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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야기(40) 완전한 구원

복음이야기(40) 완전한 구원 로마서8:28-3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축구가 잘하고 있습니다.
한국축구가 아시아에서는 큰 소리 치지만 월드컵에서는 잘해야 16강입니다. 한국에서 월드컵을 할때 4강에 올라간 것은 기적중에 기적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월드컵 축구가 시작되면 한국사람들은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월드컵 본선에 나가는 국가 중에 제일 실력이 모자라는 팀중에 하나가 되고 우승은 꿈도 못꾸고,,한번이라도 이겨보는게 유일한 소원입니다.
온 국민이 밤을 새며 단 한번 만이라도 이겨 달라는 슬픈 소망을 가지고 응원을 합니다.
어떤 때는 밤 1시에 시합을 하고, 어떤 때는 새벽 4시에 시합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승리를 지켜 보아야 하는 한국국민들에게는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승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그 승리가 보장이 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왜 최고의 축복 이겠습니까?
승리가 확실하게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승리는 잠깐이요 그 순간 뿐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최고의 승리, 영원한 승리’입니다.
‘완벽한 승리’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리 죽을 써도 끝에는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는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이고, 모순 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모순적인 이야기를 ‘은혜’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 70년대 서유석이란 가수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 가사중에 크리스챤을 조롱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6일동안 죄를 짓고요 하루만 기도하면 천당에 간데요..라꿍따라 라라,,’ 저도 기타치면서 자주 불렀던 노래입니다.
크리스챤들이 세상에서는 안믿는 사람들과 똑 같이 살면서 다른 것이라고는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것 밖에 없는데 자신들은 천국에 간다고 하니까.. 비꼬아서 조롱하는 가사입니다.

‘6일동안 죄짓고 하루 기도하면 천국간다’는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드러나는 죄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 ‘죄’는 더ㅗ 많습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도 많고, 해야 할 일을 안하는 ‘죄’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했을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해야 하는 일을 안하는 것 역시 ‘죄’라고 말하고,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으로 짓는 ‘죄’ 역시 ‘죄’라고 말합니다.
기도 안하는 것도 ‘죄’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것도 ‘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교 한다면 인간은 일주일에 6일이 아니라 7일 동안 매일 같이 죄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에 비교 한다면 구원 받을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천국에 갈수 있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이 죄 지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잘해서, 칭찬 받을 만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하나님이 사랑이 크시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무엇이 다른가?
첫째, 나는 죄인이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둘째, 죄의 값은 심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셋째, 우리 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죄 값을 치루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고, 구원을 믿기 때문에 죄를 안지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는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끄러운 죄인이지만 매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올수 있는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앞에 예배하러 나오셨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승리하신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재산을 세상에서 허랑 방탕하면서 다 탕진하고 말았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길 때 그에게 회복의 길이 열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챤들을 조롱합니다.
일주일 동안 죄 짓고 주일에 예배하는 것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죄를 짓고도 아버지 앞에 나올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버지 집으로 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자식이 죄를 지으면 집에 안들어 왔으면 좋겠습니까?
아니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집에 돌아 오기를 원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욕하는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해도 부모는 자식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우리 보다 더 크신 마음입니다.
만신창이가 되어도 돌아 오기만 하면 언제나 받아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교회에서 너무 하나님의 사랑만 강조하다 보니까 성도들이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강조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구약에 율법은 얼마나 엄했습니까?
그렇게 엄했지만 이스라엘은 틈만 나면 죄를 지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엄하게 키운다고 해서 자녀가 잘 자라는것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엄격하게 키우면 자녀들은 부모품을 벗어 날만을 기다리다가 더 많은 문제 속에 빠져 버립니다.

우리 늘 부족하지만 주일 마다 하나님 앞에 나올수 있는 것이 축복이요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짓고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이 뻔뻔한 것이 아닙니다.
나오지 못하는 것이 더 잘못하는 것입니다.
나올수 없는 것이 더 불행한 것입니다.

● 인간이 할수 있는 일 가운데서 제일 잘하는 일은 하나님앞에 나오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일 가운데서 제일 잘하는 일은 주일을 지키고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전도하는 일입니다.

(시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중에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보다 여러분들을 더 사랑하시는 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허물과 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잘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부터는 그런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도 ‘완전한 구원’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신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찿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 달라고 사람들이 요구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그것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죽음의 세포가 자라고 있던 우리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영생의 생명이 심어진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의 생명은 우리를 영원한 나라, 영원히 죽음이 없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야말로 크고도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감사하고 감격해야할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을 날마다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되면 그 구원이 ‘확인’ 되는 것입니다.

신학자들 중에는 그것은 ‘완성된다’라고 표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justification’ 의로워 지는 것이고,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Sanctification’ 성화되어 가는 것이고 , 천국에 가면 ‘glorification’ 영화롭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생각하면 ‘완성된다’ 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완성된다’는 표현보다 ‘확인된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완성된다’는 표현은 마치 지금의 구원이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오해 할수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완성했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들어 갔을 때 우리가 평생 믿은 것이 진짜 였구나 확인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도 틀림이 없이 맞았구나 하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완성된다는 표현보다 ‘확인된다’라는 표현이 더 좋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원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즉흥적으로, 내키는 대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계획과 섭리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믿게 되었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첫째, ‘미리 아신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어떤 행동을 아셨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착하고 의로운 행동을 할 것을 아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위한 조건으로 나의 선이나 공로가 될 만한 무엇을 미리 알고 계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될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나의 공로가 될것입니다.

아셨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자기 자녀로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전지전능입니다.
‘인간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르지만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일하십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둘째, 미리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는 내 자녀다 하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사43:1) 야곱아…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엡1:4 을 보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나고 못나고,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아무 조건없이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선택했습니까? 하고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단지 ‘내가 좋아서 그랫다’ 이것이 그분께서 들려 주시는 유일한 대답입니다.
그 이유를 알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를 알수 없는 선택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어느분은 이야기 하는 중에 자녀를 실수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리고 자존감도 엄청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사생아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바람을 피워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지우려고 몇 번이나 했지만 지워지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태어난 자녀들도 있습니다.
성폭행의 피해로 태어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태어 났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고 우리가 이땅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실수로 태어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속에 태어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실수로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하늘에서 돌을 던졌는데 우연히 지나가다 맞은 것 아닙니다. ‘지명하여 부르셨다’고 하셨습니다.
계획하시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초대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그래서 복음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셋째,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믿도록 이끄신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에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나온 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찿아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친구를 통해서 불러 주셨고, 이웃을 통해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셧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끔 우리의 마음을 끌어 주신것입니다.

저처럼 미국에 와서 예수를 믿게 되신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절대 교회에 나가지 않으실 분들인데 미국에 와서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를 믿게 되신 분들입니다.

저도 내 인생에 교회 나가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미국에 올 때 교회에 나가게 되리라는 것은 저의 계획속에 0.00001%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그 다음 주에 바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 이런일이..’ 저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십년공부 나무아미 타불’ 이라고 한 것처럼 정말 말 그대로 미국에 오기 위해서 고등학교때부터 준비한게 나무아미 타불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에 오는 비행기 타기 전에는 교회가 무엇인지 장로, 집사라는 말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제 주위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미국에 가서 성공해야 겠다는 그 꿈.. 하나를 붙잡고 왔는데.. 미국에 와서는 그 다음 주에 바로 교회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한주간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최고로 멋있어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니까
‘디자인’공부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모두 미친놈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창조적인 디자인을 하려면 생활자체가 비정상적이고 비딱해야 창조적인 것들이 나올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장 정상적인 삶을 요구합니다.
은혜를 받으니 갈등이 생겼습니다. 교회를 안나가든지, 학교를 안다니든지 해야지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서는 디자인 공부를 하기 힘들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디자인 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어렵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부르시다 보니 그게 타협이 안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습니까?
일생의 꿈과 부모 형제와 친구와 인생을 바꾸어 놓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강권적입니다.
인간이 거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부르심을 받아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넷째, ‘의롭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앞에 의로와 질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것입니다.
인간의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앞에는 대낮에 촛불과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서 의롭다 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마치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같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영원하고 완전한 한 속죄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스는 이것을 말씀해 주시는 책입니다.
7장에 멜기세덱 그리스도
8장에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 중보자 이시고
9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완전하고
10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영원하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다섯째, ‘영화롭게 하신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육체에 거하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영화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옛날 왕들을 보면 최고의 화려한 옷을 입고, 금은 보화로 치장을 하고 자신은 마치 다른 인간과는 특별한 인간인 것처럼 행동을 해도 추한 인간일 뿐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죽은 송장에 옷을 입혀 놓았을 뿐입니다.

인간에게는 영화라는 말을 감히 사용할수 가 없습니다.
영화로우신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빛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질병도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완전한 평화, 환전한 기쁨, 완전한 빛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의 몸도 그렇게 영화롭게 변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세세 토록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그 빛을 바라 볼수 없습니다.
그 빛에 가까이 갈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사람만이 그 빛에 거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그 빛 자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빛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만 그 빛을 그대로 받아서 우리 자신도 빛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화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로 영화롭게 된다는 것 상상할수 없는 영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여러분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구원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경원문에 보면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우리나라 문장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주어를 생략하는 예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는 주어가 반복이 되지 않습니다.
29,30절 말씀을 성경원문대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고,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부르신 그들을 하나님이 의롭다 하셨고,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하나님이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이란 단어를 왜 자꾸 반복해서 말할까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하시고,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구원도 조금도 빈틈이 없이 완전하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남용하면 안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해도 만사형통이다 하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것’ 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좋은일, 나쁜일, 형통, 고난, 복, 불행, 스스로 행한일, 본의 아니게 당한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일, 오고 가는일, 살고 죽는일 등을 다 포함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선’이라고 하는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일차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선입니다.
이차적으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자리에 이르도록 도움이 되고 영향을 끼친 모든 사건과 경험의 결과를 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온갖 경험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사람이 되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리 만족스럽고 좋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선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우리가 싫어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데 유익한 것이라면 선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내가 병을 앓는 것으로 인하여 예수를 잘 믿게 되었다면 그 병은 물론이고 병을 앓게 됨으로 생긴 모든 결과를 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은 전적으로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한 가지라도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거침돌이 되지않게 하나님이 손을 써서 선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말은 단순히 청함을 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부르심을 받으면 그 사람이 근본부터 바뀝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바로 이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로 말하는 것입니까?
믿음을 시험할수 있는 시금석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를 테스트 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닌가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속일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숨길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어떤 행동으로든지 보여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있을때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직접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꽉 잡힌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빠져 나갈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간섭을 피할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 간섭이 귀찮게 여겨 질때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그 간섭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 간섭이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줍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평생에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신앙은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의 결정입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여호와의 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원과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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