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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영성을 찾아(5) 

더 깊은 영성을 찾아(5)  출40: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잔대를 들여놓아 불을 켜고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고 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성경에 말씀가운데 ‘모든 것을 열매를 보아 알수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결과는 열매로 알수가 있습니다.

똑 같이 농사를 지었는데 열매가 더 많다면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공부는 그것을 찾는 것입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배우는 것이 학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분명히 열매의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유럽사람들은 이곳으로 이주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몇백년이 지난 다음 그 열매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볼수 있습니다.

 

기독교배경을 가진 북유럽사람들이 뿌리를 내린 미국과 케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캐톨릭배경을 가진 남유럽 스페인, 포루투칼 사람들이 뿌리를 내린 남아메리카 쪽은 여전히 못살고 힘든 나라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가 국경이 붙어 있는 샌디에고나 엘파소에 가면 한눈에 볼수 있습니다.

같은 땅인데 담벼락하나 넘어 어떻게 저렇게 다른 세상인지 신기할 정도 입니다.

 

같은 유럽에서 왔고, 같은 기독교 배경을 가졌는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느냐? 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느냐? 에 따라서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생겨 버렸습니다.

 

이렇게 열매가 다르다면 특별한 것이 있을텐데 사람들은 그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은 유대인들이라는데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학문, 과학, 예능, 정치, 경제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고, 노벨상 수상에서도 다른 민족과 비교할수 없이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과학자 가운데는 물리학의 아버지 갈릴레이,

물리학의 완성자인 아이작 뉴턴도, 앨버트 아인슈타인,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에릭 프롬, 엘빈 토플러(제 3의 물결) 멘델스존, 쇼팽, 바그너, 유명한 지휘자 번스타인, 베토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채플린,

록펠러, 컴퓨터세상을 만든 빌 게이츠,

미 연방 준비이사회 의장이었던 엘런 그린스핀,

미디어 황제 머독, 스타벅스 커피,, 루즈벨트도, 아이젠하워, 딕 체니, 헨리 키신저 모두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인구가 많아서 많은 유명인사가 생겼다면 그나마 설명이 되겠지만 유대인은 아주 작은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은 한반도의 10분의 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특징은 유대인은 문화와 역사 자체가 성경입니다. 그들의 법이 곧 성경말씀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 남자 여자 구분할 것 없이 모두 같은 전통, 문화 속에서 움직입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같은 역사로 이어져 오고 있고, 모든 세대가 같은 문화속에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검정 모자를 쓰고 토요일에 회당에 가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검정 옷에 검정 모자를 쓰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시대와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3500년전의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유대인이 미개한 민족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형편이 못되는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생명보험을 큰 것을 든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분명 다른 것이 있는 것입니다.

 

성막의 역사가 곧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삶 자체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 3500년전 모세와 더불어 시작된 성막의 전통을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광야시대 이동용이고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면서 건축물로 것으로 만들어 진 것이 성전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성전중심으로 생활을 하고 있고, 모세가 말한 율법을 그대로 지키고 살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는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3500년 전과 똑 같이 양을 잡아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아직까지 부인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십자가에 메달아 처형한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유월절 마다 양을 잡아 피 흘렸는데

그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속죄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명처럼 생각하고 지키려고 하는 성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동안 성막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 성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영적진리를 깊이 깨닫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성막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성막뜰, 성소, 지성소입니다.

성막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성막뜰’이고 맨 먼저 있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성막뜰 이곳은 일반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갈수 있는 곳입니다. 자신의 죄를 대속함을 받기 위해서 양이나 소를 끌고 들어 갑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이 그 짐승을 대신 잡아 제사를 드립니다.

이곳이 성막의 첫 번째 장소인 성막 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일 마다 하나님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예물을 드리는데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물이 어떤 예물입니까?

피의 예물입니다.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리는데 고기를 불태우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피를 드린 다는 것입니다.

 

피는 무엇입니까? 피는 생명입니다.

생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피를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에 엄숙한 것입니다. 살고 죽는 문제가 달려 있기 때문에 함부로 할수 없는 것입니다.

 

콜로라도 덴버의 어느 극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수십명이 다쳤습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는 천진난만한 6살 짜리 아이도 있고. 자기 생일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죽은 사람도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총기 사건에서 운이 좋게 살아 남았는데 이번에 희생을 당한 불행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죽음앞에는 모두가 엄숙해 지는 것입니다. 미워하던 사람도 죽으면 고개를 숙이고 위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가장 엄숙한 순간입니다.

 

예배는 피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피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바른 예배를 드릴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예배를 오락 식으로, 재미로 드리고, 재미가 없으면 좋은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재미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10:19)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3: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벧전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모두가 피의 이야기입니다. 피가 있으면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피의 제사입니다

다만 모세시대와 다른 것은 모세는 짐승의 피로 드렸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드려야 하나님 앞에 나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이 없어서 달라는 것이 아니라 너는 내게 올 때에 너의 죄를 가지고, 죄의 모습 그대로 너는 내게 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없으면 살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급할 때 애급에 살던 모든 집의 장자들은 죽음을 당했지만 문지방에 양을 잡아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방사능사고가 나면 그냥 가면 모두 오염되어 죽습니다. 방사능을 차단할수 있는 옷을 입어야만 됩니다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앞에 그냥 서면 죽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른 사람만이 살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아벨의 양으로 주님은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올 때 내 공로로 가인처럼 나와서는 안됩니다. 나는 의롭다는 마음으로 나와서는 안됩니다. 죄인이 어찌 하나님 앞에 그냥 나올 수가 있습니까?

주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주의 피로 나를 정결하게 하옵소서, 주의 피로 우리 온 교회를 정결케 거룩하게 하옵소서, 나는 당신의 피를 믿고 여기 올라옵니다.

주의 흘리신 거룩한 보혈로 내 온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옵소서, 교회는 피가 있는 곳입니다.

 

그 피가 우리에게 힘이 되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홍해같이 가로막힌 모든 저주와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인 것입니다.

 

우리는 피의 예배를 드려야 은혜를 받습니다.

내 마음에 오래오래 묵은 죄악이 떠나갑니다.

사탄과 사망의 권세가 물러가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습니까? 병마가 물러가지 않습니까?

옛 생활이 변화 되지 않습니까? 내 마음에 강같은 평강이 안옵니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강팍한 마음이 녹아지는 것을 못 느끼셨습니까?

우리는 피의 예배를 드릴 때 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가인은 예배를 드리고 마음에 분노가 생겼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가 상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왔습니다.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악한 마음이 지배했습니다.

 

오래전에 정근모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신 분들이 계실것입니다..

정장로님은 중학교 때도 전국경시대회 일등, 경기고등학교 1등으로 입학하고, 일학년 마치고 서울대학에 들어가고, 고등학교 1년을 하고 어떻게 서울대에 들어갑니까? 미국가서 2년 반만에 최고의 명문에서 박사학위 받고, 64년엔 25살의 나이로 프린스턴 대학의 핵융합연구실의 연구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카이스트의 전신인 과학 기술원을 만들었습니다. 과학기술처장관을 두 번이나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분의 아들이 10살이 되었을 때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다. 이분의 마음에는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이 꽉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는 드렸지만 늘 가인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피의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병들면서 현대 의학으로 못 고칠 때, 과학적으로 안 될 때에 과학자가 하나님께 무릎 꿇은 것입니다.

그제야 하나님앞에 무릎꿇고 자신의 교만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피의 예배를 드립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주 날 오라 하시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골고다의 보혈로 날씻어 주소서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기도하고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현대의학으로 고칠수 없던 아들의 병이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제야 영혼의 눈을 뜨고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정장로님은 되지도 않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떨어 졌습니다. 되지도 않을 것을 왜 나갔냐고 창피만 당할 것을 왜 출마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정근모장로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대통령후보에 나선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나간 것이 아니라 대통령후보였다는 이력을 하나 더 넣기 위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력을 가지고 제3세계의 정치인들을 전도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야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받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올 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은 죄에 대한 회개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성결케 하는 자세입니다.

 

회개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구원에 이르는 회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고 살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생 한번 하면 되는 회개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댓가는 심판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죄인이었던 것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의 인생에 주인이 주님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대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주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 고백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주님을 내 마음의 왕좌에 앉히고 오직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 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전환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님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방향전환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완전한 방향전환은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서 나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깨달음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내가 죄인 것이 깨달아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2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해서 깨달아 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개인적인 체험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장과 성숙을 위한 회개가 있습니다.

이것은 거룩해 가는 과정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했지만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평생 세상에 살면서 세속적인 생활이 몸에 배여 있습니다. 생각도 마음도 하나님 중심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들이 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세상에 먼지가 가득하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매일같이 죄의 먼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먼지를 매일 닦아 내지 않으면 쌓이게 되고 나중에는 딲기도 어려워 집니다.

책상정리를 잘하시는 분들은 매일 같이 정리를 합니다. 그런데 책상정리를 잘 할줄 모르는 사람들은 몇달이 지나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상이 늘 어지럽습니다. 나는 왜 책상정리가 안되지?

원인은 딱 한가지입니다. 매일 같이 정리를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거룩과 성결의 삶을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차이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 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눈물을 얼마나 흘리느냐, 죄를 얼마나 깨달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돌이키는 것입니다.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님앞에 돌아오고, 잘못된 행실을 하던 사람이 그 행실을 중단하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보혈을 의지해서 예배할 때 주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보혈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보혈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문제가 산더미 같이 많아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면 넘어가지 못할 산이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이 없는 것입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우리는 부족하고, 죄가 많지만 주의 보혈이 그것을 가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씻어 주시고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만물이 보혈의 능력으로 회복되는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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