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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는 행복합니다

“사명자는 행복합니다” (행9:10-15)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코로나 시대’가 끝나면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여행’을 떠나는 일일 것입니다.

코로나가 있기 전에도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첫 번째로 있는 것은 ‘여행’이었습니다.

평생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첫 번째 소원은 ‘쉬는 것’이고 쉬면서 할수 있는 첫 번째 소원은 ‘여행’하는 것일 것입니다.

 

‘쉬고 싶고’ ‘놀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로망이지만 막상 ‘할일’이 없어 지면 그것처럼 힘든 것 또한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료한 인생은 ‘할 일이 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사람은 ‘할 일을 회피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은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끔 ‘일 안하고 노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자신은 일 안하고 노는 것이 ‘행복’할지 모르지만 식구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최고로 나쁜 사람입니다.

 

[전도서 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지옥은 할 일이 없는 곳입니다.

 

할일이 있는 것이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아담에게 할 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을 관리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담을 그냥 놀고 먹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다음에 인간이 죄를 짓고 나서 부터는 그 일이 ‘고통’이 되었습니다. 일을 하기는 해야 하지만 ‘땀’흘려 일을 해야 하고, 고통속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일’이 ‘행복’이었지만,

죄를 짓고 나서 부터는 ‘일’에 ‘고통’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과 ‘고통’이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 동안 ‘행복’과 ‘고통’이 함께 있는 것은 어쩔수 없지만 조금 더 행복하게 일을 할수 있는 것과 불행하게 일을 하는 것은 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감사하면서 일을 하면 좀더 행복하게 일을 할수 있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면서 억지로 하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 지게 됩니다.

열매도 좋을수가 없습니다.

 

  •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가 시키는 일이냐에 따라서 그 일의 가치는 하늘과 땅 만큼 가치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 에 따라서 달라지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일’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은 하늘과 땅차이 입니다.

 

대통령이 ‘윌셔’거리에 꽃을 심으라고 시켰다면 LA 시장이 감독을 하고 좀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다 모여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꽃을 심고 있으면 지나가는 노숙자도 쳐다 보지 않은 것입니다.

누가 일을 시킨 것이냐? 에 따라 그렇게 가치가 달라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하고, 먹고, 자고, 쉬고.. 하는 것은 하늘아래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일의 가치과 보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노래와 찬양이 무엇이 다릅니까?

누구를 위해서 부르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이 말씀은 그냥 단순히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가치가 달라지고, 우리 자신도 행복해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 ‘복음’이 왜 기쁜소식 입니까?

없는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치를 깨닫게 해 주기에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사명적인 삶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모든 일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누가복음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예수님도 이땅에 사명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도 만인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명으로 오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사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사명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명에 충실하다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순교로서 그의 사명을 다하게 됩니다.

 

모세가 태어난 것도 사명입니다.

남자아이로 태어난 아이는 다 죽이라는 바로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의 딸에게 구출을 받아서 에급의 왕자로 40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광야로 부르셔서 40년을 훈련시켰습니다.

80세의 나이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애급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해서 가나안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사명을 그의 나이 80세에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날 때 이미 그 일을 맡기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우리는 ‘사명’이라고 표현 합니다

 

요한복음 19장에는 예수님이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밤새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탕치고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 나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행1:8 모든 제자들에게 주시는 위대한 세계선교의 사명이 나옵니다.

9장에는 사도 바울이 사명을 받는 내용이고

20장에는 사도바울이 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죽음의 경고를 무릎쓰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내용입니다.

 

기독교2천년 역사속에 가장 위대한 인물은 바울입니다.

‘사명’이 그의 인생을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오늘 읽었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다멕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사명에 눈을 뜨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잘못된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교회를 없애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납니다.

대낮에 해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면서 눈이 멀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습니다. 자신이 잡아 죽이려고 하던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받고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자신의 사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됩니다.

교회를 없애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전세계에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인생을 바치게 됩니다.

예수 이름을 없애려고 하던 사람이 온 세상에 예수 이름이 충만하게 퍼지게 하는데 일생을 바칩니다.

  • 하나님은 우리가 이땅에 태어날 때 이미 무슨 일을 시킬지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사명이 있습니다.

 

아직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사명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이 먼저 보이고,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이 먼저 들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으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 사명은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사명은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사명을 잃어 버리면 다른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행복 할수 없습니다.

짐승은 먹을것 있으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할수 없습니다.

 

  • 가장 위대한 사람, 가장 힘있는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명에 붙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금광을 찾으려고 켈리포니아에 몰려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 하나를 다 뒤집었지만 금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산입구에 팻말을 꼿아 놓았습니다.

“이 산속에는 내가 다 뒤져 보았지만 금광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산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지 말고 다른 곳을 찾아 보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그 팻말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이 사람 참 친절하구나 하고 다른 산으로 가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친구가 이산에서 금광을 발견해 놓고 혼자 차지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 구나… 하고 산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것 같습니까?

 

솔로몬이 모든 사람이 부러워 하는 인생을 살고 나서 하는 말씀이 “인생의 행복이 부귀영화에 있는것 아닙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라고 외쳤지만 사람들은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예배 끝나고 나가시면 바로 솔로몬이 가지 말라고 한 그 산으로 좇아 갈것입니다.

 

관심이 세상에 있는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사명을 깨달으라고 해서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빼앗기고 나서야 사명을 깨닫습니다. 빼앗기기 전에 깨닫는 사람이 더 복된 사람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충동에 이끌리는 삶” 과 “사명에 이끌리는 삶” 이라고 했습니다.

 

안병욱 교수는 사람의 탄생을 말하면서

첫째는 육신의 탄생, 둘째는 정신적인 혼의 탄생, 셋째는 사명자로서의 탄생을 말했습니다.

 

  • 소명을 Being 이라고 표현 할수도 있습니다.

Being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빙이요 사명입니다.

 

  • 사명은 Doing 입니다. 해야하는 일입니다.

소명은 ‘나는 누구냐?’ 에 대한 대답이고

사명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대답입니다.

존재의 목적을 실천하는 것이 사명 인 것입니다.

사명에는 일반적인 사명이 있고,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보편적인 일들입니다.

 

아내로서 해야할 일이 있고, 남편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할 일이 있고,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라의 국민으로서 해야할 일이 있고, 사회속에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명입니다.

 

그다음에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부름을 받았고, 장로님으로 부름을 받고, 권사님, 집사님, 선교사님등등으로 부름을 받습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주신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대사 ambassador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대사를 파송하는 것은 대통령이 하는 것입니다.

대사는 그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가장 큰 계명과 가장 큰 사명입니다.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가장 큰 사명은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 가장 큰 계명은 우리의 인격과 성품에 대한 것이고,
  • 가장 큰 사명은 우리가 해야하는 일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고 나서 세 번다 하나님의 양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요 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6)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요 21:17) 내 양을 먹이라

어떤 분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직 영적으로 어린신자를 말합니다.

 

두 번째는 ‘내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이제 좀 자라서 사춘기에 들어선 양입니다.

사고를 치고, 반항하고, 비뚤게 나가서 신경써서 돌봐야 하는 양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격고 있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어른이 된 양입니다.

예수를 닮아가야 하고 성화되어가야 하는 성도들을 말한 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사람을 돌보고, 사람을 키우고 성숙하게 하는 일은 우리의 사명의 가장 기본이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벗어 나본적이 없고, 평생 물고기 잡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오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것이라고 하니까 상상도 할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행2장에 성령을 받고 나서 예루살렘 광장으로 나가 보니 이미 세상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핍박이 일어나자 그들은 자연히 여러지방으로 도망갈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행1:8절의 말씀..‘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이미 준비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사명을 깨닫기 전에는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으시고 사명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만 충실하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선교의 중심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가장 중요한 선교지 입니다.

 

세계를 복음화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그일을 위해서 구석구석에 사람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면 그것이 다 연결이 돼서 세계선교의 일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정성이 세계선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해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은일이지만 적은일이 아닙니다.

 

바다의 고래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아십니까?

크랙이라고 하는 적은 새우를 먹고 삽니다.

가장 큰것은 가장 적은것 때문에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적은 것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가장 작은 새우가 없으면 고래도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헌신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명이 분명할 때 사소한일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게 됩니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다.

 

  •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행 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명의 길에는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인내의 길입니다. 외로운 길입니다.

신앙의 마지막 단계는 외로운입니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은 결고 쉬운길 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길이지만 나의 길을 따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요? 마지막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보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즐거움을 택할것인가? 영원한 즐거움을 택할것인가? 잠깐의 평안을 택할것인가? 영원한 평안을 택할것인가?

잠깐의 영광을 택할것인가? 영원한 영광을 택할것인가?

  • 사명은 크고 거창한 것만이 사명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세계 선교를 위해서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것만이 사명이 아닙니다.

큰 사명외에도 일상에서 외면하면 안되는 소소한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사명입니다.

둘째,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것도 사명입니다.

셋째,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도 사명입니다.

넷째, 매일 성경읽고 기도해야 하는 것도 사명입니다.

다섯째,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도 사명입니다.

 

  •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주신 모든 말씀이 우리가 지켜야 하는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모세와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는 그 시대를 책임져야 하는 특별한 사명을 주시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사명 역시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명을 지키지 못하면 특별한 사명을 지킨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본을 하지 않는 사람이 특별한 것을 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했다고 하더라도 흠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 매일 매일의 삶이 사명의 삶입니다.

저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저 보다 훨씬더 어렵고 중요한 사명인지 모릅니다.

 

저는 이미 구원받은 여러분들을 섬기는 것이 사명이지만, 여러분들은 매일 세상 속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전쟁을 치루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은 마귀를 섬기는 사람이고, 돈에 눈이 멀은 사람이고, 인정사정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참고 인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사명으로 산 사람입니다.

(행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딤후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의 삶의 모든 것이 사명이요 그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시면서 살아 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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