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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사람(4) 인내

성령의 사람(4) 인내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캐논’이라고 합니다.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알아야 ‘성경’을 읽어도 바르게 읽고, 바르게 깨달을수 있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나에 대해서 기록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왜 중요하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말씀입니다.

●다르게 표현을 하자면 ‘성경’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원’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관계’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무엇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까?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깨어지게 됩니다.
‘관계’는 ‘연결고리’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맺어 주는 ‘연결고리’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맺어 주는 ‘연결고리’ 그것이 ‘관계’입니다.

●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관계’가 깨어 졌다는 말입니다.
‘죽음’은 육체로부터 분리되고, ‘육체’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면 ‘영혼’은 ‘죽음’이후에 ‘지옥’으로 가든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은 ‘죄’로 인해서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은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 줄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은 관계의 회복이다’ 라는 것을 이해하고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은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부자’가 되고,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나 ‘부자되세요’ ‘대박나세요’ 하면 다 통하는 인사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부자 되세요’ ‘대박나세요’ 그렇게 인사하지 않습니다. God bless you.. 라고 자주 말하지만 ‘bless’라는 말이 ‘부자 되라는’말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부자 되라’ ‘대박 나라’ 하고 말하면 이상하게 바라 볼 것입니다.

한국처럼 유치원에서부터 과외를 시작해서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 공부를 많이 하는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전쟁’을 하듯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부자되고’ ‘대박 나는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어려서부터 뼈속 깊이 새겨져 있는 ‘부자되고, 대박을 바라는 마음’이 쉽게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약속하셨고 그리고 ‘솔로몬왕’에게는 어떤 사람보다 더 큰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게 하시기도 하셨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계신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십계명’도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도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율법중에 가장 크고 첫 번째 되는 계명도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가장 큰 축복으로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관계’가 훨씬 더 큰 축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귀영화’보다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면 성경말씀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신앙생활도 바르게 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귀영화’는 사람들의 ‘부러움의대상’은 될수 있으나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귀한 것은 ‘사람’입니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열매’ ‘사랑, 희락, 화평..’ 그리고 ‘오래 참음’ 역시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지는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음’의 원문의 의미는 ‘길다’라는 의미의 ‘마크로스’와 ‘마음과 감정’을 의미하는 ‘뒤모스’의 합성어입니다.
‘마음과 감정’을 오래 참는다는 의미입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것 중의 하나가 참는 것일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참지를 못합니다. 오래 참을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인격이 성숙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 참으려고 한두번 노력은 합니다. 그런데 오래 참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들면 세 가지를 후회한답니다.
첫째가 더 베풀면서 살지 못한것을 하면서 후회하고
둘째가 더 즐겁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셋째가 더 참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참지 못해서 손해를 본 경험들이 다 있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만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참지 못해서 일을 그르치고 나중에 후회를 하는 경험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항상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귀하고 좋은 것은 언제나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멕도날드에 가면 2,3분에 원하는 음식이 나오지만,
좋은 식당일수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좋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친구’도 ‘오랜 친구’가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래 참을수 있는 능력을 가질수 있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은 (딤후3장) 조급해 지고, 참지를 못할 것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급하며, 참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분쟁이 많아지고, 관계가 깨어지고, 행복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참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얼마나 오래 참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인 것은 오래 참는 것에도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야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볼수 있게 됩니다.
부모의 마음, 아비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식당의 주방장은 음식을 만들 때 어떤 마음으로 만들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입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고 만들것입니다.
그리고 유명해 져서 장사가 잘되는 것이 소망입니다.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겠습니까?
식구들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먼저 ‘건강’을 생각할 것입니다.
‘먹고 건강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것이 식당의 주방장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죄인된 인간을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벧전3: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롬2: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어른이 될 때 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래 참으심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런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고전13장에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제일 먼저 나오는 말씀이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은 한번 택하신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래 참음’은 ‘관계의 열매’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끝까지 좋은 관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 ‘친구관계’ ‘교우관계’ 모든 관계를 오래참고 인내함으로 끝까지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으라’는 것은 ‘분노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분노와 말’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은 ‘관계’에 있습니다.
‘관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인내해야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에 이를수 있습니다.
(히 6: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인내를 통해서 축복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약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입니다.
나를 향해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하나님의 마음’ 때문에 구원을 받고 은혜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면서 살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은 은혜를 감사함으로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받은 크고 적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와 분노’가 많은 사람일수록 인내하지 못합니다. 참지를 못합니다. 쉽게 화를 냅니다.
이미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활화산’처럼 속에 ‘분노’가 이미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이 분노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 원인은 내 안에 있는 분노의 화산이 이민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분노를 없애 버릴수 있는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분노하게 만드는 환경과 사람을 피해 도망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방법이 아닙니다.
어디가나 환경과 사람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씻어 버릴수 있는 능력과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생기는 분노를 씻어 버리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매일 매일 씻어 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제가 ‘분노’해서 씩씩 거리는 것을 보신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가정에서는 아무도 ‘화’를 내고 큰소리 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큰소리 나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나서 ‘큰소리’ 치거나 ‘분노’를 터뜨리지 않은 것은 ‘참을성’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쌓여 있다면 그렇게 참을수 없습니다.
저는 ‘참는 것’이 아니라 ‘분노’할 만큼 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분노’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니까 마음에 ‘분노’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분노’가 터져 나올만큼 쌓여 있지는 않습니다.
병에 물이 반정도만 차 있어도 흔들면 튀어 나옵니다.
그러나 밑바닥에 조금 있으면 웬만큼 흔들어서는 물이 튀어 나오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 ‘분노’가 쌓이지 않는 것은
첫째는 저 자신이 분노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을 정죄할 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감사함과 미안함이 항상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대한 감사함과 우리 교우들에 대한 감사함이 항상 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회중에 우리 교회에 나와 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여러분들의 집에서 우리 교회에 오기 까지 수십개의 교회를 지나서 오셨다는 것에 감사한 것입니다.

셋째는 분노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분노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관계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약1:20)

그래서 저는 참는 것이 아니라 참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 성경읽고 기도하는데 마음에 분노가 쌓일수가 없습니다.
마음속에 ‘성령’님과 ‘분노’가 함께 있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미움’이 같이 마음에 공존할수 없습니다.
‘성령님’과 ‘악한 생각’이 같이 있을수 없습니다.

‘악한 생각’ ‘거짓된 생각’ ‘미움’ ‘분노’ 이런 것은 ‘쓰레기’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런 쓰레기를 왜 ‘마음’에 담아두고 있겠습니까?
보는 즉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거짓말’도 한번 하면 습관이 되어서 ‘무감각’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자기 거짓말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며 거짓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욥 36: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잠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마음속에 분노가 완전히 없을수는 없습니다.
인간인데 그럴수 없습니다.
남아 있는 분노는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원수갚는 것이 내게 속한 것이니 내게 맡기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원수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수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이요, 감정적이기 때문에 누가 옳은지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판단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잘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온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위해서 충성스럽게 일했지만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 했습니다.
죽이려고 좇아 다녔습니다.
다윗은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는 일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만나면 주위사람들에게 하소연 합니다.
누명을 쓰면 그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누명을 쓰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밤잠을 자지 못합니다. 분함을 누르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억울한 일을 만나도 아무소리 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도망 다녔습니다.

다윗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원수를 갚을수 있는 기회가 두 번씩 왔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자기 손으로 원수를 갚았더라고 하면 그는 지금과 같은 위대한 다윗왕이라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기손으로 원수를 갚으면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울을 죽였더라면 다윗의 인격도 사울왕과 같은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함으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7년 흉년의 큰 어려움속에 모든 형제들의 가족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셉을 축복하셨습니다.
요셉의 자녀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한 지파씩 차지하게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한지파씩지만 요셉만 두지파를 가지게 됩니다.

참는 사람은 그 인격이 빛나게 되지만, 참지 못하는 사람은 그 인격이 깍이게 되는 것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앞에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오래동안 참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참아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계속 실수를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인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온갖 모욕과 고통을 한몸에 밭으셨습니다. 제자의 배신도 받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인격은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금만 섭섭해도 시험이 듭니다.
조그만 것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일만달란트나 되는 죄를 용서 받고도, 다른 사람의 적은 잘못도 용서해 주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를 생각하며 참아야 합니다.

둘째로, 소망 가운데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 하셨습니다.
아무리 현재가 어려워도 보장된 미래가 있으면 얼마든지 참을수 있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참을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셨습니다.

(롬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현재 어려운 일들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보장된 밝은 내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오른팔로 너를 붙잡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삶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내’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인내할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기도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인내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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