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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만들기(7)

아름다운 인생 만들기(7) 살전1:2-5 믿음

(살전1:2-5)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누리며 살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가정을 만들어 주시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 주시고 권리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누릴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생각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갈수 있는 권리가 있고 행복해 질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와 권리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죄로 인해서 자유와 권리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행복의 법칙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법칙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짐승들이 다 그렇습니다. 새끼를 낳으면 어미는 새끼를 먼저 생각합니다.

자신은 굶어도 새끼를 먼저 먹이는 것이 어미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번성해 나가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죄가 인간의 마음에 들어오면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자동차가 신호등을 지키지 않고 역방향으로 들어가면 오는 차들과 부닥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법칙, 행복의 법칙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살면 불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인생의 법칙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먼저 배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배려하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함께 잘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법칙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법칙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인간에게 화평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죄의 시작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 그것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성입니다.

 

한국민족은 일본에게 당한 그 고통을 결코 잊을수 없습니다.

그런 큰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고, 미워도 다시한번.. 하는 마음으로 지금 까지 왔는데,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본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많은 일본 사람들은 과거 군국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2천년전에 예언하셨습니다.

마24장에 종말이 가까워 오면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더 심하게 대립을 하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딤후3장에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쉽게 분노하고 과격해 지고 분쟁하게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든 분쟁의 시작은 자신이 우선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죄로 인해서 비뚤어진 마음입니다.

 

자신이 행복해 지려면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해 질수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 자신도 행복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우리 신앙고백은 첫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행복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려면 우리가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표현이고 사랑의 표현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도 행복한 것입니다.

 

목회자가 언제 제일 행복해 할 것 같습니까?

성도님들이 열심히 봉사하는 것 보다 제일 행복한 순간은 성도님들이 예배생활을 열심히 할때입니다.

목회자가 제일 기쁜 것은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잘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되면 부모가 영광을 받는 것처럼 성도님들이 잘되야 하나님도 영광을 받고 목회자도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가 온전하지 못하면 절대 복을 받을수 없습니다.

목회자들도 예배를 온전히 준비하지 못하면 목회의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많은 성도님들은 예배의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배가 행복하지 못하면 신앙생활 모든 것이 힘들어 지게 됩니다.

 

행복한 인생,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길은 예배로부터 시작이 되는데 많은 분들이 쉬운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하고 나서는 인생이 어렵다고 불평을 합니다.

 

인간이 왜 그렇게 미련합니까? 비뚤어진 죄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불순종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항상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세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이 제일 중요하니까 믿음과 소망은 덜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 있을 때 필요하지만 천국에 가면 오직 사랑만이 남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날 동안에는 세가지가 동일하게 다 중요하고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Work from the faith..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기적이 일어나고, 믿음으로 봉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성도의 마음속에 보석같이 빛나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합니다. ‘잘 믿으라, 바로 믿으라 믿음이 제일이다.’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잘 믿는 길이 잘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잘 사는 길이 무엇이냐?

우리의 삶을 실패하지 않고 복되게 사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잘 믿어야 잘되고, 잘 믿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항상 먼저 물었습니다.

네가 믿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그 믿음만이 우리를 모든 삶에 승리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축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이 온다면 그 고난의 이유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축복하시기도 하고, 사람을 통해서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관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하고 믿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반대로 믿어 주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회사도 서로 신뢰하고 믿는 회사가 잘됩니다.

 

과거에 테리야키 페스트푸드를 운영하는 어느 한인은 라티노 메니저 두사람에게 자동차 한대씩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한사람은 10년동안 근무했고, 또 한사람은 식당 쓰레기통을 뒤지던 홈리스 였는데 이 식당에서 일하면서 14년 만에 메니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그동안 떠나지 않고 수고한 것에 감사하면서 자동차 한대씩을 선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좋아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예수님께서 즐거워 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사랑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로마 장교 백부장도 예수님을 즐겁게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사람들을 보내고,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시려고 하자,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뭘 우리집에 오시려고 하십니까? 그냥 이 자리에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인의 병이 나을줄로 나는 믿습니다.

나에게도 하인이 있어서 주인이 말하면 그대로 순종하는데 하물며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말씀하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피조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백을 듣고 깜짝 놀라셨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저는 목회를 해 오면서 저 자신을 돌아 볼때 제일 아쉽고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면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믿음이 부족했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때로는 초신자보다 못한 믿음으로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믿음은 한번 좋다고 영원히 좋은 것도 아닙니다.

믿음도 날씨 처럼 변합니다. 화창할때도 있고, 구름이 잔뜩 낄때도 있고, 바람앞에 갈대처럼 흔들릴때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흔들리는 믿음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이삭을 바치라는 말에 흔들림이 없이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의 단계에 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입니다.

믿음은 그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가득한 사람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주님은 한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어떤 좋은 환경에서 사느냐 보다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믿는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의 부모보다 훌륭한 부모가 없고, 믿음의 자녀보다 훌륭한 자녀가 없습니다. 믿음의 지도자보다 더 큰 지도자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보다 더 귀한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책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도와 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고,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이 믿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믿음이겠습니까?

 

첫째, 좋은 믿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늘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험도 있고 환란도 있고 위기도 닥쳐옵니다.

그러나 좋은 믿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던 나쁘던 언제나 감사하고, 기뻐할수 있는 믿음이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기는 믿음이 좋은 믿음인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길수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것도 힘이 들고, 사회에 나와서 일하는 것도 힘이 드는 일입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은 더 힘듭니다.

교회생활도 역시 힘이 듭니다.

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납니다. 열심히 했지만 안될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다보면 낙심 될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은 좋아 진것 같은데 낙심하게 하는 일은 더 많아 졌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염려와 긴장은 전 세계적이고, 선진국 미개국할 것 없이 다 같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 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고, 근심 걱정 없이 살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더 불안해하고, 잠못이루는 밤이 더 많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낙심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환경은 나빠지고 있습니다. 지하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는 점점 많아 지고 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더 좋아질수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우리를 낙심케 하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절대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줍니다.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바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경에서는 믿음을 ‘금’에다 비유했습니다.

성전 안에 쓰여지는 모든 기구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금을 입히게 만드셨습니다.

왜 전체를 금으로 장식하느냐?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변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좋은 믿음은 장애물을 넘어 갑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장애물이 늘 있습니다.

장애물을 만났을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중풍병자를 네 친구가 들것에 들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에워싸 있어서 도저히 예수님이 계신 집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네 친구는 지붕위에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사람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장애물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형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형들이 애급의 종으로 팔아 넘겨 버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요셉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 가서 열심히 일합니다. 인정받아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또 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참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끝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으면 장애물이 더 많이 생깁니다.

예수 믿지 않았으면 당하지 않을 많은 장애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면 넘어가지 못할 장애물은 없는 것입니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수많은 고비 고비를 넘어야 하듯이 믿음의 금메달도 마찬 가지입니다.

수많은 난관을 넘고 넘어야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지 그냥 올라가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은혜도 고비 고비를 넘어야 됩니다.

기도도 고비 고비를 넘어야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시험드는 일도 많습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도 가룟 유다가 있었잖아요. 모든 고비를 우리는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적은 없습니다.

장애물이 생겼을때 그것을 참고 넘어가 볼수 있기 바랍니다.

그것을 이기고 나면 큰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 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Work입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일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일은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일은 땀을 흘려야 합니다.

 

요즘 교회가 쇠퇴하고 있어서 걱정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교회도 한국의 교회도 빠르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쇠퇴하는 것이 당장 나에게는 불이익이 없으니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은 심각하지 않은 것 같지만 교회가 쇠퇴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녀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믿지 않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죄악에 빠져 들게 될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교회가 쇠퇴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신앙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열정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성도들이 불교, 모슬렘, 이단들… 그리고 유대교.. 와 비교할 때 그들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8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습니다.

9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신앙의 열심히 식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매일 새벽기도 하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저녁예배 그리고 매주 구역모임을 했습니다.

목사님들 장로님들이 새벽기도 안나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교회들도 80년대 까지만 해도 저녁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열정이 급속히 식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바꾸다가 그 다음에는 없어 졌습니다.

금요철야기도회가 점점 시간이 앞당겨져서 저녁예배수준으로 식어 졌습니다. 이제는 그나마 금요기도회가 없는 교회들이 많아 졌습니다.

 

‘열정’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회사도 열정이 식으면 안되고, 공부도 열정이 식으면 안되고, 스포츠도 열정이 식어서 연습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음악도 열정이 식어서 연습하는 것을 게을리 하기 시작하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도 열정이 식으면 안되고.. 모든 것의 힘은 ‘열정’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의 문제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열정이 식고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드시고, 말씀으로 죽은자를 살리시고, 말씀으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고, 말씀만으로 귀신을 좇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을 살려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도 새벽에 기도하고, 밤에 기도하고 하루 종일 복음을 전하고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몸살 나도록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도 십자가를 지실 때 온몸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시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십자가의 구원입니다.

 

과거에 미국의 교회의 열정이 현재의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만들었고, 과거의 한국 교회의 열정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그 열심으로 만들어낸 일입니다.

 

성도들의 뜨거운 열심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교회역사 2천년에 가장 큰 교회성장을 이룬 힘은 기도의 힘이 아니었습니까?

기도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은 그 열정이 60년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한국은 90년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해서 현재는 무감각해 져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수학공식과 같습니다. 우연이 없습니다. 1+1=2 인 것처럼 열심히 하면 살아나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심을 내어야 하는 첫 번째 책임은 목회자들에게 있고 두 번째는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2부에 설교해 주시는 양춘길목사님은 동성연애 때문에 천만불이 넘는 교회건물을 포기 했습니다. 저도 몇 번 가 보았는데 미국교회를 산 것이 아니고 자신들이 힘을 모아 건축한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속한 미국에서 제일큰 장로교단인 PCUSA 가 동성연애를 받아 들이자 그 교단에서 나오기 위해서 건물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건물을 빌려서 불편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회에 속한 다른 한국 목사들은 교단연금때문에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양춘길목사님 교회를 핍박하고 양목사님이 교회를 포기하자 그 건물을 낼름 팔아 버렸습니다.

그들은 건물을 판 것이 아니라 신앙의 양심을 팔아 버린 거십니다.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 보아야 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다른데 있습니다.

열심을 내면 살아나고, 열정이 식으면 죽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마지막 까지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무너지면 그동안 잘해 온 것이 쓸모가 없게 됩니다.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갈길을 마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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