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주신 권세

어디까지 순종해 보셨습니까(2)
January 5, 2024
사명자는 행복합니다
January 5, 2024
어디까지 순종해 보셨습니까(2)
January 5, 2024
사명자는 행복합니다
January 5, 2024

교회에 주신 권세

“교회에 주신 권세” (마16:15-20) 20210214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저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미국에 와서 가장 축복을 가장 많이 받으신 분들, 수지 맞으신 분들이 누구냐 하면..

미국에서 예수님 믿고 신앙생활하게 되신 분들입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교회근처에도 가지 않으실 분들이 미국에 왔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님 믿게 되신 분들이 많습니다.

최고로 복을 많이 받으신 분들입니다.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많은 축복을 받으신 분들이 누구냐 하면 빈손으로 와서 지금 까지 잘 살아 오신 분들은 덤으로 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또 한가지 복을 더 받으신 분들은 싱글로 왔다가 결혼해서 가정 까지 이루고 사시는 분들은 ‘삼박자 축복’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제가 그 ‘삼박자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청년으로 미국에 와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요, 빈손으로 와서 지금 까지 잘먹고 잘 살았지요, 그리고 예수님 만나 이렇게 목사까지 되었지요..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은 ‘내 뜻대로 안된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자기 뜻대로 안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내뜻대로 안되고, 내 생각대로 안된다고 속상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내 뜻대로 안된다고 속상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내꿈을 이루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것’이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계속 ‘교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교회 안으로’ 몰아 넣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가정’을 떠나서 있을수 없듯이 신앙생활은 ‘교회’를 떠나서 있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요,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모든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특별한 것 없습니다. 교회생활 잘 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최고의 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역사의 중심’인 것을 ‘사탄’이 알기 때문에 ‘사탄’은 항상 교회를 공격하고, 성도님들이 ‘교회생활’을 잘 하지 못하도록 유혹하고 방해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교회’가 멀어진다 싶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은 항상 ‘교회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어떤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셔야 합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때문에 교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때 교회가 어떤 곳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난 1년동안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를 받은 것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가 무엇인가? 하면 모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예배’부터 생각합니다.

물론 첫 번째가 ‘예배’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드리지 못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피해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입니다.

그 ‘피해’가 사실 더 큰 피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는 ‘전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도’의 길이 막혀 있습니다.

‘새가족’이 교회에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면 전도를 하기도 어렵고, 새가족이 교회에 오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피해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정부에서 교회를 모이지 못하게 하니까 사람들은 예배에만 관심을 가졌지 전도가 막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야 교회에서도 예배를 드릴수 있고, 가정에서도 드릴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전도’의 문이 닫히게 되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중요하게 인식들을 못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데 불신자들이 교회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아이를 가진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 아예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형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형교회는 젊은 세대가 많이 있으니까 당장은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체 교인들의 분포를 비교해 보면 큰 교회역시 역삼각형입니다. 교육부나 청년들 보다 장년이나 노년이 훨씬 많은 비율은 큰교회나 적은 교회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도하지 못하고, 특히 젊은 세대가 교회에 나오는 것을 꺼리면서 이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건강해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이 건강해야 하듯이 우리가 속한 교회공동체 역시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코로나’를 허락 하셨겠습니까?

교회에 주시는 경고, 세상에 주시는 경고인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인간의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세상이 복을 받는 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으켜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오히려 교회를 더 약화 시키고 있고, 성도님들은 교회를 더 멀리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님들은 이번 기회에 교회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고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서 더 기도 하고 노력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 세계 이민자들의 서울은 LA입니다. LA는 세계 이민자들의 서울입니다.

그리고 LA의 중심은 한인타운입니다.

 

영적으로 LA가 왜 중요한가? 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항상 중심되는 도시에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고, 그리고 사도 바울이 선교의 최종 목적지로 생각했던 곳은 로마 였습니다.

지난 2천년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큰 역사들이 중심되는 도시들에서 일어 났습니다.

영국의 런던, 미국의 시카고, 뉴욕, 그리고 아주사 성령운동은 LA에서 일어 났습니다.

우리가 LA에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을 하시고 ‘천국열쇄’를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오직 이것으로만 천국문을 열수도 있고 닫을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이지만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를 상징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의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것은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생명을 낳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는 ‘열쇠’를 교회에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천국의 열쇠’가 여러개 있는 데 그중에 ‘교회’에도 하나를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에게만이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단어 가운데 가장 위대한 단어, 최고의 단어는 ‘구원’이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인간에게는 생명이 가장 귀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나름 대로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영물이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는 ‘이스마엘’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이 찾는 ‘알라 신’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너의 후손이 아니라, ‘사라’에게서 난 자만이 너의 후손이 그를 통해서 유업을 이어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 후손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지만 ‘구원’은 오직 ‘이삭’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슬람교’ 다음으로 많은 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는 ‘석가모니’는 자신도 ‘구원의 길’을 평생 찾아 헤메던 사람이었습니다.

 

인도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고, 세상 모든 나라에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간들이 나름 대로 신을 찾아 구원을 얻고자 하는 노력일 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장례설교를 하면서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강조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믿어야만 천국에 간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같다.

하는 말을 특별히 강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식장에 스님이 두분이 와 계셨답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하니까 그 말이 듣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스님들은 설교도중에 일어나 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중간에 일어나 나간 두 스님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내세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더라면 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어떤 스님이 “부처님을 섬겨야 극락에 갑니다. 부처님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해서 제가 기분 나빠 하겠습니까?

속으로 그러지요, 부처님을 만나려면 지옥에나 가야지, 아마 지금 지옥의 제일 뜨끈 뜨끈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저는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직 예수로 만이 구원을 받고, 예수로 만이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고, 보고, 믿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죽습니다. 누구든지 죽습니다.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매일 조금씩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서 하루 하루 다가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피할수 없으며,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을 해결할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창세기입니다.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죄를 지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어느 한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은 곧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 날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인간이 해결할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간단히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 만들어 졌습니까?

우리는 공짜로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이 받아야 하는 죄의 댓가를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하게 지불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기록한 것은 창세기 1장으로 다 끝이 납니다.

말씀 한마디로 다 창조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명하시니 즉시로 빛이 생겼습니다.

해와 달과 별아 생겨라 명하시니 즉시로 생겼습니다.

 

2장에는 인간을 만드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만드실때는 좀더 정성을 들였습니다.

흙을 빚어서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드실때는 좀더 신경을 쓰셨습니다.

남자로 하여금 잠들게 하고, 그리고 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여자는 하나님도 조심조심해서 만들었습니다.

아담이 잠들게 하고, 옆에서 신경 건드리지 않게 잠들게 한다음 만들었습니다.

우주만물의 창조는 창세기 1장 한 장으로 끝내시고, 인간의 창조는 2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장부터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장을 제외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구원의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으로 가는 인간을 회복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서 파괴된 것은 육신이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육체의 문제였다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간단하게 병자를 고치셨듯이 간단하게 치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닌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였습니다.

약속의 파괴 였습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신뢰가 깨어지면 이것을 회복하는 것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깨어진 신뢰를 회복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회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선악과 하나 따 먹은 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운 것입니다.

 

천국은 완전한 곳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먼지 만큼의 틈이 있어도 안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일치가 있는 곳입니다.

 

인간이 지구위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은 우주의 질서가 조금도 흐트러 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태양과 지구와 달과의 물리적 관계가 조금이라도 흐트러 지면 이땅의 생명체는 모두 죽어 버리게 됩니다.

 

불순종하면 죽을것이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불순종 했고, 그 말씀대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인간이 받아야 하는 죄에 대한 심판을 친히 자기의 몸으로 받아 주신것입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해서, 죽음으로 인해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여러분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권세와 축복이 있는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믿는 사람에게만 주신 권세와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전하고 가르치는 곳은 오직 교회 공동체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구원의 권세와 축복은 세상의 억만금으로도 가질수 없는 축복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의 권세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설사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은 이미 그 죄까지 다 씻어 주셧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은 은혜’ 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공짜로 주는 선물을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참 엉터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엉터리같은 모습도 사랑하시고, 우리의 부족한 믿음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이라고 권세와 축복을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살것이라고 기대하지를 않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살것이라고 기대를 하셨겠습니까?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델로 세우시고 그의 신앙을 배우게 하셨지

우리가 사도 바울이나 제자들처럼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의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믿음을 통해서 세계를 구원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가 완전할것이라고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들도 복잡하고 시끄러웠습니다.

현대의 교회들보다 더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아들이 아버지의 첩을 데리고 교회에 나옵니다.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타락을 해도 그런일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에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버젓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시작한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들도 있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 교회와 별반 다를것이 없었습니다.

 

이같이 부족한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사업을 이루어 가실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그 권세를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회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교회가 다시 ‘회심의 역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겠습니다.

예배때 마다 ‘회심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 위해서 기도하실 때 마다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 성숙, 치유, 회복’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왔습니다.

 

이제는 ‘회심과 회개’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 겠습니다.

지금 온 세상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득한 것처럼,, 죄의 바이러스가 사라지고, 다시 ‘회심과 회개의 바람’이 온 세상에 다시 불어 올수 있어야 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며, 서로 도와주며 살아야 합니다.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위로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세상사람들을 구원해야 하는 그 사명을 같이 감당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족들 중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