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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만들기(5)

아름다운 인생 만들기(5) 온유와겸손 빌2:3-11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 어거스틴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가서 질문했다고 합니다.

“신앙 생활에서 첫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둘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럼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입니다.” 하였답니다.

어거스틴은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든 것은 겸손이다.”이라고 했고 “모든 미덕의 바구니가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지식도, 능력도, 재능도, 재물도, 아름다움도, 권력도, 명예도 겸손의 바구니에 담겨질 때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겸손이라는 바구니에 담기면 아름답지만 교만이라는 바구니에 담기면 모두 썩어 버리게 됩니다.

 

“겸손” 의 뜻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태도”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 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관계속에서 만들어 지는 것인데 교만한 마음에서는 좋은 인간관계가 만들어 질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인생, 존경받는 인생이 되는데 꼭 있어야 하는 것이 겸손과 온유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반드시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시고 이땅에 사는 동안에는 성령님이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데 그런 사랑을 받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보다 큰 죄는 없을 것입니다.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앞에 큰 죄입니다

 

둘째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 할수 있습니다. 셋째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어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수가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신의 인생도 힘들게 만들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도 힘들게 만듭니다.

 

겸손은 창조주 하나님앞에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앞에 머리를 들수 있는 사람이 없고 큰 소리를 칠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면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므로 겸손하지 못하면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앞에 기본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기본자세가 겸손입니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은 겸손은 언제든지 교만으로 변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오래하신 분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항상 십자가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교만해 질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벼는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늘어가고, 명예와 권세와 재물이 늘어가면 슬슬 교만해 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처럼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인간은 순식간에 교만으로 바뀌게 됩니다.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지난주부터 바이블동서남북에서 에스겔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애급을 심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29: 15) “나라 중에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되어 다시는 열국 위에 스스로 높이지 못하리니 내가 그들을 감하여 다시는 열국을 다스리지 못하게 할 것임이니라”

 

에스겔 선지자는 석가모니,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입니다. 과거에 애급이 4대문명의 하나로 가장 강력한 국가 였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서 다시는 강한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고 그 이후에 애급은 강한 나라가 되지 못했습니다. 2500년전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예언 하신 그대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겸손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약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엡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도 교만한 마음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것도 교만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죽하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도 못하고 늘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교만하면 인간관계도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교만한 사람을 싫어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무도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들 보고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얼굴에 검정이 묻은 것은 모르고 남의 얼굴에 검정이 묻은 것을 보고 지적하는 것처럼 그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내가 높아 지고 싶다고 사람들이 나를 높여 주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는체를 많이 해도 사람들이 아는 것 많다고 존경해 주지 않습니다. 잘난체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잘났어요..’ 그러지요..

 

잘난체 하면 아무도 잘나게 보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 잘난체 하고 싶어하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성경은 ‘자랑하지 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참지를 못합니다.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다 추락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열등감과 상처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 합니다.

높아져 있는 사람은 높아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고,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남에게 과장해서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겸손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인간이고 죄악으로 말미암아 비뚤어진 자아의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는 교만이라는 죄성이 항상 용암처럼 끓고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이 겸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앞에 겸손해지기 전에 우선적으로 하나님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구세주,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겸손은 시작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인품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희생적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그것은 교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 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교만중에 첫번째 교만, 가장 큰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삶속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첫 번째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시간도 하나님의 것이고, 건강도 하나님의 것이고, 재물도 하나님의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온전한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약1:7-8)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두 마음이 무엇입니까?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에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부부도 결혼하면 배우자만 사랑해야지 1%라도 다른 마음이 있으면 행복할수 없습니다.

직장생활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집중을 해야지 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회사생활이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도 불행하고 주위 사람도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을 했으면 하나님을 완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을 해야 합니다.

형편을 따라서 상황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가지면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증명하고 있고,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고, 우리도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수아 6장에서 여리고성을 함락하고, 7장 아이성에서 실패를 합니다.

여리고 성에서 아간이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노략물의 일부를 빼돌려 감추었다가 아이성에서 실패를 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5장 사울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고 하는 것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요,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해서 말하기를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고백을 통해서 세례요한이 어떤 신앙인이었는가를 한번에 알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자기는 비교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이시고 자신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따른다고 해서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간다고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자신의 모습을 알았던 겸손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았던 겸손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워드리기를 원했던 겸손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그는 그의 삶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나는 죽고 예수님은 살고, 나는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든다는 자체가 대접받기를 원했고, 높아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광 주님께 … 돌리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섭섭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겸손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고, 시험이 든다는 것도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도 바울을 인도했던 사람입니다.

교회로 치면 먼저 자리잡고 인정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니까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진정으로 겸손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택함을 받았다..

나의 할 일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무엇을 위해서 부르셨는지 정확하게 알고 온전한 순종을 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섬겨야 할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섬겨야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첫 번째 사람은 가족들입니다.

아내와 남편입니다.

부부는 촌수도 없습니다.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깁니까?

아마 말로만 그러지 속으로 그렇게 여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신 것 처럼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신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은 쉽게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는 내가 낫고, 어떤 면에는 다른 사람이 나보다 낫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 보다 나은점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못한점만 지적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항상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상대방의 나쁜점들만 이야기 합니다.

진보도 장단점이 있고, 보수도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단점은 용납하고 괜찮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잘못된 점만 지적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이 더 나은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더 낮아 지는 것이 겸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주신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난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나는 자랑할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겸손하게 낮아져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비교와 경쟁에서 시작이 됩니다.

죄의 본성은 항상 높아 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교만입니다. 비뚤어진 자존심입니다.

높아지고 싶다는 것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신에게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은 높아지려고 욕심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 높아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남을 낫게 여긴다고 해서 자신이 낮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낮아 지셔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빛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것처럼 겸손낮아 질수록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앞에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을 존중할 줄 모르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누구든지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인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상대를 인정할 수 있는 겸손한 자리에 아름다운 등불을 피워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명해서 온 인류와 의학계에 큰 공헌을 한 분입니다. 이 분에게 어떤 제자가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발명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명이 무엇입니까? 심프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 겸손이 심프슨을 위대하게 했습니다.

 

죄인이라는 터 위에, 그 위에 서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죄인이라는 터가 다 지켜줍니다. 죄인이라는 터 위에 가정을 세우면 절대로 그 가정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죄인이라는 터 위에 봉사하면 그 봉사에는 열매가 맺어집니다. 시험 들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교만하면 스트레스도 열 배나 더 받는다고 합니다. 교만하면 병도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낮아 지셨습니다.

남을 살리려면 내가 낮아 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창조의 법칙입니다.

 

부모가 낮아져야 자식이 살고, 부부도 서로 낮아 져야 상대방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높아 지면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교만하면 절대 안되는 것입니다.

교만하면 다른 사람도 죽이게 되지만 결국은 자신도 죽게 됩니다.

 

대통령이 절대 권력을 가지면 국민들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도 죽게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대방을 죽이고 자기가 올라서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남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낮아지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입니다. 사람이 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나 때문에 그 사람이 높아진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곁으로 다 가까이 올 것입니다.

나만 만나면 그 사람이 높아지니까요.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를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자네를 만나면 살 맛이 나네. 자네만 만나면 내가 높아지거든”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구유의 천한 자리에 나셨습니까?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 계셨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높여 줄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깁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고 허리를 굽혔으며 자기를 발 밑으로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발 보다 더 낮아져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로 삼아주시니 이것이 바로 자기를 낮추시고 남을 높이시는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셋째, 자기를 낮추므로 자기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유명한 디엘 무디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으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하며,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오직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고자 자기를 비웠고,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자신을 낮추므로 나타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듯이 나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을 때 예수님이 영광받으시고 우리자신도 은혜를 받을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므로 하나님께는 영광을,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는 평화를, 나 자신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은혜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들을 겸손의 바구니에 담으려서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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