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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18) 세가지 감사

복음이야기(18) 세가지 감사 시136:23-26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여기 앞에 있는 과일들을 보시면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가 이처럼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즐겁고 기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고, 아픈 사람처럼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설교라도 은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고 잘 사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하고도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성격과 성품이 비뚤어 지면 인생도 비뚤어 지게 되고 더 힘들게 살아가게 됩니다.

상처받고 비뚤어 진 성격과 성품이 좋은 성품으로 바뀌어 져야 합니다.

복음은 그 타고난 성품을 다시 만들어 줍니다.

좋은 것은 더 좋게 만들어 주고, 나쁜것은 좋게 고쳐주는 능력이 복음안에 있는 것입니다.

 

같은 인생을 살아도 더 기쁘게,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좋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더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에 추수감사라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모든 날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갈수도 있고 특별한 날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백배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냥 보낼수 있는 똑같은 주일이지만 ‘추수감사’라고 하는 의미를 붙이니까 이렇게 다른 날이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한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둘째는 우리를 대신해서 이렇게 농사를 짓고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는데 가장 중요한 음식을 만들어준 농부들에게 감사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기에 많은 과일이 있습니다.

그중에 ‘감’은 우리 교회 화단에서 자란 ‘감’입니다.

여러분 이 ‘감’을 보면 참으로 오묘하지 않습니까?

감나무가 땅에서 물을 빨아드리는 것 밖에 없는데 그 물이 이렇게 붉은색의 감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겨울에 감나무는 앙상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파란 잎이 나기 시작하고, 그리고 초록색 감이 점점 자라면서 이렇게 붉은 감으로 변할까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감나무가 땅속의 물을 빨아 드리고, 흙속의 영양분을 빨아 드립니다.

물만 빨아 드린 것이 아닙니다. 태양빛을 받아서 그 빛의 온도와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감이 자리고 익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감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한 작품인 것입니다. 이 과일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을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추수감사절은 이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감사하는 의가 많고, 거기에 비해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구원의 하나님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을 때 인디언들이 건네준 곡식으로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거두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은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땅이 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건너온 땅이 었습니다.

그런 이민자들에게 한해의 농사의 수확은 단순한 수확이 아닌 구원의 은혜였습니다.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는 그런 성격이 더 강한 것입니다.

 

요즘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는 그 어느때 보다 더 감사해야 할 때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할 때 그 감사는 더 커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기차를 탔는데 사납게 생긴 어떤 아주머니가 어린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억지를 부리는 녀석, 떼를 쓰는 녀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녀석에다 기차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피우는 녀석 해서 기차안이 이 어린아이들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이런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야단치면서 난리를 쳤습니다.

목사님은 도무지 참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금방이라도 짜증을 부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의 마음속에 감동이 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 “그래, 감사해야지,어떻게 감사할까 하나님이시여, 저 여자가 내 아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그는 기도했다고 합니다.

좀 은혜스럽지 못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려고 하는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헬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고 말했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하지만 세가지에 대해서 늘 감사해야 합니다.

 

첫째는 과거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의 과거에는 좋은 일도 있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과거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쓰라린 경험들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감사할수 있는 믿음이 좋은 믿음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과거를 불행하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과거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과거의 매듭을 풀지 못한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일때 우리는 과거의 사슬에서 풀려 날수가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목회자 아버지 학교에 갔었었습니다.

강의 하거나, 간증하시는 목사님들이 자신들이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끔찍한 고통들을 주로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듣는 목사님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시원해 하는 것입니다.

나만 고통스러웠는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것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도님들도 그런다고 합니다.

우리만 이렇게 싸우는줄 알았더니 목사님도 그러는구나,

우리 애들만 속썩이는줄 알았더니 목사님애들도 그렇구나,,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하고 ‘한번도 안싸웠다 , 화낼일도 없다’

고 하니 성도님들에게 별로 은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님들을 시원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맨날 부부싸움을 할수도 없고, 거짓말을 할수도 없고, 참 딜레마입니다.

 

감사에 대해서 이야기할때도 ‘나는 과거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 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늘 감사하면서 삽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 성도님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목사님도 불평으로 가득 찰때가 있었구나 그러면 나도 가능성이 있겠구나’위로가 될 수가 있겠지요..

 

그런데 어쩝니까? 제가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지난달에 뉴욕세미나를 가서 목사님들과 이야기하는데 어느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늘 화가 나서 집에만 가면 화를 사모님이나, 자녀들에게 터뜨리는데 아무리 안할려고 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목사님은 말하기를 자신은 성도님들 때문에 너무나 속이 상해서 늘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손목을 보면 칼로 이렇게 긋고 싶다는 것입니다. 참 심각한 분들을 보았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시작할 때 37살이었습니다.

목회가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 였습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도 아니요,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요 행정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교회를 시작하고, 교회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금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한교회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목회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뿐만 아니라 온 식구들과 자녀의 일생과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수 있는 것은 감사하고, 나에게 자신의 일생을 맡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는 일 밖에 없겠다 생각하고 그것을 저의 목회의 제일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입니다.

저는 말씀이나 기도의 큰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수 있는 것은 ‘화 안내고 사는 법, 행복하게 사는법 그리고 축복받고 사는법’,이런것들은 확실하게 가르쳐 드릴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세상에 그늘이 되어 주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늘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서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평안이 보여지고, 느껴지는 그리도 모든 사람들이 그 평안을 가질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목회자인 저를 시작으로 우리교회 리더들이 이되고 바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기댈수 있는곳, 사람들이 쉴수 있는곳,

사람들이 즐겁게 놀수 있는곳 그곳이 산이요 바다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평안이 저에게 있어야 하고, 그리고 교회의 리더들에게 그 평안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모든 짐진 사람들을 초청하셨습니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에게 오면 쉼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신곳이 어딥니까?

바로 교회가 아닙니까?

 

‘행복도 성공’도 이것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성령의 열매,은사에 대해서 말씀도 하고, Being과 Doing에 대해서 말씀도 하고, 1 Calling과 2 Calling에 대해서 말씀했는데 그것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론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모든 것이 있는것입니다.

다음주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둘째. 현재에 대한 넘치는 감사

현재의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현재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더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말합니다. 갈수록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작년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과거 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지고,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고통은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환경으로 돌아갈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것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이기고 앞을 향해서 전진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연령별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65세 이상의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 났다고 합니다.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나이에 정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행복을 가장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10대와 20대라고 합니다.

그나이는 인생에 가장 좋은 나이입니다.

가장 건강하고 활기 찬 좋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 나이에 행복을 제일 못느끼고, 반대로 욕구불만이 가장 많다는 것입니다.

 

수입이 중산층을 넘어가면 돈으로 맛볼수 있는 행복의 체감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 부터는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도 더 이상의 행복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부터는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것을 나눌때 행복더 더 커지고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딤전4:4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것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현재의 기쁨, 현재의 고통.. 모두 감사한 것입니다.

 

셋째, 미래에 대한 감사

성경은 언제나 더 나은 미래 전망을 약속해줍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면, 거기가 광야이든지 바다 한 복판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불경기든지, 경제 불황이든지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한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오직 믿음으로살기만 하면 우리의 미래는 절대 안전합니다.

 

요즘은 벼랑끝은 걷는것 처럼 아슬아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벼랑끝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벼랑 끝에 서봐야 진정한 믿음을 배울수 있습니다.

진짜 영성은 벼랑끝에서 얻을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나오는 감사가 진실한 감사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들어가는 여호수아를 향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가장 안전한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영국 속담에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위기를 당할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그 때에야 인간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게 되며, 하나님을 참되게 만나는 사건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실마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고 나면, 상황은 위기를 겪기 이전보다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편 저자처럼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시 119:71)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위기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시인 윤동주의 시중에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위해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 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수있도록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오면

나는 나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대답하기위해 사람들에게 상처를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말아야 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위해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아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나가겠습니다.

 

세상은 늘 만족 스럽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보아도 만족 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의 삶은 더 온전해 질수 있습니다.

감사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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