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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4) 사랑

그리스도를 본받아(4) 사랑 요일4:7-1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세상, 똑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태양계속에 ‘지구’라고 하는 ‘행성’에서 똑 같은 하늘 아래 똑 같은 땅을 밟고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똑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하늘과 넓고 시원한 태평양을 끼고 있는 미국에서도 가장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 켈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멋진 환경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똑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갈등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한치의 차이도 없이 똑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시는 것이 또한 ‘하나님의 행복’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는 것이 부모님들의 행복이듯이 그것이 하나님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행복’이 ‘하나님의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전도를 많이 하고 선교를 많이 해야만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처절한 고통속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신 것도 인간이 잃어 버린 행복의 길을 찾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 그리고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야 만이 온전한 ‘행복’을 찾을수 있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것 처럼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 행복은 관계속에서 만들어 집니다

건강문제, 재정문제, 환경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 그리고 ‘관계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서 제일 쉬우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랑’ 입니다.

모두가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데 온전한 사랑을 만들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를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하나님 보다 자녀를 더 사랑합니다. 모든 것이 자녀 중심입니다.

교회생활도 자녀중심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가 아니고 ‘자녀 따라 강남 갑니다.’

그렇게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들이 행복한가?

부모들이 행복한가?

그렇지 못한 가정이 대부분입니다.

그만큼 온전한 사랑을 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랑입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랑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연극, 음악, 미술, 오페라, 클래식, 가요

요즘 유행하는 ‘트롯트’ 이던, K팝이든, K드라마 이든 모든 것이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 때문에 상처 받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들은 ‘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느냐?’ 고 하지만 사실 인간은 사랑을 받을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잘 하지 못하지만, 또한 사랑을 받는 것 역시도 잘 하지 못합니다.

 

  • 가장 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받아 들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다음에 큰 사랑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을 받을줄을 모른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뚤어진 사랑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한 사랑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요절인 요한복음 3장 16절도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 왕의 왕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니까, 한없이 사랑하시니까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증거는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없느냐’ ‘왜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느냐?’ 말하는 사람일수록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사랑’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절대 그런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랑이 부족함을 깨닫고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두 다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계명 가운데 제일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이들이 그런 질문을 한 것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613개의 모든 계명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중요하냐? 성경의 박사들도 대답하지 못했던 질문입니다. 이미 답을 알고 가르치고 있었다면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간단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요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2:37-40).

 

‘사랑’은 모든 계명의 답 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사랑을 모르면 다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사랑, 이 놀라운 사랑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우리 인간이 반드시 가져야 할 사랑,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 인생은 위대한 능력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 교회에서 늘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귀가 따갑게 듣습니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예수님 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성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모두 ‘완성’을 위해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이지 아직 ‘완성’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매일 같이 자신과 싸우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완성되어 가기 위함인 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어를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것이 영어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민온 우리는 영어를 하려면 애를 먹습니다.

머리를 써야 하고 복잡합니다.

 

저는 미국에 40년을 살면서도 영어를 하려고 하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7년을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그후에 한인타운에서 교회를 하면서 한국말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영어가 갈수록 안되는 것입니다.

 

  • ‘사랑’은 예수믿는 우리들의 ‘전공분야’ 여야 합니다.

사랑은 예수믿는 우리가 가장 자신있게 자연스럽게 해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고, 어색하고, 잘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어를 잘하려면 계속 영어를 해야 하듯이, 사랑도 하려고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의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에게 잘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것입니다.

 

  • 우리 교회를 시작하고 지난 30년 동안 제일 많이 설교 한 것이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목표가 ‘사랑의 실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을 강조하고 설교할 만큼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살갑게’ 사람들을 대하지도 못하는 성격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 하고, 말하는 것도 싫어 하는 사람이 지금 까지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실천하고 섬기려고는 노력은 많이 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우선은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가식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집에서는 못하고 밖에서는 잘하는 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식입니다.

위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실천’으로 첫 번째는 우선 ‘잔소리’ 안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잔소리 안하고, 자녀들에게 잔소리 안했습니다.

왜 잔소리를 못했느냐? 하면 ‘잔소리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고 성경말씀에도 ‘잔소리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어디에 잔소리 하지 말라고 했나? 그런 성경구절 보지 못했다..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잔소리 할 것도 없었지만 ‘잔소리 안하는것도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 모든 갈등과 싸움은 ‘잔소리’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사랑은 오래 참고’ 라고 첫 번째로 말씀합니다. ‘오래 참고’라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은 잔소리 하지 않고’..라고 의역을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도 하기 어려운데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 ‘하나님과의 사랑’을 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만이 가능한 것이 ‘아가페의 사랑’ 입니다.

 

성령님은 기도할 때 우리에게 강하게 임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수 없고,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하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생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들은 기도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마음으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셨던 그 일을 계속해 나가는 일입니다.

 

첫째,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해야 합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한 분이고, 나는 80억 인구 중 한 사람이므로,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그분이 어찌 나를 알랴?”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집단으로 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듯이 사랑하신다”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그분은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마치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나에게만 쏠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감격합니다.

그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여 통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잠시 혼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같은 인격적인 만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

 

그러고 나면 내가 달라 보입니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랑에 빠져보셨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빠져 계십니까?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은 주님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혐오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가장 큰 반역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보듬어 안고 사랑할 때, 우리의 속 사람은 무럭 무럭 자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람의 사랑으로는 아무리 사랑을 많이 받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을 해 주어도 아이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청소년이 되면 ‘친구 사랑’을 찾아 나가고

좀 더 나이가 들면 ‘짝’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사랑해 주어도 ‘키워 놓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야만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직접 찾아 오십니다.

일대일의 만남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노아를 부르실때도 노아에게 직접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직접 오셨습니다.

얍복강에서도 야곱에게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모세에게도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여호수아에게도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사무엘에게도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직접 찾아 오셨고,

사도 바울에게도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10억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어도 주님은 개인적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이웃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우리가 사랑받을만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도 우리의 이웃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겠느냐?”(마 5:46). 그래서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분은 “저는 원수가 없는데요”라고 말하는 삐딱선을 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원수’라는 말을 ‘사랑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라고 바꾸어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 모습 이대로 받아 주셨듯이

우리도 세상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 받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습니다. 잘하고 못하고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겉으로 보기에 좀 멀쩡해 보여서 그렇지 우리 모두 육체적, 정신적, 인격적 장애가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습 이대로를 서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이대로를 이해하고 서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하게 체험하면 일어나는 변화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도록 이끌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기 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까?

저는 25년만에 예수님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어떤 분은 30년, 40년,, 50년이 걸리신 분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도 10년 20년이 걸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에 나와서 단번에 신앙이 뜨거워 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특별한 은혜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상처가 많으신 분들일수록 ‘사랑’을 받아들이고 배우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 2천년 전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반항하고 살던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의 옷은 우리의 몸에 맞지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의 습관에 길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세상에 길들여 있습니다.

주님 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색합니다.

 

  • 우리가 익숙한 것은 일 중심의 생각 구조입니다.

세상은 일 중심의 세상입니다.

공부를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낙오됩니다.

회사에서도 일을 잘하면 승진이 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습니다. 우리의 DNA는 일 중심의 생각구조로 만들어 져 있습니다.

 

일중심으로 생각하게 되면 항상 분쟁과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일은 결과를 생각하게 되고,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생각하게 되고, 효율절이냐 비효율적이냐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가장 비효율적’인 것입니다.

일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사랑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하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갈등하고 시끄럽고 분쟁이 있다면 그것은 일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입니다.

 

  •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렵다기 보다 사랑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귀가 따갑게 들었지만 마음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미운걸 어떻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싫어하고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용납이 안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 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한단계 더 깊어 질수 있습니다.

 

제가 수시로 ‘Doing’ 과 ‘Being’ 행함과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배우려면 ‘행함’으로 사람을 보면 ‘사랑’을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백번 잘하다가 한번 잘못하면’ 미워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 어떤 사람이 완전하겠습니까?

 

인간의 마음으로는 사랑할수 없는 사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난 사람은 더 큰 사랑을 할수 있습니다.

참고 인내하고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사랑할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랑할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세상이 주지못하는 사랑을 보여 줄 때 전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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