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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곳을 향하여(1)

더 높은 곳을 향하여(1) 신앙은 성장해야 합니다. 빌3:5-14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신앙생활은 곧 예배생활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는 모습이 그 사람의 신앙입니다.

온전한 예배는 온전한 생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예배도 진지하게 드리게 됩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은 그 사람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예배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좋은 신앙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밑에서 방황하지 말고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보고 길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보아야 빨리 길을 찾을수 있습니다.

 

영적인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높은 곳에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가르켜 줄수가 있습니다.

 

목회자가 해야하는 일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중요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방향’을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가르켜 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야하는 목적지, 목표가 어디인가를 계속해서 이야기 해주는 것이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속에 살면서 자신들의 목적지를 잊어 버릴때가 많습니다. 당장의 현실이 급박하다 보니 나중의 일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계속 말해주는 역할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갈때 네비게션을 키면 목적지로 가는 것을 계속 가르켜 줍니다.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면 계속 돌아가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한국의 네비게이션은 너무 잘되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잔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릅니다.

 

요즘 농담으로 하는 말중에서 인생을 편하게 살려면 세여자의 말을 잘들어야 한다는 우스개 말들을 합니다.

‘엄마, 아내, 네비게이션아줌마’ 라고 합니다.

농담같지만 틀린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행기는 목적지에 따라 비행기 기름을 채우는 것도 달라집니다. 기내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비행기 기종도 달라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목적지가 분명해야 삶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분명하면 헛고생 하는 것을 막을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했는데 헛고생하게 되면 그것처럼 허탈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 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잊어 버리지 않게 계속 가르켜 주는

영적 네비게이션입니다.

우리 신앙의 최고의 선배인 사도바울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2절에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자신이 얻으려고 했던 것을 아직 얻지 못했고, 이루고자 했던 것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미국에 오셔서 여러분이 얻으려고 하셨던 것을 얻으셨습니까?

무엇을 얻으려고 오셨습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오셨습니까?

 

과거에는 미국에 오는 것 자체가 성공이었습니다.

요즘은 한국이 잘살다 보니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따라 살아야지 편하고 좋은 곳을 따라 가는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미국에 오셔서 얻고자 했던 것들을 다 얻으셨습니까?

그래서 충분히 만족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얻고자 했던 것을 얻지 못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은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 수록 신앙이 성장하면 성장 할수록 속에 감추어 져 있는 죄의 모습이 들어나고, 여전히 속에서 솟아 오르는 옛모습에 자신에 대해서 실망 스럽게 느끼실 것입니다.

 

저도 저의 목회에 대해서 실망이 될때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것입니다. 예수님을 수십년을 믿고, 몇대째 예수를 믿어도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들을 볼때 마다 회의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지만 위로가 되는 것은 그것은 우리들만의 고민이 아니었고 사도 바울도 똑 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말씀을 받고 엄청난 기적을 체험한 분입니다. 그런 모세가 40년을 목회를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제자들도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때 배신하고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망 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포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실망스러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확장하는 일을 맡기 셨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 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입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이요, 둘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사명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하지 못한 바울에게 이방 선교를 맡기셨습니다. 배반하고 도망간 제자들에게 복음과 교회를 맡기 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지금 2천년을 지나,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우리들에게 까지 전해졌습니다.

온전치 못한 제자들에게 복음을 맡기신 예수님의 계획은 성공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잘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소원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모 스스로 자신을 생각할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될 것입니다.

 

인간이 부족하면서도 자녀들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자녀역시 부모와 똑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온전하게 할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씩이나 “자기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고 진솔하게 고백합니다(12절).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 존경스러운 말입니다.

그는 얼마나 성숙한 신앙인이요, 얼마나 원숙한 인생의 대 선배입니까?

그런데도 그는 아직 완전하게 성숙한 신자가 못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자기의 성숙 수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여 자신의 계속적인 진보를 힘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 자책하기 보다는 내가 얼마나 발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비교하기 보다 예수님만을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레19장,,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이라는 개념은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룩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한 상태이시지만, 인간은 거룩을 향해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입니다.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노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꿈과 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변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합니다.

발전하고 잘되는 것은 원하면서도, 자신이 변화되는 것은 싫어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발전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변화를 위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성장을 위해서 첫째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뒤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랑하고 싶은 성공입니까?

감추고 싶은 실패입니까?

여러분을 힘들게 했던 많은 상처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잊어 버리겠다고 했습니까?

앞에 있는 푯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생각해야 아무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생각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에 발목을 붙잡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춰라』는 좋은 교훈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과거의 일에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겠다고 말해줍니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은 과거가 더 이상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과거가 나를 다스리거나 지배하거나 억누르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위로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이사야 43:18)

 

성공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로부터 배웁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과거에 형편없는 자였다고 과거의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교훈을 삼을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나, 과거의 의미를 바꿀 수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실패을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실패에 얽매어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런 자격도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과거에 신경 쓰는한 자신의 발전은 멈추어 지는 것입니다.

자신도 다른 사람의 과거에 같이 묶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에 한번 잘한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며, 되내이면 안일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과거의 성공을 자랑하며 자만에 빠지는 사람은 더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합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더 적극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뒤엣 것을 잊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를 잊는 방법은 참 간단합니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중요한 것은 앞에 있는 상을 붙잡는 일입니다.

그것이 목표입니다.

그것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두번 말할필요도 없이 버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더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달려 가야 합니다.

 

신앙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좋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배움을 통해서 믿음들이 한단계씩 올라가게 됩니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부지런해야 하고, 열심과 열정이 있어야 하고, 노력해야 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견뎌야 하고, 좋은 군사 같고, 운동선수 같이 달려야 하고..정복하고, 다스리고, 완전함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에 안주해서도 안되고, 뒤로 물서서도 안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헌신과 훈련’입니다.

저도 예수님믿고 여기 까지 오기 까지 수많은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지나온 과정을 보면 신앙이 한단계씩 올라갈때 마다 계기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처음 나온 청년의 때 모리스의 책 ‘창조와 과학’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신앙과 진화론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할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렌 레드페드가 쓴 ‘하나님의 사람 다윗’ 이란 책을 읽으면서 믿음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ccc 열단계성경공부를 통해서 신앙의 기틀을 배웠고, 일대일제자훈련을 통해서 제자를 키우는 체계적인 훈련을 배웠습니다.

크로스웨이성경공부, 알파성경공부, 커피브레이크 성경공부..등을 통해서 성경을 더 깊이 있게 배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정생활 세미나’를 통해서 부부생활의 중요성을 배웠고, ‘뜨레스디아스’를 통해서 사랑의 섬김을 배웠습니다.

‘전도폭발’ ‘두날개훈련’ 을 통해서 좀더 체계적인 전도훈련과 개인 양육훈련을 배웠습니다.

 

기도생활은 새벽기도, 금요기도, 릴레이기도, 작정기도, 20일 금식기도, 40일 금식기도, 다니엘 기도, 그리고 8시간 기도훈련을 통해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이마고 크리스티’ 를 통해서 묵상기도와 Doing 과 Being 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과 하나 되어 가는 과정의 기도를 배웠습니다.

DTS 를 통해서 깊이 있는 영성의 과정을 배웠습니다.

 

이웅장로님은 DTS를 매주 멕시코시티에서 비행기로 다니면서 5개월 코스를 마쳤습니다.

하려고 하면 할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은 우리의 영적 단계를 한단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해 주는 것입니다.

 

‘바이블동서남북’ 이라는 더 강도가 높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이블동서남북은 성경 66권 1189장의 제목들을 모두 외우면서 성경전체를 하나로 파악할수 있게 해 주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외워야 합니다.

일년동안 300백 넘게 반복을 했습니다.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혼자만의 훈련과 더불어 같이 은혜를 나눌때 더 많은 것을 배울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몇 명이나 사귈 수 있을까요?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대체로 150명 정도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이것을 Dunbar’s number라고 합니다.

그는 조사를 통해 사회적 집단을 ‘무리‘ 마을’ ‘부족’ 등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는데 이들 집단의 평균 크기는 각각 무리가 38명, 마을이148명, 부족이 1155명이었다고 합니다.

 

전투부대의 기본단위도 수천 년 동안 약 150명으로 유지되었고, 로마군의 기본 보병 부대 단위가 120명이었으며 오늘날 군대의 중대가 약 180명으로 이루어진 것도 던바 수와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던바‘는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집단의 크기는 ’약 4명‘이라고 합니다.

 

한 식당에서 3달동안 동안 손님들을 조사해 본 결과 같이 식사하는 평균 숫자는 3.8명이었다고 합니다.

큰 만찬에서도 서로 대화를 나누는 무리는 대개 4명으로 이루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소그룹모임이 중요한 것입니다.

함께 나눌 때 더 성장해 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발전해야 하고, 영적으로는 계속 높은 곳을 향해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성장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17절)’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막연하게 하나님을 알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질수록 인간은 혼돈과 방황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뉴져지에서 목회하시는 양춘길목사님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커피브레이크 성경공부도 제일 활발하게 잘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동선연애교단에서 탈퇴를 하면서 교회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뉴져지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중에 하나입니다.

좋은 건물을 사서 교육관과 같이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단이 동성연애를 인정하면서 교회에서 어떻게 할것인가를 놓고 투표를 했는데 교인들의 99%가 교회건물을 포기하고 나가자고 결정을 해서 이제 새건물을 다시 빌려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훌륭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글을 보냈습니다.

 

미국교회의 과반수 이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거짓된 문화에 끌려 가고 있습니다.

 

지중해 연안에 중심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기독교와 가장 중요한 관계가 있는데 과거에 구약이 한 권 한 권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이 구약을 한 권으로 묶은 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이곳은 또 유명한 것이 있는데 세계최초의 등대였던 파로스등대가 있었던 곳입니다.

이 등대는 기원전 300년 무렵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 였습니다 높이가 그당시 150미터 였다고 합니다.

 

첨성대 높이가 고작 9.1 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데 파로스등대는 그보다 1천년 전에 높이도 150미터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등대 였습니다.

그래서 세계 7대 불가사의중에 하나로 꼽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대가 어떻게 무너졌는가? 일설에는 지진때문이라고도 하지만, 한편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칼리포황제가 고의로 무너뜨렸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등대꼭대기에 반사등이 있어서 40 키로 밖에서도 보여서 적에게는 위협적인 존재 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등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거짓정도를 계속 흘렸습니다.

파로스등대밑에는 과거 애급왕들의 보화가 엄청나게 뭍혀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칼리포 황제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등대를 무너뜨리고 밑을 파 보았지만 보화는 없었습니다.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세웠는지, 어떤 방법으로 불을 지펴 비추었는지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해변가의 좋은 동네의 이름에는 팔로스 라는 이름이 다 붙여져 있는 것이 팔로스등대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LA 바닷가 동네도 팔로스 버디스 라고 붙여져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거짓된 정보를 주어서 스스로 망하게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게 사탄은 이브에게 접근을 해서 하나님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야 세상의 거짓정보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매일 같이 우리의 눈과 귀로 세상의 거짓된 정보들이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그 거짓된 정보들을 씻어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매일 매일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달려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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