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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생명

“그리스도의 생명” (요5:24-2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째,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둘째, 불행한 일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셋째, 평안을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넷째, 사후를 준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세가지 중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 모든 것 중에서 ‘생명’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생명이 없으면 아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생명’이 있기에 필요한 것입니다.

 

  • 인간이 원하는 부귀영화, 건강, 심지어 천국과 지옥까지도 ‘생명’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어떤 것도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서워 하는 것은 ‘생명’에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들 마다 빗장을 치고 입국하는 사람들을 2주간 격리를 시킵니다. 여행으로 먹고 사는 나라들이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비행기가 뜨지를 못하고, 크루즈배들이 멈춰 서 있고, 여행을 다니지 못하고,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가족끼리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눈에 불을 켜고 살던 사람들이 ‘돈’을 마다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명’에 위협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속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밥을 먹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 일을 합니다.

건강한 생명을 유지하기 운동을 합니다.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합니다.

 

  •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외에 다른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이 생명을 조금 이라도 건강하게 유지해 보려고 ‘잡곡밥’ ‘현미밥’에다, 물도 ‘알칼리물’에다 ‘정수물’을 가려 먹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야기 어디서 듣고 와서는 이런 것 좋다, 저런건 나쁘다.. 하면서 건강을 챙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귀한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길어야 100년입니다. 짧은 생명입니다.

미역국 100그릇 먹으면 끝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최고로 복을 받은 사람이래야 100 그릇이고, 요즘 평균으로 하면 미역국 80-90그릇 정도 먹으면 끝나는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것이 ‘육체의 생명’ 인데도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바둥 거리는 것이 사람 입니다.

억만금을 주고라도 하루라도 더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루라도 더 살아 보려고 바둥 거리는 것이 꼭 이 세상에 미련이 있기 때문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죽음을 앞두고 하루라도 더 살아 보려고 바둥 거리는 마음이 꼭 이 세상에 미련이 있기 때문 일까요? 아니면 막연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까요?

 

그리고 우리의 생명이 이땅이 전부 라고 하면 이렇게 주일에 나와서 예배하고 이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 노래처럼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하면서 사는 것이 더 지혜로울 것입니다.

 

인생이 100년으로 끝난다고 하면 고상하게 폼잡고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짐승과 다르게 뭐 인간답게 좀더 고상하게 살려고 노력들을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인간이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지옥과 천국이 어디에 있느냐? 고 말하면서도 왜 짐승과 다르게 살고,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왜 좀 더 의롭게 살려고 노력을 하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짐승과 다르게 만드셨고, 모든 인간에게는 양심이라고 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양심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마음입니다. 짐승에게는 없는 마음입니다.

 

둘째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말은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 있는가? 말하면서도 인간의 본능은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어서 선과 악을 아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어서 죽음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인간의 영혼은 느끼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부인 하면서도 두려운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이같이 중요한 것이 ‘생명’인데 다른 종교에서는 그 ‘생명’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 ‘우상’이 생명이 있습니까?

불교를 믿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믿음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부처상’에 평생 절을 하고, 인생을 걸고 살고 있으니.. 얼마나 믿음이 좋은 것입니까?

절에 가면 법당안에 있는 ‘부처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깥에 돌로 크게 만든 부처 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위에 새들이 부처상 머리 위에 앉아 똥을 싸 놓아도 부처는 아무 말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기울어져도 넘어져 자빠져도 일어날수 없습니다. 그런 우상 앞에 평생 무릎이 달토록 절을 하고, 자손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참 믿음이 좋지 않습니까?

‘생명’ 없는 우상이 어찌 인간을 구원 할수가 있겠습니까?

 

  • ‘생명’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꼬집으면 아픈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귀에 소리가 들이고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인 것에 감사를 해야 합니다.

 

  • ‘생명’이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과학자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밝혀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발견하고 싶어하는 생명의 근원 바로 그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요, 내가 생명을 시작한 하나님이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발견하고 찿고자 하는 생명의 근원이 이땅에 왔건만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신문에 ‘바이든’을 지지 하는 사람들의 63%는 ‘하나님이 창조주인 것을 믿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미국이니까 그 정도이지 한국 같으면 80% 이상이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1:10절의말씀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며 세상이 그를 알지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문명이 그렇게 발달을 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 공허함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는 공허함입니다.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공기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변종된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시작은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죄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가 모든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왜 자기의 신만 신이고, 왜 다른 신들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말 합니다.

때로는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가운데서도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이 땅에서의 육신의 생명은 잠깐이요 우리에게는 ‘영원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의 생명’을 주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생명을 얻어 이땅에 태어나는 것도 ‘기적’이 아닙니까?

한 사람의 인간의 몸속에서 평생 만들어 지는 ‘정자와 난자’의 세포의 숫자가 하늘의 별보다, 바다의 모래 보다 많습니다.

인간은 수억, 억, 억의 분의 일의 기회를 만나서 생명을 얻게 되고 이땅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일년동안 어머니의 철저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게 되고 어른이 되기 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살게 됩니까?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까지 와서 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 이러한 우리의 생명이 단순히 이땅에서 100년의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영생’으로 가기 위한 또 다른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육체’를 벗어 나게 되면 우리에게는 ‘영생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사탄을 위해서 준비한 ‘지옥’이라는 영벌에 쳐해져야 했습니다.

 

지금 온 세상이 공포에 떨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죄의 심판을 본 보기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시는 것이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그런세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막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더 비난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위험한데 왜 모이냐고.. 비난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운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지옥의 심판은 ‘코로나’보다 억만배 더 무섭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를 듣기를 원하셨지만, 인간은 오히려 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마음만 더 강팍해 지고 있습니다.

 

애급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바로의 마음이 더 강팍해 졌던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죄의 심판,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을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육신의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통을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온 세상을 멈추어 서게 할 만큼 육신의 생명이 소중한데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생명’이라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생명이라는 말을 35회나 하고 있습니다.

매장마다 1번 이상씩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에서 시작해서, ‘생명’으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한은 생명은 예수 안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20:31] 에서는 이렇게 결론 짖고 있습니다.

”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백신’은 죽음의 코로나로 부터 잠깐 지켜 주는 것 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간을 죄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시고, 지옥의 고통에서 구원해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 천국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분병한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이지만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사람의 지체를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서운 바이러스입니다.

 

‘죄’가 그런 것입니다.

‘죄의 바이러스’는 인간의 삶을 파괴합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관계를 파괴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죄로 인해서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십자가의 피의 희생으로 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구원의 백신’을 맞는 것입니다.

두 번 맞을 필요도 없습니다. 한번 믿으면 그 효과는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안에게 오셔서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죄’를 이길수 있는 완전하고 영원한 ‘항체’가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 효과는 영원한 것입니다.

다시는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11:25-26]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한번’의 생명도 너무나 소중한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얼마나 감사 합니까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자동차사고로 다리와 발에 큰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 최고 운동선수를 수술하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수많은 사람들을 수술하는 정형외과 의사이지만 ‘타이거 우즈’와 같은 세계 최고의 운동선수를 직접 수술했다고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도 영광이고, 병원의 역사에도 영광일 것입니다. 아마 그 의사와 병원은 평생의 자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은 만왕의 왕이시고, 창조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생명’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파우치’ CDC 국장이 말하기를 ‘백신’을 맞은 사람들끼리는 만나도 될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백신’은 100%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완전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보장합니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슬픔도, 고민도, 스트레스도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헤어짐의 슬픔도 없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와 신앙생활을 하시던 많은 분들이 먼저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교제하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었습니다.

 

모두 천국에서 함께 계실 것이고 우리도 함께 만날 것입니다.

이땅에서 이별한 것은 섭섭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울지는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머지 않는 앞날에 그 영생의 세계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힘, 소망, 기쁨 이라는 말입니다.

봄에 피어나는 새싹들을 보면 생명이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생명은 힘이 있습니다. 죽음을 밀쳐 내고 나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희망을 말합니다.

 

예수가 생명이라고 하는 말은 예수를 가진 사람은 삶의 의욕과 삶의 기쁨, 삶의 희망을 가질수 있다는 말입니다.

 

육체의 힘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힘이 생깁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듯이 ‘겉사람은 쇠퇴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그리스도 예수는 기쁨 입니다.

사람은 기쁨이 넘칠 때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기쁨이 넘칠 때 엔돌핀도 생기고, 엔돌핀이 생겨야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에 엔돌핀이 생기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짜증만 나고, 울화가 치미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보다 기쁘고 신나는 일은 없습니다.

 

올바르게 바르게 살라고 하는 말은 귀가 따갑게 들었습니다.

알면서도 사람들은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깨달은 사람은 변하게 됩니다

바르게 살라, 올바르게 살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방향이 달라집니다

사춘기때는 친구 따라 옷입는 것도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결혼 날짜 잡아놓은 신부는 누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스스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증오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지상에서 없애 버리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는 완전히 반대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의 태도가 바뀌어 지게 됩니다.

삶의 가치가 바뀌어 지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이시간에도 성령님을 통해서 함께 계심을 감사하며 매일 매일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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