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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주소서

은혜를 주소서 히브리서4:14-16 20210103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성경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나옵니다.

그 단어 중에서 가장 ‘은혜’가 되는 단어는 무엇이겠습니까?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가장 ‘은혜’가 되는 단어는 ‘은혜’라는 단어가 아니겠습니까?

 

‘은혜’는 ‘선물’ 이라고 했습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공짜로 주는 선물이 ‘은혜’ 입니다.

세상에서는 ‘공짜’ 좋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들은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공짜로 받은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태양, 별과 달, 공기, 산과 들.. 모두 공짜로 받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공짜’로 누리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입니다.

 

젊었을때는 ‘은혜’의 가치에 대해서 크게 느끼지를 못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래된 ‘장’처럼 더 깊게 느껴 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젊었을때는 ‘힘’과 ‘능력’과 ‘재주’가 있으면 될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인생의 선배들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보아야 ‘은혜’의 소중함을 알아가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말을 합니다.

‘용장’ 보다 ‘지장’이 낮고, ‘지장’ 보다 ‘덕장’이 낮다.

그러나 ‘덕장’ 보다 나은 것은 ‘운장’이다.

‘운’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이길수 없습니다.

‘운’이라는 것은 인간의 모든 노력과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가는곳 마다 우물을 파면 ‘샘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인간이 사는 곳에 ‘물’이 제일 소중하지만 특히 광야에서는 물이 생명입니다.

물이 재산이요, 물이 힘 입니다.

‘우물’이 있으면 양과 소도 기를 수 있고, 채소와 나물도 키울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시대에는 우물을 서로 가지려고 싸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삭의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그래 너덜 가져라’ 하고 다른 곳에 우물을 파면 또 물이 터졌습니다.

빼앗기면 또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파고 그러면 또 샘물이 터지고…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 ‘백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운장’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운’이 좋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은혜’ 라고 말합니다.

 

이삭이 우물을 팔 때 마다 샘물을 터뜨려 주시고, 한해에 백배의 수확을 할수 있게 만들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은혜’를 받으면 또한 주위에서 ‘시기 질투’가 심합니다.

‘이삭’이 잘되니까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삭의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시기 질투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고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엄청난 축복을 받았지만 다윗에게 또한 고난도 많았습니다. 주위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장인’인 사울왕이 시기해서 죽이려고 좇아 다녔습니다.

가까운 형제들이 시기하고 배신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런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 주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은혜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도 은혜이고,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은혜입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 고백한 것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은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 하시나이다 ..’

 

‘코로나 시대’야 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입니다.

새해가 왔음에도 새해를 느끼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은혜’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낼 때 다윗의 가장 위대한 시편 23편이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23편의 결론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입니다

 

인간이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승리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어머니들은 극성으로 아이들을 기르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사회에서 야망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 대로 되지 않습니다.

설사 자기가 원하는 소망이 이루어 졌다고 해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꿈은 이루어 졌는지 모르나 다른 것에서 문제가 생길수 있습니다.

가정에 문제가 생길수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윤활유와 같습니다.

기계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윤활유가 있어야 합니다. 윤활유는 기계가 부드럽게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우리의 인생의 기계가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요동치는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 안에서도 평안을 누릴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말씀처럼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믿음’은 다른 것 아닙니다.

내 힘과 재주를 의지하면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때 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생활’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나간다고 했습니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보좌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은혜입니다.

있어야 할 때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할 때가 있고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필요할 때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돈도 언제나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꼭 필요 할때가 있고 별로 필요하지 않을 때 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봄에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때를 따라서 거름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부분에 불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내리는 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당한 태양 빛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뜨거워도 안되고, 너무 차도 안됩니다.

적당한 온도의 태양 빛이 필요합니다.

때를 따라 비가 내리고, 적당한 바람이 불고, 햇빛이 비취는 것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길거리에 파킹을 할려면 동전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동전이 없어서 애를 먹을 때가 있습니다.

요즘은 크레딧카드로 해도 되지만 이전에 동전을 넣어야 했을때는 적은 동전이 필요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럴 때 필요하고,

어떤 사람은 다른 때 필요합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필요할 때 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을 붙여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비도 와야 할 때가 있고 오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눈도 와야 할 때가 있고 오지 말아야 할 때 가 있습니다.

때로는 없는 것이 은혜일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아픈것이 은혜일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했습니다.

“네가 받은 은혜가 네게 족하다” 라고 했습니다.

몸이 아픈것도 은혜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배가 고픈 것도 은혜입니다.

육적으로 배가 부르면 오히려 거북한 것입니다.

위장은 너무 차면 오히려 거북한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 모자름직 하다 싶을 때가 우리의 육체도 가장 평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많으면 오히려 거북한 것입니다.

항상 모자름직 하다 싶은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서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귀한 은혜입니다.

 

사도바울도 말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면 어떻게 이 은혜를 가질 수 있습니까?

첫째,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 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줄자에게 은혜를 준다고 했습니다.

출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은혜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 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 이었습니다.

(창 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 12:1-2) 아브라함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창 32:9) 야곱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창 39:4) 요셉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삼상 16:13) 다윗이 은혜를 입었습니다.

(눅 1:28) 마리아가 은혜를 받고 예수를 잉태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일차적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은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아들 가운데서 요셉이 부모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듯이, 성도에게 베푸시는 은혜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이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는가?

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에 나가야 합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은혜는 구하는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간절히 느껴야 합니다.

 

[욥 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 시키시느니라

[시 119:58]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베부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심령이 가난해 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배부른 자는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해 져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면 자기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 보고자 합니다.

자기의 경험으로, 오기로 인생의 밭을 갈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낮아 져야 은혜를 받습니다.

산상보훈에서 첫 번째 하신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를 뿌리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뿌리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뿌리치지 않습니다.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뿌리치지 않습니다.

 

(마 15:22)‘가나안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이방여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딸이 있었는데 귀신이 들렸습니다. 고칠수가 없었는데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나와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냉정히 거절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잃어버린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러 왔지 이방인을 구하러 오지 않았다고 하면서 아주 저주스러운 말까지 했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여인을 가르켜서 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여인은 화내지도 않았습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러 오셨으면 나같은 이방인들에게는 그 은혜의 부스러기 라도 베풀어 달라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화를 내지 않을수 있었을 까요?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나안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에게 구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잠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덜 답답한 것입니다.

아직은 숨통이 트이니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행복이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달은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것입니다.

마음에 분노와 미움과 상처가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그런 마음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첫째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옆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를 바르게 드리게 됩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잘되기를 바라고,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와 형제를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직장동료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의 삶은 기쁨이 있었고 또 감사가 있었고 그리고 절대적인 충성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1.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을 알고 겸손하여 집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보니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요, 사도라 칭함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겸손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면 내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랑할 것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요 은혜를 모른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현재 주어진 현실을 감사로 받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이기에 무엇이든지 자족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현실이지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달을 때 그 속에 깊은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일을 하였지만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멕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엄청난 뜻을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 종이 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 편에서 거져 주신 은혜요 우리 인간 편에서는 빚이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 때문에 죽도록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해롤드 스프링스테드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78세의 노목사님인데 어느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고있었습니다. 어느날 예배를 인도하러 차를 운전하고 가던 중 별안간 차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타이어 하나가 바람이 빠졌습니다.

목사님의 차에는 바퀴를 갈아끼울 도구조차 없었습니다. 그때 트럭운전수가 그 뒤에 차를 세웠습니다. 한 젊은이가 뛰어 내리더니 사태를 살펴보고는 기꺼이 타이어를 갈아 끼어 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예배시간에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예배에 늦지 않게 온 것입니다.

 

여러분 이분의 간증을 들으시고

“야! 그 간증참 은혜롭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시시하다 그런 간증이라면 나도 수없이 있다” 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이런 이야기는 우리들도 많이 경험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경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늘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그 정도 사소한 간증거리는 간증 거리로도 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뭐좀 더 확실하고 화끈한 경험이 없는가?

좀더 자극적인 그런 간증을 듣고 싶어합니다.

죽다가 살아난 체험들을 들으며 은혜를 받습니다.

망하기 일보직전 전화위복되는 그런 간증을 들으며 은혜를 받습니다.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간증을 듣고 싶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것이 진짜 은혜 이겠습니까?

특별한 간증거리가 없는 평범한 인생이 은혜입니까?

아니면 화끈한 간증이 많은 것이 은혜입니까?

자동차가 문제가 없으면 더 감사한 것 아니겠습니까?

꼭 죽을 고생하고 살아 나야 감사한 것입니까?

 

은혜는 두가지가 다 은혜입니다.

그러나 화끈한 경험, 화끈한 간증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험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평탄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험란하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기도할때는 평탄한 삶을 원하면서도, 평범한 것 속에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참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평범한 것이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한 간증거리가 없는 것이 은혜로운 삶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중에 은혜가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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