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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12) 건강한 자화상

복음이야기(12) 건강한 자화상 롬8: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현대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중요한 것은 건강수명입니다.

오래 살아도 건강하지 못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어느때 보다 건강의 문제를 더 신경쓰고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일도 못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음식도 맛이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다 하고 싶어 하는 세계일주를 시켜 주어도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행복과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건강이 꼭 필요한 한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건강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육체는 마음이 지시하는 것을 따라하는 도구입니다.

 

마음의 건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한 자화상입니다.

자화상은 자신이 그리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볼수가 없습니다. 자화상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세상을 보면서 판단 하는 모든 것들이 자화상의 거울을 통해서 보게 되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자화상이 비뚤어져 있으면 세상 모든 것들을 비뚤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의 기본은 건강에 있고, 행복과 성공의 기본은 건강한 자화상에 있습니다.

“건강한 자화상”“건강한 자화상”

똑 같은 문제를 앞에 두고도 잘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 같은 환경속에 살면서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불만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습니까? 자화상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갈등을 하는것, 일을 하는데도 끝까지 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습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 못하는 것,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잘 받고 시험드는 것, 적은 일에도 분노가 생기는것, 문제가 생기면 잘 풀지를 못하는 것,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잘 못하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이고,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늘 힘들게 하는 일…

이런 일들이 왜 생깁니까?

건강하지 못한 자화상 때문에 생기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에는

세균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그런 병균들을 잘 이겨낼수가 있지만 몸이 약해지면 쉽게 병이 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순 투성이입니다.

우리는 불합리하고 온전치 못한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강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이런 세상의 현실을 잘 소화하면서 살수가 있지만, 자화상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잘 소화를 하지 못하고 부닥치고 갈등을 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달린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콤플렉스도 상처받은 자화상의 일종입니다.

콤플렉스는 독일어 인데, 사람의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욕망·공포·갈등·열등감 입니다

딸 중에서 엄마를 싫어하고 아버지를 좋아하는 것을 정신 분석학에서 엘렉트라-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신데렐라-콤플렉스 여성이 일시에 자신의 인생을 화려하게 변모시켜 줄 남자를 기다리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갈등, 열등감인 콤플렉스는 상처받은 자화상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상처받은 자화상을 건강한 자화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콤플렉스들을 치료하고,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눅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포로된 자를 자유케, 눈먼자를 다시보게, 눌린자를 자유케..

이 말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육체적인 치유와 회복도 말씀하지만 심령으로는 죄로 인해서 상처 받은 자화상을 고쳐주는 일들인 것입니다.

 

건강한 자화상은 세상을 건강하게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건강하게 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건강하게 보는 것입니다. 망할놈의 세상이 아닙니다. 저주받을 세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비록 죄로 인해서 어두워지고 타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사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세상과 사람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아릅답게 보이지 않습니까? 세상과 사람이 새로워 보이지 않습니까?

 

건강하지 못한 자화상은 왜 생기게 됩니까?

근본적으로는 죄가운데 태어나면서부터 상처받은 자화상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들 때문에 더 상처가 커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학대, 형제들 보다 뒤떨어질 때, 못한다고 늘 구박받고 자랄 때, 가정이 깨어질때, 그리고 인생에 실패, 좌절… 등등 이런 환경속에서 자신의 자화상은 어그러지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장 완전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완전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유혹에 의해서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면서 인간의 자화상은 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초대왕이라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어울리는 왕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40년 동안 왕좌에 있으면서 의미 있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왕이면 나라를 확장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왕의 일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평생을 다윗을 죽이려고 좇아 다니다가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사울왕의 실패는 다윗에 대한 질투와 시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질투와 시기심 때문에 인생을 망쳐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외모는 출중했지만 건강한 자화상을 가지지를 못했습니다.

(삼상 9: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사울은 외모로 보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찾아 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 하자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상 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이것은 겸손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그당시 베냐민은 12지파 가운데서 가장 힘이 없고 약한 지파였습니다.

사사기19장에 ‘레위인 첩사건’때 다른 지파와 전쟁을 하면서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배경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보다 인기가 있자 사울은 질투심에 눈이 가리워 지게 됩니다. 더욱이 다윗은 유다지파입니다. 유다지파는 12지파 가운데서도 엘리트 지파입니다. 장차 메시야가 유다지파를 통해서 나올것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사울의 베냐민 지파는 가장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이런 배경이 사울로 하여금 건강하지 못한 자화상을 가지게 만든 것입니다.

자화상이 건강하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포용하지를 못합니다.

질투와 시기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평생을 다윗을 좇아 다니다가 초대왕으로 좋은일 한번도 하지 못하고 그는 아들들과 같이 전쟁에 나갔다가 자살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싸우다 마지막에 자살을 선택합니다. 자살한 이유가 뭐냐면 이방인들에게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상 10:4)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니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자신의 체면을 생각합니다. 자존심에 상처가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것이 왜 이렇습니까?

건강한 자화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자화상이 약하고, 자긍심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콤플렉스입니다.

 

죄가운데 태어난 인간은 모두가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일그러지고, 어떤 사람은 많이 일그러지고 그 차이뿐입니다.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이 되기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한 자화상을 회복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세상의 무엇으로 고칠수 없는 상처난 자화상을 건강한 자화상으로 회복시켜주는 능력이 복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가? 과학적으로 찾아 가고자 했습니다. 철학적으로 찾아 가고자 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찾아 가고자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물질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인간을 원숭이로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숭이의 자손입니까? 우리의 할아버지가 원숭이 입니까?

사람과 짐승을 동등하게 생각하니 짐승같이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원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화상이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다울수가 있겠습니까?

불교에서는 인간이 죽어서 소도 되었다가, 개도 되었다가,

돼지도 되었다가 모든 짐승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를 구박하면 죽어서 소로 태어 나고, 개를 구박하면 죽어서 개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짐승이 되기도하고, 짐승이 인간이 되기하는 것이 불교의 사상입니다.

 

인간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인간을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성경은 인간을 짐승과 같은 피조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모든 짐승은 육체지만, 인간만은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창 1:26-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롬 8:14-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구원은 자신을 찾는 것입니다.

구원을 나를 지으시고, 나를 만드신 나의 영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를 찾는 순간에 잃어 버렸던 건강한 자화상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상처난 자화상이 하나님을 만날 때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건강한 자화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화상을 가질때 험한 세상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환경을 초월해서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브로드웨이의 최장기 뮤지칼의 중에 ‘오페라의 유령’이란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뮤지컬은 크리스틴이라는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크리스틴의 어렸을 때부터의 사랑, 자작 라울과 가면 마스크를 쓴 유령사이의 삼각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평론가는 이 작품이 이토록 롱런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이 유령에게서 바로 ‘내안에 유령’ 곧 자기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을 유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것이 유령처럼 따라다니며 평생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의 모습이 어그러져 있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뮤지칼의 절정은 유령의 마스크가 벗겨지고 그의 흉악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크리스틴은 이런 흉악한 유령의 얼굴에 키스를 해주게 되고 그 순간 유령은 크리스틴을 놓아줄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속에 있는 어그러진 자화상을 인정하고 용납할 때 그 자화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할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화상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 자화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할수록 더 매이기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중에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은 저렇게 안되야지 하면서 자신도 똑같이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어그러진 모습을 던져 벗어 버리고 싶지만 그것이 잘안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세상 학문은 인간을 원숭이 취급합니다. 그리고 무지한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너 다리밑에서 주어 왔다고 장난 합니다.

학교에 다닐때 공부잘하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좋은 옷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잘생기고 멋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누구는 부자 부모 밑에 태어나서 잘사는 데 나는 지질이 못사는 집안에 태어나서 이게 뭐냐, …

이런 것들이 콤플렉스가 되고, 이그러진 자화상을 만들게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왜 생겼습니까?

이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어그러지고, 못나고, 마귀를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4)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인간은 짐승이 아닙니다. 원숭이의 후손이 세상에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인간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로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로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 하시리라…

 

부족한것 때문에, 약한것 때문에, 없는것 때문에, 실패한것 때문에, 콤플렉스 가지고 기죽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다스릴 권세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손을 들고 예수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가 벌벌 떠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축복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손을 들때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세계 어느 민족이 가지고 있지 못한 탁월한 기도의 영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민족을 이땅에 보내신 것인 잘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이 나라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타락으로 끌고 가는 어둠의 권세, 마귀의 권세를 무엇으로 무엇으로 이길수 있습니까?

 

군사력으로 이길수 있습니까? 재물과 권세로 이길수 있습니까?

인간이 자랑하는 현대 과학으로 이길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수 없느니라’

 

사람들은 돈앞에 기가 죽지만, 마귀는 돈앞에 기가 죽지 않습니다.

마귀는 세상 권세앞에 기가 죽지 않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지식앞에 기가 죽지 않습니다.

마귀가 벌벌 떨면서 두려워 하는 한가지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단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사탄과 마귀의 진지를 부수어 버릴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축복할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품고 기도하고,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에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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