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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 (24) ‘복음의 능력’

복음이야기 (24) ‘복음의 능력’ 로마서1:14-16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요즘 한국 삼성그룹의 걱정이 많습니다.
중국기업들이 바짝 좇아 오고 있습니다.
삼성기업이 현재의 삼성기업으로 살아 남으려고 하면 계속 혁신적인 제품들을 개발해 내어야 합니다.
세상의 기업은 그렇습니다.
계속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 살아 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성공과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 었습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께서 전하신 것은 ‘천국복음’입니다.
이 세상의 소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소식’입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소식’ ‘복된소식’입니다.
그 ‘기쁜소식’은 ‘하나님 나라의 소식’입니다..
경기가 회복이 되고, 직업이 늘어나고, 전쟁이 끝이 나고 …
그런 소식이 아닙니다.
‘천국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쁜소식’을 기쁘게 듣지 못하고,
‘기쁜소식’인줄 아는데 마음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기쁜소식’인데 감정으로는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것이 현대 교회와 목회자들의 고민입니다.
결혼하기전에는 저 여인의 마음을 얻기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습니다. 저 남자와 결혼하면 세상을 다 얻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그 기쁨이 점점 약해 집니다.
그리고 의학적으로도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감정은 3년 안에 소멸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 뜨거운 감정은 오래 갈수가 없습니다.

‘복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복음’을 처음 받았을 때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가 갈수록 그 감정은 점점 식어져 갑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문제, 미래의 불안, 자녀들의 미래, 직장.. 노후대책.. 육신의 질병. 사건, 사고, 환경변화..불안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것 뿐만 아니라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잘못된 욕망이 스스로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잃어 버리고 사는 것은 마치 사랑없이 살아가는 가정과 같습니다.
사랑없이 살아가는 가정이 어떤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잃어 버리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 이듯이, 교회는 복음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기쁜소식이 들려 오기를 기다립니다.
새로운 기쁜소식이 있기는 있겠지만 그것은 아주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가장 큰 기쁜 소식은 이미 2천년전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은 우리가 들었고 믿었고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기쁜감정을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쁜 소식을 소생하게 하는 일입니다.
부부사이도 그렇지 않습니까? 제일 좋았을때가 연애할 때 아닙니까? 연애할 때 그 감정을 평생 똑 같이 가질수야 없겠지만 다른 형태로 가질수는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걱정하는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외치는 것이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살길이고 세상을 구원할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말씀했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자랑스럽게 외칠수 있습니까?
복음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자랑하는 것은
첫째는, 죄와 죽음을 이기는 힘이 복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비극은 죄와 죽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의 시작이 ‘죄’ 때문이고,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도 ‘죄’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릎 꿇게 됩니다.
죄의 위력이 얼마나 큽니까?
히틀러 한 사람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서 수백만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히로시마의 폭탄은 수십만의 사람을 죽였지만,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한 고통은 이땅의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의 근본과 양심을 저 버리는 것입니다.

(1)죄는 마귀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죄를 짖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2)죄는 불순종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되리라’ (롬 5:19)

(3)죄는 자기 마음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4)

(4)죄는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좋은 세상은 죄가 적은 세상이요, 나쁜 세상은 죄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좋은 나라는 법이 잘 지켜 지는 나라이고, 나쁜 나라는 법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스위스는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스위스 경찰서의 유치장은 비어 있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어떻습니까?
유치장이 차고 넘치고, 유치장이 모자라 왠만한 죄는 중간에 내 보내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엄격한 법을 만들고, 죄지은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두어 보기도 합니다.
죄인 한사람을 위해 일년에 2만불 이상이 든다고 합니다.
시설과 다른 것 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교도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해마다 범죄자는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죄의 위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인간을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은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족들에게 간절히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도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거에 병원에 심방을 갔다가 어느 한 병실을 보니 한국 할머니 한분이 누워 계셨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서 ‘할머니 예수 믿고 천국 가셔야지요’ 그랬더니 대뜸하는 말이 ‘지옥에 가 보았어요?’
지옥은 가보지 않았지만 성경에 죄지은 자는 모두 지옥에 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지옥이 갔다 왔다 할수 있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지옥은 한번 가면 다시 나올수 없는 무서운 곳이기 때문에 지옥인 것입니다.
만약에 죽어서 지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죽어서 정말 지옥으로 갔다고 하면 큰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예수 믿어 보세요.‘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하는 말씀이 자기도 한때는 한국에 있을때 교회에 열심히 나갔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도 매일 나갔었는데 한번은 하나님앞에 작정헌금을 하고 못내게 되어서 안나가다 보니 지금까지 안나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셔야지요’ 그리고 기도해 주고 나왔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두 지옥으로 갑니다.
이 세상의 고통도 힘든데 지옥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갈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지옥의 고통을 받아 주시고 우리에게 지옥을 가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공짜로 갈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쁜소식중에 기쁜 소식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지옥의 문을 박차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죄의사슬을 끊어 버릴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복음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이길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가끔 신문을 보면 자기의 어려운 환경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너무 많아서 웬만해서는 신문에 나지도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를 해서 자살하고,
실연 당해서 자살하고, 대학에 떨어 졌다고 자살하고, 학교에서 왕따 당해서 자살하고, 인기가 떨어져 자살하는 연예인들도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을 제일 많이 하는 나라중에 하나입니다.

인생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모양만 다를 뿐이지 사람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비관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어려움을 이길수 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상처난 심령을 치료해 줍니다. 상처난 가정을 치료 해 줍니다.
상처난 인생을 치료해 주는 능력이 복음에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수 없는 것을 오직 복음만이 치료해 줄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말할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난 때문에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마음속에 있던 복음의 능력으로 역사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고픔과 궁핍에도 일체의비결을 배웠노라’(빌4:11-13)

오늘날도 어려운 환경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지켜 줍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감사를 알으켜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이겨 나갈수 있는 힘을 줌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죄는 감사를 잃어 버린 죄입니다.
인류역사에 현대처럼 평안하게, 안락하게 살던 시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와서 타고 다니던 차가 600 불짜리 ‘더스터’라는 중고차 였습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롤스로이드 타는 것 같이 감사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에 비해 얼마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감사를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늘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켜 줍니다.
우리의 본질을 가르켜 줍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켜 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켜 줍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쁜 소식입니다.
“ 믿음이 이기네 , 믿음이 이기네, 주예수를 믿음이 온세상 이기네”

셋째, 복음은 인격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인생자체가 힘들지만 그것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비뚤어진 인격과 성품입니다.

우리말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한번 습관이 들면 고치기가 참 힘이 듭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삭게오라는 사람은 구두쇠로 소문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친구도 없읍니다. 유일한 친구는 돈 이었습니다.
날마다 돈세는 재미에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세리가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고 나더니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피해를 준사람에게는 4배를 주어 보상을 하고, 자기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이렇게 하루 아침에 사람이 바뀌게 된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리의 마음을 녹여 놓았습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 된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변화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꾸 환경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환경은 우리를 변화 시키지 못합니다.
환경을 바꿀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여 합니다.
사람이 바뀌면 어떤 환경이라고 이겨 나갈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어려움을 환경을 바꾸어서 이겨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환경을 바꾸어 봄으로 인해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보장할수 없는 방법입니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면 어떤 환경이라도 이겨 나갈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바꾸어 놓는 일은 어떤 것으로도 안됩니다.
부모도, 형제도 못하는 일힙니다.
오직 복음만이 할수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자기가 얼마나 죄인이었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잃어 버렸던 감사를 회복 시켜 줌으로 사람을 새롭게 변화 시켜 놓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감사가 살아 납니다.
불평과 원망과 미움으로 가득차 있던 마음이 복음이 들어 가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즘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원로목사님들이 전국을 돌면서 회초리회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원로목사님들이 강대상에 각자 회초리를 들고 올라와서 자신에게 회초리를 때리며 회개를 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문제가 자신들이 잘못해서 그런것이라고 자신들을 때리면서 회개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벼랑 끝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일들이 복음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타락하게 만든 것은 목사님들의 잘못된 욕망과 성도님들의 편승입니다.
성전건축이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했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좋은 성전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도 축복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도 축복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좋은 성전을 가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있는 이런 비뚤어진 것들을 깨끗하지 않고는 건강한 교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몸속의 혈관속에 온갖 찌꺼기가 잔뜩 끼어 있는데 몸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몸이 건강하려고 하면 혈관이 깨끗해야 하듯이
건강한 교회생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 속에 있는 병들어 있는 양심들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목사에게 가장 치명적인 욕은 ‘삯꾼목사’라는 말입니다.
삯꾼은 돈을 바라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젊은 전도사님들이나 목사님들은 교회에 가기 전에 사례비가 얼마인가를 먼저 확입니다.
학교도 다니고, 자녀도 키우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돈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일 하면서 평신도로 일을 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할때는 모든 생계는 하나님께 맡기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목사님들은 성도들이 가져다 주는 쌀을 받아서 생활을 했습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과거에 차가 없을 때는 걸어서 교회에 왔습니다.
눈을 맞으며, 비바람을 맞으면 논두렁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선풍기도 없고, 난로도 없었습니다.
여름에는 땀을 철철 흘리면서,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요즘은 몇발자국 걷는 것도 귀찮아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바른정신’이라는 것은 모든일에 근본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이전에 센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아시아나항공 사고’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세월호에서는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탈출을 했지만.
아시아나항공사고에서는 기장과 승무원들이 맨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다른 승무원이 위험한 지경에 있는데도 승객들을 다 대피시킨 후에 승무원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기장들은 모두가 다 빠져 나온 후에도 불타고 있는 비행기안에 다시 들어가서 남은 사람이 있는가 확인을 했습니다.

같은 한국 사람들인데도 왜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아마 비행기 승무원과 배의 승무원은 자긍심에서 다르기 때문이 아니가 생각이 듭니다.
비행기 승무원들은 최고의 직업이라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맞게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배고파도 배고픈 기색을 하지 말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기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 가치를 믿는 사람에게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 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복음의 능력’도 온전히 나타 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 ‘복음’을 우리가 온전히 믿고 선포 함으로 이 시대에도 복음의 능력이 온 세상에 보여 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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