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야기(36)내 집을 채우라

복음이야기(35) ‘쉬고 싶으십니까?’
January 7, 2024
복음이야기(36) ‘내 집을 채우라 ’
January 7, 2024
복음이야기(35) ‘쉬고 싶으십니까?’
January 7, 2024
복음이야기(36) ‘내 집을 채우라 ’
January 7, 2024

복음이야기(36)내 집을 채우라

복음이야기(36) ‘내 집을 채우라 ’
(눅 14:16-24)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요즘 경제는 세계가 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비상이고, 일본은 일본대로 비상입니다. 숫자가 올라가고 내려 가고에 온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매일 매일 다우죤스가 발표됩니다. 주식이 발표됩니다.
매일 매일 중계하는 프로 스포츠 경기에도 점수의 통계에 따라 순위가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은 숫자의 지배를 받고 산다고 해도 전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숫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도 점수에 따라 울고 웃습니다. 사업도 숫자에 따라 달라 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한가 하고 질이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알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역시 숫자가 중요 합니다.

성경에도 숫자를 아주 중요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숫자 자체가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에 많은 부분에 숫자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교회들이 비상이 걸렸습니다.
개별적으로는 성장하는 교회들도 많지만 전체 평균적으로 보면 모든 나라들의 교인의 숫자가 줄어 들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숫자가 줄어 들고있고, 한때 세계 역사이래 없었던 최고의 성장을 자랑했던 한국교회도 숫자가 줄어 들면서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 원인 분석을 하느라고 야단 들입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모슬렘이 급격히 늘어 가고 있습니다.
많은 흑인들이 모슬렘으로 귀화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경제가 부흥하고 퇴보하는 것도 숫자에 의해서 평가가 되듯이, 교회역시 부흥과 퇴보가 숫자에 의해서 평가가 되는 것입니다.

숫자가 늘어가면 잘되는 것이고, 숫자가 줄어 들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는 성도의 숫자는 반드시 늘어 나야 합니다. 늘어나지 않으면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 입니다.
세상인구는 매년 늘고 있는데 교인의 숫자는 제자리 하고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퇴보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가진 모임입니다.
생명을 가진 것은 반드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성장이 멈추게 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끝없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그것이 건강한 교회요, 생명력이 왕성한 교회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숫자적인 성장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숫자적인 성장을 하지 않으면 죽어 간다는 증거 입니다.
이 숫자적인 성장을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강권해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내집을 채우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사람들을 데려 오라는 것이 아니라 강권해서 데려오라는 말씀입니다.

강권이라는 말은 영어로 compel 이라는 말입니다.
이말의 의미는 첫째는 힘이나, 폭력을 써서 가지는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두번째는 저항할수 없는 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전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힘을 써서라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데려 오는 것입니다.
저항할수 없는 길을 만들어서 데려 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강권해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합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어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까지 우리를 강권했습니다.
이 사랑을 체험한 사도 바울을 말하기를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성령님까지 우리 마음속에 임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만듭니다.
성부,성자,성신이 총동원이 되어서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총동원전도는 인간이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성삼위가 총동원이 되어서 창세때 부터 하고 있는 운동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사람들을 데려 오라고 말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천국 잔칠르 벌여 놓고 모든 사람들을 초청했더니 모두 육신의 일에 바빠서 왜면하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땅을 사서 못온다. 결혼을 해서 못온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잔치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음식을 마련해 놓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잔치집에 가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 지고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요즘은 워낙 잘먹으니 잔치집에 가도 음식에 대해 관심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 우리가 넉넉치 않던 시절에는 잔치집에 가면 평소에 먹지 못하던 음식들이 있기 때문에 잔치날이 최고의 날이요 기다려 지는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잔치를 벌려 놓고 모든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대인들같이 모두 배가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육적인 배가 불러서 영적인일에 관심들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권해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데려 오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데려 오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핑계를 대고 거절합니다.
한 사람은 밭을 사서 나갈수 없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소를 다섯겨리나 샀으니 갈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장가 들었기 때문에 못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노발대발합니다.
‘불구자라도 데려오라, 가난한 사람들도 데려오라’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잔치에 왔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교회에 먼저 나오기 시작한 사람들이 다 이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낮은 곳에서 시작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없는 데서 시작하여 있는 데로 나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얼마나 기쁘게 받아들일수 있느냐, 그릇이 준비되어 있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도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주인이 다시 이번에는 사거리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온유하고 겸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부드러운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강할때가 있었습니다. 죄와 싸울때는 강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서도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관한 문제에서도 강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운 예수님이었지만 그러나 영적인 일에 들어가서는 강하고 담대 하셨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에 가면 우리 나라와 같은 국립 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6.25 사변때 우리 나라에 와서 희생당한 미군들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20대의 한창 아름다운 나이에 우리 민족을 위해 희생당한 그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뭉클함을 느끼게 됩니다.

국립 묘지의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그곳에 오면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케네디 대통령의 묘지입니다.
자그마한 비석에 간단하게 그저 ‘케네디묘’라고 쓰여 있지만 일년 내내 가스를 사용하여 등에 불을 켜 놓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게케디를 참 사랑합니다.
온 국민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은 그가 지닌 지도자로서의 매력 때문입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핵기지를 만들려고 할때 케네디는 강력하게 버텨서 그것을 기어이 철수시켜 버렸습니다.
지도자는 강한면과 약한면 두 가지를 다 갖추어야 합니다.
강해야 할때는 강해야 하고, 약해야 할때는 약해야 합니다.

사람은 너무 강하기만 해서도 안되고 너무 순하기만 해서도 안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안됩니다.
쓸데 없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벌컥내고, 큰 소리 치는 사람은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강할때는 강하고 담대하고 굳세고 능력 있지만 또 순할때는 한없이 순종하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모세나 다윗에게는 이 양면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일을 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양이라고 말합니다.
양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지킬힘이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 성도에게 목자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또 성도를 군사라고 했습니다. 군사는 강한것이 특징입니다.
한국의 데모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경찰들이 쩔쩔매는 데모 입니다.
그런데도 군인들 앞에는 쩔쩔 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군인은 사정을 보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인이 나가면 벌써 기가 팍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는 양과 같은 면과 그리고 군사와 같은 양면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베풀어야 할때는 양과 같아야 하고,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울때는 군사와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것이 바뀐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앞에서는 양과 같이 아무소리 못하고 있다가, 사랑을 베풀어야 할 장소에 와서는 군사와 같이 싸나와 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양과 같아야 하고, 세상앞에서는 군사와 같이 담대 해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는 양과 같이 부드러워야 하고 세상에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전도하는 일에는 군사 같아야 합니다.
사정을 보아주고 눈치를 보다가는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아주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강권해야 합니다.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하나님앞으로 데려 와야 합니다.

강권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예수께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말을 제일 싫어 합니다.
예수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이기주의 라고 합니다.
그러나 좋던 싫던, 믿던 믿지 않던 그것은 사실 인것을 어떻게 합니까
죄인된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은 예수를 믿는 길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천국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길이 있으면 그 사람들 듣기 좋게 아무거나 믿어도 천국갑니다. 꼭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괞찮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도 편하지요

천국이 없고, 지옥이 없다면 이렇게 시간낭비하며 주일날 쉬지도 못하고 교회에 나올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 편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다면 마음 편한 방법은 교회가 아니라고 많이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교회에 나온다면 교회가 아니라도 자녀교육에 유익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것 외에도 다른 방법들이 있다면 억지로 전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전도하고, 기도하고, 강권해서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만이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라’ (행4:12)

‘스텐리 죤스’는 말하기를 ‘예수님은 인류를 둘로 나누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 한번 태어난 사람과 두번 태어난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육적으로만 태어난 사람은 죽습니다. 육적인 첫번째 탄생을 어머니로 부터 이루어 집니다. 육적인 태어남은 이땅에서의 육신의 생활을 할때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두번 태어 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가는 곳 천국은 육체의 세계가 아닙니다. 영적인 세계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가는 사람은 영적인 태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영적인 태어남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믿을때 두번째 태어남인 영적인 태어남이 이루어 지게 되는것입니다.

이자리에 계신분 중에서 아직 두번째 태어남인 영적인 태어남을 경험하지 못하신분들은 이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 바랍니다. 믿어 지지 않으시는 분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도 영적으로 태어 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이시여 이시간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나를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두번째 태어나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안에는 풍성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천국은 잔치입니다.
교회도 잔치집입니다. 기쁨이 없는 사람이 와서 기쁨을 얻는 잔치집입니다.
잔치에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풍성함이 있기 때문에 모두 이 잔치에 참석하면 신령한 갖가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회가 잔치집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제일 처음 기적을 행했던 곳도 가나 혼인잔치였으며, 또 예수님의 비유가운데도 잔치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특별히 혼인 잔치 비유는 여러번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잔치하는 집에 여러번 가셨습니다.
교회는 잔치집입니다.
잔치집에 아내가 다녀오면 아내가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갔다 오는 사람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기쁨을 얻어 오고, 평안을 얻어 옵니다.
자녀들이 교회에 다녀오면 그 부모가 영향을 받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는 친구를 만나면 좋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는 성도를 만나면 함께 은혜를 받습니다. 무엇을 얻어 먹어도 얻어 먹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사람과 만나 보십시오, 무슨 손해를 보든지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옆에 가면 같이 손해를 보게 됩니다.
당시는 즐거운 것 같지만 지내놓고 보면 시간을 빼앗기든지, 건강을 빼앗기든지, 나쁜 습관을 배우든지 하여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는 성도들은 무엇이든지 거룩한 것을 받아 오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다 은혜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위로를 받고 살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이 있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로 부터 해방을 받을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기본이 천국입니다.
최고로 안된다고 해도 천국은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잘못될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으로 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는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대로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보장해 주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세상에서는 주식에 잘못 투자를 해서 하루 아침에 재산을 날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투자하는 것은 금생과 내생 에 축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세번째, 전도 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복음은 적극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강권해야 합니다.
투자해야 합니다. 입만으로 잘되지 않습니다.
말로 되면 좋지만 입으로 안 될때는 몸을 바치든지 물질을 바치든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눈물을 바치고 피와 땀을 쏟을 때 한 영혼을 구원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복음전파를 위해서 갖가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동차 개스와 같습니다. 기름은 목적이 아닙니다. 자동차가 어느 곳으로 가가까지, 그 목적지 까지 가는데 필요한 발과 같은 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의 발은 기름이지 타이어가 아닙니다.
기름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타이어가 좋고 부품이 좋아도 기름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갈때는 꼭 기름을 확인을 합니다.
어느 정도 기름을 넣어야 되겠다는 것을 가늠합니다.
자동차의 기름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물질의 기름을 주시고,
기업의 기름을 주시고, 건강의 기름을 부어 주시고, 가정의 행복의 기름을, 은혜의 기름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귀한 것입니다.
카네기, 록펠러를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닙니다. 현재도 그만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나 록펠러 만큼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돈을 바르게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카네기는 교회에 올겐을 6,000 개를 기증했습니다.
학교에 기증한 것도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병원에 기증한것도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기타 사회단체에 기증한것도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교회를 위해 ,학교를 위해, 병원을 위해, 사회를 위해 쓴돈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록펠러도 마찬가지 입니다.
뉴욕에 가면 록펠러가 지은 리버사이드 교회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바른 곳에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오나시스’ 같은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물질을 가졌어도 바르게 쓰지 못하고 자기 정욕을 위해 썼기 때문에 사람들로 부터 존경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주실 때 잘쓰시기 바랍니다.
내 가정에 기륾을 부어 주실때 잘 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하면 여러분의 자자 손손이 하나님앞에 큰 영광이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나에게 주신 모든 재능,물질,은혜 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을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복음전파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제일 확실한 투자입니다.

인류 역사를 위해서 어떤 사람이 큰일을 했습니까?
복음 전파를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건지는 일은 긴급한 일이요, 귀한 일입니다.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일 지라도 하면 복이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병은 혼자 치료하지 못합니다.
강한 사탄의 무리가 놓아 주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는 것은 누군가 우리를 위해 기도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인도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인내하고 물질을 썼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주위에 강권적으로 매달렸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천국 시민이 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하라 ’는 말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전도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강권해서 데려 오라’는 말씀입니다. ‘내 집을 채우라’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랑하라’입니다.
둘째는 ‘전도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가르쳐라’ ‘세례를 주라’ 하는 지상최대의 명령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지상최대의 명령입니다.

중국의 ‘마마강’이라는 분이 쓰신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중국 문화혁명이 났을때 살던 분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천안문 광장에 나가 공공연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 여인은 당국으로부터 소환을 당해 구속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조사를 하는 사람이 다그치며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지금까지 지은죄를 다 자백하라’ 그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저의 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성경 창세기 부터 말라기 까지의 죄를 모두 지었습니다’ 그 조사하는 사람이 성경을 읽어 본일이 없으니 창세기는 무어고, 말라기는 무엇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부터 말라기까지의 죄를 지었다니 그것이 무슨소리냐? 마마광 여인은 창세기 부터 말라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자기의 죄라고 말합니다.
이 여인은 지금 자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사관들은 조서를 꾸며야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일주일에 거쳐 창세기 부터 말라기 까지의 죄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끝났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닙니다, 저의 죄는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의 죄가 남았습니다. 이것이 더 중요한 죄입니다’ 그러면서 신약성경을 인용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성경이야기를 들으며 조서를 꾸미던 조사관이 그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최고책임자로 부터 불려가서 또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자리에서도 자기와 함께한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저는 암에 걸려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 기도했더니 암이 완전히 고쳐 졌습니다.
의심이 나면 병원에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증을 들은 책임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책임자는 병원에 가서 기록을 확인했더니 정말 암 말기 환자 였는데 기적같이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그날밤 이 책임자는 자기 부인에게 그러한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부인도 암으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병을 앓고 있던 부인은 그 말을 듣고 비밀 스럽게 그여인을 데려다가 안수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그 여인도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 마마광 여사는 복음을 전하며 감옥을 집 드나들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감옥에 들어가면 감옥이 바뀌는 것입니다.
가는곳 마다 생명의 역사가 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강권해서 내 집을 채우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부흥의 꿈을 다시 회복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