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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영성을 찾아서(3)

더 깊은 영성을 찾아서(3) 3:1-5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컴퓨터 시대에 들어서면서 과거에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이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이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상이란 뜻으로, 특히 그리스 정교회에서 모시는 예수·성모·성도·순교자의 초상.

②바탕화면에 조그마한 로고 또는 기호를 만들어 표시한 것으로 프로그램이나 전화기의 앱을 상징히는 로고를 말합니다.

 

아이콘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가 개발한 것입니다.

 

이 ‘아이콘’이라는 말이 요즘은 인기있는 사람이나 연예인들을 표현 할때도 쓰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를 대표하는 ‘아이콘’도 있습니다.

‘십자가’ ‘물고기’ 그리고 ‘하트’ 표시 입니다.

‘십자가와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고 ‘하트’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시하는 아이콘 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말씀이 있지만 모든 것을 한마디로 하면 ‘사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죄인된 인간을 사랑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의 사랑’ 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교회생활의 모든 것 성경읽기, 성경공부, 제자훈련, 등등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세상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세상의 모든 유행가 가사들은 거의 모두가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영화, 소설속에 사랑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 것도 ‘사랑’때문이고, 그 ‘사랑’의 결실로 ‘자녀’가 태어납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사랑’의 결실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성경의 사랑을 특별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줍니다.

그 특별한 것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거룩 때문에 세상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특별한 비법이 있습니다. 코카 콜라도 특별한 맛을 내는 비법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따라 올수 없는 특별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속에 거룩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의 삶과 다른 것 없어 보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낳고 기르고, 직장생활하고, 취미생활하고 뭐 다른 것 하나 없어 보입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뭐다른 것 없어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질병이 생기고, 재정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생기고, 불행한일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거룩이라는 것 때문에 세상과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거룩한 희생입니다. 거룩한 고난입니다.

사람도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입니다. 거룩한 사람입니다.

 

세상과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유일한 단어가 거룩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이 빠져 버리면 세상과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거룩은 신앙의 생명입니다.

거룩은 신앙의 핵심입니다.

거룩이 없는 신앙은 생각할수도 없습니다.

거룩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주요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거룩하지 못함에서 시작이 됩니다.

성막거룩을 잃어 버린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갈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밀지도입니다.

 

성막은 나무로 치면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꽃, 그리고 그늘을 만들어 주는 잎, 맛잇는 음식이 되어 주는 과일입니다.

그 모든 것이 뿌리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이란 주제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주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다 보면 재미없는 부분을 만납니다.

창세기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출애급기도 전반부만 해도 재미 있습니다. 그러다 중간에서부터 성막의 이야기가 나오고, 레위기에 들어가 제사의 이야기와 율법의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쾌쾌묵은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제일 인기 없는 부분이 레위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성막을 이해하시게 되면 재미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신비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말씀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거룩을 향해 가는 삶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신학자 헨리 할러먼교수는 성화를 가르쳐 오늘날 잊혀진 축복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행복하고, 축복받기를 원하지만 거룩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거룩을 떠나서는 있을수 없습니다.

 

과거 헤리슨 포드가 주연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 Raiders ‘잃어 버린 법괘를 찾아서란 영화 씨리즈가 있었습니다. 그 잃어 버린 법괘가 바로 성막의 지성소에 있던 법궤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막의 법궤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있는데, 진작 크리스챤들은 법괘를 찾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룩없는 축복과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막이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생명이요, 하나님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 나시는 장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애급에서 살인을 하고 도망자 신세로 40년을 보내고 있었던 모세 였습니다.

나이도 80입니다. 그때는 조금더 오래 살았으니까 지금 나이로 치면 65세에서 70세 정도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세상일에서 은퇴를 해야하는 그런 나이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엄청난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나타 나셨습니다.

애급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해서 가나안땅으로 이주해 가야 하는 사명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해서 2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인구를 이끌어 내야하는 엄청난 일입니다.

 

그리고 한 국가를 만들어야 하고, 그 국민들이 지켜야 할 법을 만들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막과 제사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 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네가 서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 말씀하셧습니다.

 

이것은 부름 받은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첫째는 내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둘째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여러분이 있는 장소가 거룩한 곳이요, 여러분이 하는 일이 거룩한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 자신의 방법, 자아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것을 내려 놓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함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레20:7-8)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또 하나의 이름을 만납니다.

그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곧 여호와 카데쉬‘(케데쉼)라는 것입니다

 

(레 25:18)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거룩은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고 축복이 거룩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룩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있고, 거룩을 잃어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도 떠나고 축복도 보호하심도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많은 재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권세와 명예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만큼은 가질수 없습니다. 오직 성도만이 ‘거룩’해 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거룩’입니다.

성도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가치도 거룩입니다.

성도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특권도 거룩입니다.

 

인간의 불행이 언제 시작이 되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에서 떨어져 나가면서부터 였습니다.

왜 거룩을 잃어 버렸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부터 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자신의 맹세와 서약도 그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우리중에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을 진다. 나는 서약한대로 산다고 말할수 있는 분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결심하고 서약하고 약속하고 하지만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력할 뿐입니다.

 

성철스님이 평생에 딱 두 번 결혼주례를 섰다고 합니다. 그중에 한번의 주례사의 내용이 나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은 어떻게 주례사를 하나 궁굼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중에 하나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신랑,신부 두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두사람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려며 여기에 와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됩니다…’ 거기에는 성철스님이 주례한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말하기를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됩니다. 저 사람들은 모두 실패자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사람들은 결혼식을 할 때 모두 맹세를 했습니다. 나는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부족한 것을 감싸주고, 모자라는 것을 채워 주겠습니다.

영원히 변함없이 사랑하겠습니다. 다 그렇게 손을 들고 서약을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거 지키는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실패자들입니다. 두 사람은 저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면 행복할수 있습니다.

좀 적라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결혼할 때 서약을 하고, 세례받을 때 서약하고, 직분을 받을 때 서약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지키지 못합니다.

 

결혼서약이나, 직분서약이나 서약은 엄숙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사람들과의 약속입니다.

서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서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 막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이 이와 같이 중요한 것이 때문에 하나님은 성도들이 거룩해 질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막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이라고 하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구별되다는 말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입니다. 죄악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입니다.

죄는 지을 때 쾌락이 있습니다.

사실 좋지 않은 것 일수록 재미가 더 있습니다.

음식도 몸에 좋지 않는 것이 더 맛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말은 듣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해하는 말은 듣기에 달콤합니다.

 

거룩은 그런 죄악의 쾌락으로부터 구별되는 삶입니다.

죄로 인한 쾌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즐거움을 찾는것입니다.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주일을 가르켜서 성일이라고 합니다. 성일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날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주일날은 구별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백성과 아닌 사람들을 구별해 놓는 날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주일날 교회가는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구별해 놓으시는 날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일주일동안 세상에서 같이 살다가 주일만 되면 하나님의 백성과 아닌 사람과 완전히 구별되어 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하나님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성도는 이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것을 반복하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늘 하던 대로 하나님앞에 자연히 가게 됩니다.

 

구별된 삶은 절제된 삶을 말합니다.

거룩한 삶은 경건한 삶입니다. 경건은 절제된 삶을 말합니다.

성도는 하고 싶다고 다할수 없습니다.

말하고 싶은것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입고싶은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합니다.

가고 싶다고 아무곳에나 갈수가 없습니다.

구별된 삶은 절제된 삶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둘째,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하다, 깨끗하다, 찬양을받을만 하다, 존경을 받을만 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세상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수 있습니까?

인간은 완전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완전하려고 노력은 해야 합니다.

 

세상의 판단은 상대적이고 비교입니다.

공부도 잘한다 못한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그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상대적인 것입니다

 

완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함을 닮기 위해서 노력하면 남보다 좀더 완전할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허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은 남보다 나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되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남보다 나아야 합니다.

가정생활도 나아야 하고, 사회생활도 나아야 하고

말씀과 기도생활도 나아야 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도 남보다 나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NO를 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YES하시는 것입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시는 것입니다.

 

구세군의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가 말년에 안질로 고통하다가 진단을 받은 후 의사는 부스의 아들에게 부스가 시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오래 주저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님 눈의 상태가 좋지 않으시데요.” “그럼 내가 시력을 잃게 된다는 말이지” “죄송해요. 그런 것 같아요” 한참을 침묵하던 부스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런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그럼 지금까지 두 눈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왔는데, 이젠 두 눈 없이 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방안을 찾아야 하겠구나”

이런 삶이야 말로 거룩한 인생의 표본이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빠져 나갈까 궁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앞에 더 드릴것이 없을까 애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거룩은 부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한 인생여정은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까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거룩은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는 힘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이 당장은 좀 더 빠른 것 같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끝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사역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을 보았습니다.

누가 마지막 까지 사명 감당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명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기도하지 못하면 다 낙오합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지만 다른 것 아닙니다.

기도에 있습니다.

사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면 끝까지 하지 못합니다.

 

성도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늘 조용히 하나님앞에 나를 비추어 보고 반성하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잘되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아닙니다.

건강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도 아닙니다.

약할 때 약해지지 않고 더 헌신하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은혜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약해지지 않고 더 감사하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흐트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주신 말씀 붙잡고 매일 기도할 때 좀 더 거룩해 질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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