴 것입니다.

 

나만의 승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승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고, 너도 기쁘고 나도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깊은 산 작은 연못에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못을 독차지하려고 끊임없이 물고 무는 싸움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되었다. 서로 물고 뜯고 하면서 온 종일을 싸웠다.

결국 한 마리가 죽어 물위에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다른 살아 남은 한 마리는 승리를 자축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방해하는 자 없는 연못에서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족도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죽은 붕어가 물위에서 썩어 가면서 악취를 풍겼고, 급기야는 연못 전체가 썩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썩은 물 속에서 결국은 남은 붕어도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셋째,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만이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 평화가 깨어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없으면 평화도 없는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말합니다. 지금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핵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핵폭탄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들 끼리 싸우게 되면 서로 멸망하게 되기 때문에 강대국들끼리는 감히 싸움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로 견제만 할 뿐이지 전쟁을 벌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지금의 평화는 원자폭탄이 만들어 주는 평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일시적인 평화요, 불안한 평화인 것입니다.

 

조승희군 사건이 보여 주듯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조승희군은 그 정신질환이 좀 심각했을 뿐이고,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은 정신질환이 있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를 만들기 보다는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세상의 부귀영화, 눈앞의 유익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도, 교회에 오면 아멘하고 돌아서면 또 자신의 세계에 빠져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 한 평화는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마음속의 번민과 욕심을 버리면 될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면 평화가 찾아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왔을까? 창조주는 누구일까?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도를 닦았더라면 그는 위대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아마도 성경의 한부분을 차지하는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번민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 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입니다.

어릴적에 부모를 잃어 버린 고아처럼 스스로는 부모가 누구인지 알수 가 없는 것입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갈수도 없고 접근을 할수 도 없는 것입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그 지체는 금새 시퍼렇게 변하게 되고

피가 통하지 않으면 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삶은 썩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서 평화를 잃어 버리고 썩어져 죽어가는 버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면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가 하나님과 끊어졌던 다리를 이어 주었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보혈로 인해서 하나님과 평화를 가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그 마음속에 평화, 샬롬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어 찬송에 It’s your blood that cleanses me,

It’s your blood that gives me life.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하고, 예수님의 피가 나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엡 2:16-18)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사람만이 평화를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승희군도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없으니까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평화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믿음 좋은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평화를 만든 사람인 것입니다. 화평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멀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생활에 실망을 하고,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을 하면서 신앙생활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앞에 십자가의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썩어져가는 인생을 살던 우리에게 ,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수도 없던 우리앞에 십자가의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앞으로 건너 오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주저 주저 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시험이 들어서, 세상의 것들에 마음이 묶여서 주저 하면서 주님앞에 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빠져 나올때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롯의 아내 처럼 세상미련을 끊어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발목이 붙잡혀서 주님께 가까이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입니다. 평화의 나라입니다.

축복의 나라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평의 강물은 십자가에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로 나갈 때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에서 해방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번민에서 해방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가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이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이 자유를 주고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여러분이 있음으로 인해서 여러분의 가정에 평화가 있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평화를 만드는 평화의 사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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