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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17) 신앙의 두날개

복음이야기(17) 신앙의 두날개 롬1:1-7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신앙은 사람마다 크기와 깊이와 상태가 다릅니다.

부부라도 신앙이 다르고, 쌍둥이 형제라도 신앙은 다릅니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해석하는 것이 다릅니다.

 

몇주전에 제가 인도하는 ‘복음방송의 중보기도시간’에 어떤 분이 이런 기도내용을 신청했습니다.

복음방송이 요즘 경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자기가 로토복권을 샀는데 그것이 당첨되면 방송국에 헌금을 많이 테니까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기도요청이었습니다.

제가 기도를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10대의 관심이 다르고, 20대의 관심이 다릅니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도 달라집니다.

 

과거에 군대가서 휴가를 받아 나왔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군인들이 었습니다. 군대에 가기전에는 군인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휴가 나와 보니 사방 천지에 군인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원래 군인들이 항상 있었지만 관심이 없을때는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도 여러분들이 보고 있는 것이 다 다릅니다. 관심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은혜가 오고, 영적인 것이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을 가져야 합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신앙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유익을 얻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첫째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고,

둘째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행복과 성공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같이 중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이 선택하신 이 신앙생활이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승리하게 만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신앙새활에 가장 중요한 기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하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믿고 싶어서 믿은것 아닙니다.

 

교회에서 전도행사를 할 때 마다 사람들을 전도해 보려고 했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야 마음이 열리고 나올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앞에 나온것 이것 자체가 은혜요 제일 큰 기적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두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두가지 부르심을 first Calling 과 second Calling 으로 구분합니다. ‘첫번째 부르심’과 ‘두번째 부르심’입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르심이 있습니다.

(롬 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학문적인면에서나 영적인 깊은 체험, 은사와 능력,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 모든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두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Being 대한 부르심이요,

두 번째 부르심은 Doing 에 대한 부르심입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성령의 열매에 관계된 것이고

두 번째 부르심은 성령의 은사에 관계된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행복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부르심은 성공에 관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르심은 ‘관계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의 것으로, 그리고 성도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두 번째 부르심은 사역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것이 나의 유익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서 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 부르심을 받고, 여러분들은 장로님으로, 권사님으로, 안수집사님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재능에 따라서 찬양대로, 교사로, 새가족팀으로, 주차장에서, 예배위원으로,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그리고 중보기도팀으로,,,

구제를 하고, 전도와 선교를 하고, 은사를 통해서 병을 고치고, 말씀을 가르치고…

이런 사역들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역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를 하지 않아도 우리 한국교회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역을 많이 해 왔습니다.

한국민족의 특성이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 합니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일하기로 유명하고, 성질 급하기로 유명한 민족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일이지만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교회의 사역도 달라지고, 그리고 교단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역과 봉사를 하게 되면 많은 갈등과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취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경쟁심이있고, 시기심이 있습니다.

남이 자기보다 더 잘하면 시기심이 생기고, 남이 일을 잘 못하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음식을 만들어도 여자분들마다 방법이 다릅니다.

김치찌개를 해도 넣은 재료도 다르고,

재료를 넎는 순서도 다릅니다.

양념을 넣는 것도 다 다릅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이 마음에 안들때는 안보는 사이에 자기가 좋아하는 양념을 집어 넣고,

간을 맞추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잡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회의를 잘 할줄 모릅니다.

그래서 회의만 했다하면 시험드는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보고 들은 분들은 교회 봉사하는 일에 깊이 참여를 하고 하지 않고 싶어 합니다.

 

사도 바울도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을때 바울을 제일 힘들게 한 사람들이 같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갈등을 잘 소화하고 갈수록 그의 믿음은 성숙해 지고, 영성은 깊어 졌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골 1:29)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신앙의 길은 평안하지만 않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자원해서 힘든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 번째 부르심 사역의 길인 것입니다.

 

자원해서 힘든일을 할때는 내면이 건강해야 이일을 계속해서 잘 할수 있습니다.

이 힘든 길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빙산으로 치면 바다위에 떠 있는 부분이 두 번째 부르심이라고 하면, 바다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90%의 빙산이 첫 번째 부르심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갈수록 더 좋은 관계로 성장해 가는 일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성장과정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여정입니다. 천로역정 처럼 주님과 더 깊은 관계로 나가는 영성의 길인 것입니다.

 

봉사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신앙의 성장입니다.

더 깊은 영성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역의 열매인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주일날 교회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리고 파킹장에 들어오면서 담배를 꺼내 무는 것이 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장발이었고, 옷을 입은 것도 평범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청년과 함께 왔던 사람은 당황해서 담배를 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실에 들어 갔습니다. 그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옆에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교회라고는 생전 처음 드려보는 그 청년에게 예배는 짜증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찬송가도 처음 불러고 보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영 불편했습니다.

예배가 빨리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교회생활 1년만에 그 청년은 청년회 회장이 되고, 찬양대 총무가 되었습니다.

2년이 되었을때 중고등부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청년회 회원들이 30여명 있었는데 모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한 사람들이요, 교회의 직분자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볼때 저는 완전 날날이 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년만에 그들을 제치고 회장이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신앙의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예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이니까 생활비도 절약할겸 짐싸들고 교회에 들어 왔습니다.

 

매일 밤마다 기도하면서 교회 본당에서 주님의 품에서 잠을 잤습니다.

매일 새벽기도 픽업을 하고,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저녁예배 픽업을 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봉사를 도맡아 했습니다.

성탄절 특별 찬양연습을 할때는 아예 직장을 그만 두고 매일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청년들이 두손 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청년회 회장을 뽑을때 모든 청년들의 손이 저를 향하는 것입니다.

 

30년 전에 저에게 세례를 주고 성경을 가르쳐준 그 목사님에게 이제는 제가 거꾸로 우리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30년동안 많이 발전했지요? 저의 발전이 끝난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지만 저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한편으로 발전할 가능이 더 많다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장이 멈추면 안됩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절대 멈추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첫 번째 부르심과 두 번째 부르심의 의미와 목적을 깊이 깨달을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사역의 열매를 맺을수 있는 것입니다.

 

1600년대 니콜라스 헤르만(로렌스형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불란서 파리 근교의 수도원에서 부엌에서 밥하는 것을 돕고, 허드렛 일을 하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는 기독교 역사에서 영성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한일은 하나님과 열심히 교제한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 한 사람이 그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가 부엌에서 정신없이 분주할때도 그의 영혼이 하나님안에 거함을 알았습니다.

그는 종종 두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했지만 우리는 한번도 그가 허둥대는 모습을 본일이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을 해 나갔습니다.

그는 시종평화와 고요속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친구는 이런 그의 삶의 비밀을 그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를 열망한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인류역사 어느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역과 봉사에는 열광을 합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이있는 교재를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합니다. 이 시대가 영성이 점점 약해 지고 교회의 힘을 잃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이런 번잡함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불교를 찾아 가고, 요가를 하고, 뉴에이지, 묵상을 하면서 고요함을 찾아가 있습니다. 교회는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시끄러운 곳이 되었습니까?

좋은일 많이 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선교하는데 왜 교회가 시끄러운 곳이 되어 버렸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요 샬롬의 하나님인데 가장 평화롭고 고요해야 할 교회가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 되었습니까?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에 소흘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해도 사역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은사를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는 ‘존재를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것이 존재의 의미와 목적입니다.

 

고린도전서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이것은 두 번째 부르심인 사역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그리고 4절 부터는 사랑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것은 첫 번째 부르심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Being입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첫 번째 부르심, 두 번째 부르심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것이 앞서야 하느냐 그런이야기 아닙니다.

둘다 모두 중요한데 현대 교회가 너무나 약해진 부분이 첫 번째 부르심에 관한 부분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교회가 전도가 안되고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도 두 번째 부르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첫 번째 부르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옆에 가면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그런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영성, 따뜻하고 평화로운 영성이 느겨지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엌에서 밥을 하면서도, 파킹장에서 안내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수 있는 그런 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아무 유익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가운데 만들어 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할까?

어떻게 하면 영혼을 더 많이 구원하고, 전도하고

선교할까? 하는 생각도 늘 해야 겠지만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옆에 사람 편안하게 해주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 행복하게 해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두날개입니다.

이 두 개가 건강해야 건강한 신앙생활할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르심이 건강한 사람은 두 번째 부르심도 잘 할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살아도 감사와 기쁨속에 행복하게 살수가 있습니다

향기나는 성도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며 항상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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