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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 (28) ‘자유하리라’

복음이야기 (28) ‘자유하리라’ 롬6:15-18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인류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게도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쁜 소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 보면 기뻤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원하던 학교를 입학했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원하던 사람과 결혼을 할 때 얼마나 기쁩니까?
자녀를 가졌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자동차 운전 면허를 땄을 때도 기뻤었지요..
새자동차를 구입할때도 기쁘고.. 좋은 선물을 받을때도 기쁘지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을 얻었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과거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수많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기쁨은 사라져 버리고.. 내 인생에는 기쁜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처럼, 갈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했던 기쁨들은 평생에 한번 밖에 할수 없는 일들 이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구원을 얻은 기쁨도.. 모두 평생에 한번 밖에 경험할수 없는 소중한 기쁨들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기쁨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기쁨은 여전히 우리속에 남아서 잠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복된 사람은 이런 소중한 기쁨을 잘 간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소중한 기쁨들을 간수하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아무 기쁨도 없었던 것처럼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미래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소중한 기쁨을 간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결혼식 사진부터, 아이들 돌 때 사진, 졸업사진, 여행사진.. 이런 사진들을 걸어 놓는 이유는 기뻤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국가들마다 국경일을 정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을 잊어 버리지 않고 계속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몇일전이 8월 15일 광복절 이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다시 찾은 날입니다.
5천년 역사 가운데 수없이 외침을 당하고, 중국에서 억압을 당한 때도 있었지만 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때는 일제 36년 한번밖에 없었습니다. 5천년 한반도 역사중에 가장 치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만약에 해방이 되지 못하고 몇십년만 더 갔더라면 우리들은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여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일본여권을 가지고 미국에 와야 했을 것입니다.
Korean American 이 아니라 Japanese American 으로 분류가 되었을 것입니다.

1945.8.15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한국인으로 살수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사람들에게는 8.15일이 제일 큰 국경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7.4 독립기념일이 가장 큰 국경일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제일 큰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애급에서 400년 종살이 하다 모세와 더불어 출애급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9가지 재앙을 격으면서도 애급 바로왕은 이스라엘이 출애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10번째 재앙에 애급의 모든 가정의 장자가 한날에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바로왕은 완전히 항복을 하고 출애급을 허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400년 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급을 탈출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땅으로 갈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서 유월절절기를 가장 성대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마다 독립한 날을 가장 큰 기념일로 정하는 이유입니다.
첫째,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둘째, 힘이 없으면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셋째, 분열하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 제일 큰 고통은 자유를 잃어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권리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언론과 출판과 결사와 집회의 자유가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한 나라에서 법으로 보장을 해 줍니다.

그런데 한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유인데 그 자유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면 행복해야 할텐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내가 원했던 것을 얻으면 행복해야 되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그것은 아직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자유는 얻었지만 정신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고, 영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갈등과 고통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육적인 자유는 얻었지만 죄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떤 사람도 그 죄의 뿌리를 뽑아 낼수가 없습니다.
죄에서 자유할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심장을 통해서 온 몸 구석구석에 피가 뻗어 나가듯이, 죄는 인간의 모든 것속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속에 있는 죄의 뿌리인 것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암이 퍼져 사망에 이르듯이 자기 자신 속에서 퍼지는 죄가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이 죄의 권세를 끊어 버리는 권세입니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할수 없는.. 불가능한 그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자유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순간에 우리의 영혼 깊숙이 박혀서 도저히 분리 할래야 할수 없는 죄의 권세를 분리해서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받아 새사람 되는 것 입니다.
온 몸에 퍼져 있는 암덩어리가 다 사라지듯이, 우리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권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쁜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서부터 해방이 되고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 우리 영혼이 벗어 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그런데 문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은 크리스챤들이 여전히 갈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세상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최고의 시대에 최고의 나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가 어디에 있습니까?
좋은 찬양팀에 좋은 찬양대에 그리고
좋은 성도들과 함께 이 보다 좋은 예배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 자유, 오 자유,.. 나는 자유하리라..’
이런 찬양을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왜 평안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도 무엇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었으면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하고, 갈등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 계속해서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우리가 육신의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완전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는 어떤 갈등도 고통도 없습니다. 완전한 기쁨과 환전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여전히 죄가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와 사탄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죄의식이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의 후유증이 있고,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죄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를 받았지만 과거의 죄의 습관과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자신을 괴롭힙니다.

죄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다른 신을 섬겼던 죄입니다.
한국에 카톨릭 교황이 와서 한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교황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성경의 기본인 십계명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No other god..
둘째, 너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
No idle..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No misuse God’s name
넷째, 안식일을 기념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Keep the sabbath holy.
십계명의 처음 4계명은 하나님의 법의 기본입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났다가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버선발로 뛰어나갔다가 그를 맞았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우리가 볼때는 다윗이 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앞에는 인간적인 결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보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인간을 섬기느냐?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장 큰 회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외에 다른 신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는 일입니다.

경건생활을 해치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돌아 왔지만 여전히 죄의 습관은 남아 있습니다. 미워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화를 내고, 욕망과 탐심과 게으름… 이런 습관들이 남아 있습니다.
경건생활을 방해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죄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매일 매일 말씀과 기도생활을 하는 것은 경건생활을 방해하는 죄들을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죄들은 우리들의 행복과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 갑니다.

둘째. 마음의 상처들이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사람들 마다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이것을 건드리면 폭발하게 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그의 삶을 짓누릅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좋지 않게 작용을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오해부터 먼저 합니다.
‘자라보고 놀란 사람은 솥뚜껑만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는 것과 같이 적은 일에도 쉽게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많은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셋째. 성공에 대한 집착이 자유를 빼앗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병이 성공병이라고 합니다. 이 성공병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사는지 모릅니다.
성공을 향한 갈망이 사람을 발전하게도 하지만 잘못된 성공병은 사람을 병들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성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마음의 자유를 빼앗아 가버립니다.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 마음은 좋지만 과도한 욕망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잘하려고 하는 열심은 좋은 것이지만 과도한 열심은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싶어하고, 찬양대가 찬양을 잘하고 싶어 하고, 봉사하시는 분은 일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도 과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넷째. 미움, 시기, 경쟁이 자유를 빼앗습니다.
이것들도 우리의 마음에 자유를 빼앗아 가는 큰 요소들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소화도 안됩니다.
경쟁하는 마음이 있으면 피가 말릅니다.
미움, 시기, 경쟁심은 인간의 마음의 자유를 빼앗가 가는데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가인은 자기동생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사울은 충성스러운 부하 다윗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 외에도 인간의 마음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로와 지면 분명 행복할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그런 힘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이길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이런 악한 마음들을 이길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이 힘을 가져야 자유함을 가질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자유를 얻을수 있겠습니까?

(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우리는 이 말씀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알수가 있습니다.
자유는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기전에 우리는 이 자유를 가지고 나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 자유를 죄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이제는 그 자유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자유를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죄의 종이 었지만, 이제는 사랑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2:20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종은 주인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being’의 의미입니다.
존재의 의미입니다.

사랑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용서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여기에서 만들어 집니다.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일만명의 스승은 있지만 아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적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아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

아비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사랑의 종이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자유를 주를 위해서 써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유할수 있었으나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 역시 자유할수 있으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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