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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곳을 향하여(6)

더 높은곳을 향하여(6) 자유 갈5:13-18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서점에 들어가 갈때 맨 앞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왕래 하는 곳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을 알수가 있습니다. 제일 많이 읽히는 책이 사람들의 제일 큰 관심사 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동안 제일 많이 읽힌 책은 헤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90년대에 서점에 가면 제일 앞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은 ‘성공’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30년 전만해도 세상 사람들은 성공에 관한 욕구가 제일 컸고, 기독교 서점에 가면 ‘교회부흥’에 관한 책과 설교에 관한 책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부흥에 대한 세미나가 매년 몇번씩 있었습니다.

요즘은 교회부흥에 관한 책들이나, 설교에 관한 새로운 책들은 거의 없고, 세미나는 아예 없어 졌습니다.

그리고 일반 서적에서도 성공에 관한 책들도 같이 줄어 들었습니다.

 

말씀 드린것 처럼 제일 많이 읽힌 책들은 ‘마음을 비우는것, 바르게 사는것’ 그런 내용들입니다.

성공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많지만 좀더 여유롭고 퀄리티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연령별로 행복감이 제일 부족한 나이가 40대 라고 합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지나면 그 이후부터 조금 씩 좋아지기 시작을 하고 60대를 지나면서 제일 좋아 진다고 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지나고 바뀌었다고 해도 인간은

‘성공과 행복’ 두가지 목표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과 행복’ 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 버린 두마리 토기와 같습니다.

두가지 다를 잡는 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포기할수 없습니다.

두마리 중에 하나라도 잡아야 하고, 그런 희망마저 없어져 버리면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답을 발견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일입니다.

 

지난번에 평창올림픽 스노우보드에서 금메달을 딴 클로이김 이나, 윤성빈선수가 기뻐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클로이김 선수는 LA뒷산에 있는 마운틴하이에서 처음 스키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고 딸을 돌보았습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지난 4년 동안 얼마나 노력을 했겠습니까? 클로이김 선수는 최연소 나이로 금메달을 땄고, 윤성빈선수는 썰매 종목에서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 금메달을 땄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아마 그들은 그 금메달을 가보로 모셔두고 자손 대대로 자랑할 것입니다.

너의 할아버지가, 너의 할머니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였단다.. 그 금메달과 사진을 자손 대대로 보관 할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그들과 사돈에 팔촌이라도 되면 그들을 안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실에 대해서는 얼마나 자랑 할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금메달을 따는것 보다 훨씬 더 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것이 현실 입니다.

 

탕자가 돌아 왔을때 아버지는 엄청 기뻐하면서 새옷을 입히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했습니다.

우리는 탕자의 이야기를 들을때 아버지가 기뻐하며 자치는 여는 것 까지만 생각하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탕자의 연극도 항상 돌아와서 잔치를 벌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목사님들도 탕자의 설교를 할때 탕자가 돌아왔을때 아버지가 받아주고 잔치하는 이야기에서 끝이 납니다.

 

탕자가 돌아와서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탕자가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요?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추측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인생이 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탕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탕자도 우리들 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탕자가 매일 기쁘고 행복한 잔치인생으로 살았을까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기쁨의 잔치는 그 한번이었을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온 날을 기념해서 매년 그날이 되면 다시 잔치를 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저희 집사람을 중매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난 곳이 1월 10일 선셋에 있는 데니스식당에서 저녁 7시에 만났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매년 그날, 그 시간에 데니스식당에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중요한 날을 정하고 기념하면서 매년 지키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중요한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은 태어난 생일이 있고, 결혼한 날이 있고, 처음 만난 날이 있고, 좋은 일들이 생긴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잊어 버리지 말고 celebrate 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도 좀더 좋아지고, 좀더 퀄리티있는 삶이 될수가 있습니다.

 

뜨레스디아스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3박4일 동안 천국같은 생활을 경험합니다. 시간 시간 선물이 있고, 휴식하고 돌아오면 테이블위에 새로운 선물이 있고, 최고의 데크레이션과 음식으로 봉사자들이 섬겨줍니다.

말만하면 금새 필요한 것을 가져다 줍니다.

3박4일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은 산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산밑에 내려와서도 그렇게 살자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려오면 그렇게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탕자도 자신이 돌아온 날을 기념해서 매년 그 날에 잔치를 했을까요?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잔치가 끝난 그 다음날 부터는 아버지와 형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 가는 긴 여정이 시작이 됩니다.

기쁨의 잔치는 금새 잊어 버리게 될 것이고, 쥐엄열매 먹으며 고생했던 일도 잊어 버리게 될것이고, 형의 눈치를 보고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게 느껴 지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돌아온 것을 후회하기도 할 것이고, 다시 도망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될 것입니다.

잔치의 기쁨을 평생 간직하며 감사하면서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을 확률은 아주 적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아마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완전히 변화되어서 평생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혹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격은 잠시이고 여전히 갈등속에서 살아가면서 조금씩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고 구원 받았을때 그 감격을 지금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찬송가 가사처럼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날 . 늘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면서, 늘 기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 보다 더 좋은 사람 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보다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내, 더 좋은 부모,

더 좋은 자녀, 더 좋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더 화목해야 합니다. 더 사랑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더 많이 비워야 하고 더 내려 놓을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안믿는 여러분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 보다 더 행복하시지요?

아까 말씀드린것 처럼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마음을 비우는’ 것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욕망에 붙잡혀 사는 세상 사람들도 한편으로는 그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달려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데 예수 믿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잘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가 원숭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원숭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을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은 믿고 싶어도 믿을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마 어마한 일입니다.

이 엄청난 것을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의 결과는 평안일 것입니다. 여유일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하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믿을 데가 없으면 불안할 것입니다.

안절 부절 하게 될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은 불안합니다. 보이지 않는 불안감에 잡혀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의 결과는 심판이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바울은 율법을 종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 율법의 종으로 부터 자유해 지는 것으로 로마서 7장에 말씀하십니다.

율법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 처럼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인을 남편에게 매여 살지만 남편이 죽으면 더 이상 남편에게 매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사랑’을 위해서 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으로 부터 해방되고 죄의 종에서 자유하게 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은혜는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사실 이 말씀 한마디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 전체를 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종노릇 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종노릇 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은 마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섬기려면 내 마음에 자유와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불편한데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남이 해 주지 못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은 항상 불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마음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이 항상 생기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파도가 그치는 일이 없듯이 우리 마음에 불편한 파도들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마12장, 밀밭, 안식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예수님께서 귀신의 예를 들면서 (마12장)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사탄과 귀신을 좇아 가던 사람들입니다.

매년 점을 보고, 큰 공장이나 배를 진수하기 전에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 절을 하고, 아이들이 대학교 시험을 칠때 학교정문에 엿을 갖다 붙이고, 부적을 베게나 옷에 붙이는것 다 귀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점 보러 다니고,

운동선수들이 수염을 깍지 않고, 새신발을 신지 않고, 미신적인 것을 믿는것.. 모두 귀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무덤자리, 풍수지리.. 실제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에 매여서 삽니다. 그것이 곧 사탄과 귀신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런 것에 매여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지배했던 사탄의 권세는 우리를 그냥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더 악한 것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빈집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지 않으면 세상의 온갖 나쁜 생각들, 마귀가 채우게 될 것입니다.

 

세계 정신과의사의 반이 미국에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자유를 잃어 버리고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도 정신질환자들이 엄청 많아 졌습니다.

공항장애, 폐소공포증, 광장공포증, 우울증.. 이런 정신질환자가 많아지고, 자살이 가장 많은 나라로 또한 유명해 졌습니다.

공항장애는 ‘무언가 사건이 터질것 같아 불안해 하는 질병’입니다. 폐소공포증은 좁은 공간에서 불안해 하는 거이고, 광장공포증은 반대로 넓은 공간을 불안해 하는 질병입니다.

세상은 살기 좋아 졌지만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은 더 힘들어 지고, 과거 어렵게 살때 보다 행복지수는 더 떨어 졌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우리들의 삶은 정말 풍족해 졌습니다.

옛날에는 바나나, 파인애플 하나 먹기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고기국도 아무때나 먹지 못했습니다. 옛날 보다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는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더 힘들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은 남아 있습니다.

 

첫째. 죄의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다고 믿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와 싸우게 됩니다.

예수님 믿는 다고 죄를 안짓습니까?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는 짓지 않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죄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 죄가 자신을 짓누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해서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그 죄 때문에 마음의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 마음의 상처가 힘들게 만듭니다.

사람들 마다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건드리면 폭발하게 됩니다. 이 마음의 상처가 그의 삶을 짓누릅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좋지 않게 작용을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오해부터 먼저 합니다. 부정적인 눈으로 먼저 보게 됩니다. 피해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면 금새 나에게 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으로 먼저 보게 됩니다.

 

셋째. 성공에 대한 집착이 자유를 빼앗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병이 성공병이라고 합니다.

성공을 향한 갈망이 사람을 발전하게도 하지만 잘못된 성공병은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성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자신의 마음의 자유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앞날이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이 언제나 있습니다.

사업이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 건강이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 가정이 잘못될 것 같은 두려움, 사고가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넷째. 미움,시기,경쟁이 마음을 힘들게 만듭니다.

예수믿는다고 경쟁심과 시기심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죽을때 까지 없어지지 않습니다.

미움,시기,경쟁심은 인간의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제일 즐겨 이용하는 마음입니다.

 

이것 때문에 가인은 자기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울은 충성스러운 부하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로와 지면 분명 행복할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런 힘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길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이 힘을 가져야 자유함을 가질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채워 져야만 마음의 갈등에서 이길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서신을 보낼때 그는 감옥에 있을때가 많았습니다.

그의 육신은 감옥에 있거나 쇠사슬로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쇠사슬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했습니다.

공항장애도 없었고, 폐소공포증도 없었고, 우울증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영적인 세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는 주옥같은 깊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들이 육신적으로 매여 있을때, 상황적으로 가장 힘들때 쓰여 졌습니다.

육신은 얽매였으나 영혼은 오히려 더 자유하고 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이 힘을 얻을수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누르고 있는 무거운 죄짐으로부터 해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죄도 용서해 줄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같은 것을 누가 사랑할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제일 서운하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은 물질만능주의가 되면서 점점 사람의 가치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겨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일을 좀더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좀더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에서 이길수가 있습니다.

사랑만이 미움과 시기를 이길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한 사람은 인간의 죄성을 이길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셋째, 삶의 만족을 느낄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축복을 받고서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가장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내웠노라’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다.

평생을 살면서도 가질수 없는 자유함을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마지막으로 최고의 자유가 있습니다.

가장 가치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입니다.

 

자유로워질 자유도 있지만,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도 있습니다.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위대한 자유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유입니다.

 

자유롭게 살수 있는 능력과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대한 자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시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시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종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자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자유할수 있으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자유이고, 진짜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부를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이라고 하는 말을 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종이 되어 주는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의 종이 되어 주는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의종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의 종이 됩니다.

평생을 그자식에게 얽매여 살지 않습니까?

평생 그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염려하고, 잘되기를 빕니다.

자식 공부시키기 위해서 일을하고, 좋은 학교 넣기위해 학군을 옮기기도 합니다.

자식의 종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자유를 포기하고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은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맡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다 누리면서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직분을 맡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훌륭한 목사님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설교를 잘하시는 목사님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시설을 갖춘 교회도 얼마나 많습니까?

가까운 곳에서도 좋은 교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고 현재 우리 교회내에도 마음이 안드는 부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더 좋은 곳을 찿아 갈수 있는 자유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봉사 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충성 입니다.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그 단체는 화평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가정에 화평이 있습니다.

 

성도는 화평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종으로서 살아갈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세상속에서도 자유를 누릴수가 있습니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도를 닦지 않아도 그들이 가질수 없는 평화를 가질수 있습니다

 

자유할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사랑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것,

편한것을 택할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사랑을 위해서 불편함을 선택하는것 그것이 섬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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