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

믿음의 길(1) “오직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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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

믿음의 길(1) “오직 믿음” 히11:17-26 980315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모세도 믿음으로, 다윗도 믿음으로 .. 모두가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서 용맹하게 이방 사람들을 물리치기도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믿음” 이것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수없이 외쳤던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이 세상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믿음’ 입니다.

 

첫째, 어느 시대이던 신앙인은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홍수가 나고 나면 강물이 흙과 나무와 쓰레기들이 뒤범벅이 됩니다.

유유히 흐른 강이 아니라 급류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런 혼탁한 급류속에 아슬아슬 하

게 배를 타고 가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많은 정신적인 고통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져도 믿음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 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혼의 구원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도 급류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승리할수 있는 축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감자부대를 지고 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마차 한대가 그 옆을 지나 가다가 그 사람이 힘들게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마차를 세우고 그 사람을 태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보니 옆에 탄 사람이 무거운 감자부대를 지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마차주인은 이상해서 묻습니다.

무거운 감자를 왜 껴안고 있습니까? 바닥에 내려 놓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겸연쩍어 하면서 마차 태워 준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찌 감자까지 바닥에 놓을수 있겠습니까?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 이지만 신앙생활하는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태워주시는 천국열차에 올라 타고도 무거운 짐은 여전히 껴안고 가고 있을때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은혜는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일상생활의 짐은 그대로 자기가 껴안고 힘들게 살때가 많습니다.

천국열차를 타신 분들은 자신의 짐까지도 내려놓고 자유함을 얻어야 합니다.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현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무슨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말입니다.

전문가들 조차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할수 없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변화’라는 것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살던 집에서 아버지가 살고 아버지가 살던 집에서 아들이 살았습니다.

집이라고 하는 것은 기와집 아니면 초가집 두 종류 였습니다.

그 모습이 수천년동안 내려왔습니다.

할아버지가 쓰던 그릇을 손자가 썼습니다.

그 그릇의 모양이 그대로 였습니다.

할아버지 입던 옷의 모양이 손자 때도 같은 옷입니다.

할아버지가 입던 바지 저고리의 모양이나, 손자가 입는 바지 저고리의 모양이 그대로 였습니다.

 

산업혁명이전인 200년 전까지만 해도 변화는 너무나 느려서 사람들은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빨리 변하기 때문에 무슨 변화가 내일 생길지 모르는 그런 불확성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보면 말세에 모든 것이 빨라진다고 했습니다.

빨라진다는 것은 움직이는 속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차를 타던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던 사람이 비행기를 타서 움직이는 수단이 빨라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움직이는 속도만 빨라진다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움직이는 속도보다 삶의 패턴, 삶의 방법과 가치가 무섭게 빨리 변화되기 때문에 긴장이 되고 펑안을 가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일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평안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제가 청년때 교회버스를 픽업할 때 였습니다.

주로 권사님들을 모시고 버스픽업을 했습니다.

처음에 권사님들이 버스에 오르시면 서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찬송을 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열심히 운전을 하고 가는데 권사님들의 말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조용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를 권사님들이 이야기하다 지쳐서 조용해 졌나 하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너무 빨리 운전을 하니까, 불안해서 말씀들을 안하고 긴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빨라지면 긴장이 오게 되고 불안이 오게 됩니다.

현대 세상은 홍수난뒤에 시뻘건 진흙탕물이 되어 흘러가는 급류와 같습니다.

이러한 급류를 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느때 보다 더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세상의 급류속에서 우리를 붙잡아 주고 평안을 주게 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이 어느때 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입니다.

 

둘째, 의심의 세력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 입니다.

우리의 적은 밖에서 일어나는 파도보다 속에서

일어나는 의심의 파도가 더 무섭습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에덴동산에서 이브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게 만들었던 마귀는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의심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정말 하나님이 있는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은 신빙성이 없어 보이고, 과학자의 말이라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과학자가 하는 말은 추측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정확한 것 처럼 들려 집니다.

 

기도도 해보고, 성경도 읽어 보는데 하나님의 존재는 희미하고 세상은 점점 더 커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흔들리지 않을만큼 확실해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정말 확실해 보이시는 분들은 복받으신 분들입니다.

 

마귀가 제일 잘하는 것은 의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의심을 심어줍니다.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의심을 심어줍니다.

형제와 자매사이에 의심을 넣어 줍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믿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돈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놓습니다.

 

어떤 나무꾼이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아무리 찾아도 도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소년이 수상쩍어 보였습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허둥지둥 달아나는 것 같았고 무언가 숨기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소년을 범인으로 지목한 다음부터 나무꾼은 기쁨을

잃었습니다.자나깨나 소년을 잡을 생각에 늘 초조 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헛간에서 도끼를 발견 했습니다 그제서야 얼마 전 도끼를 헛간에 갖다 놓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다음에 소년을 보니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보일 수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측은 의심을 만들고 의심은 병을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 때문에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생각, 지레짐작으로 추측을해서 혼자서 애태우고, 혼자서 의심하고, 혼자서 미워하고, 혼자서 분노 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보면 자신의 추측이 잘못되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마음만 조린 것입니다.

 

‘킴 휠비’라는 사람은 30년간 소련의 간첩으로 일하면서 영국의 기밀을 소련 비밀경찰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킴 휠비는 “속임수의 황제요 이중간첩의 으뜸”이라고 호칭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즈 신문의 사설은 휠비와 이중간첩들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들이 누설한 정보도 정보지만 그들이 소련에 제공할 가장 큰 공헌은 의심의 독을 퍼뜨려서 동맹국들 사이를 이간시킨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이중간첩 행위로 인해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게 된 것입니다.

누구하나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절대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중간첩임이 밝혀지고 나서는 이제는 누구도 믿을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린것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에 의심의 화살을 쏘아 댑니다.

이런 의심이 생길 때 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설사 속더라도 믿어 주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그 믿음을 어떻게 가질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감자주머니’는 내려놓으면 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 있는 짐은 믿음이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내려 놓을수 있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평화와 자유를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 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까?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원을 보면 ‘부모가 자녀를 돌본다’ 하는 말과 동일어로 쓰여집니다.

다실 말해서 믿음이라는 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

지하고 맏기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받아들이고, 그가 나의 모든 삶을 책임지고, 교육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실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예수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고 받아들일 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첫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자라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일을 긍적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딤전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결과는 좋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눈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지금 좋아보이는 것이 나빠 질수도 있고, 지금 나빠 보이는 것이 좋아질수도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괌에서 추락했을 때입니다.

일가족이 다 죽었는데 한사람만 살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원래는 같이 여행을 가려고 계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가게 생겼습니다.

그 일이 생겼을 때는 좋지 않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좋지 않아 보였던 일이 나중에는 다행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일이 좋은 일로 발전할지, 나쁜 일로 발전할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이 좋은 일로 발전하게 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나쁜일이 생겨도 그렇게 걱정하지 않게 되고, 좋은 일이 생겨도 신중하고 겸손해 질수가 있습니다.

 

믿음는 신뢰하는 것입니다.

‘비록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이 신뢰’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조금 틀려도 아주 틀리지 않는한 가다보면 고쳐질수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일 가지고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면 서로의 믿음이 깨어지게 됩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의심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의심입니다.

의심하면서 좋은 것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이가 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두사람은 무엇이든지 잘했다고 칭찬하는 부부였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집에 있는 살진 소를 팔려고 시장으로 갔습니다.

시장에 가다보니 어떤 사람이 살진 돼지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소와 돼지를 바꾸자고 합니다.

돼지 주인은 이게 왠일니냐 하고 금방 바꾸어 주었습니다.

조금 더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토실토실한 오리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사람은 돼지와 오리를 바꾸었습니다.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사과 한상자를 지고가는데 냄새가 나는 것이 입에서 군침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오리와 그 사과 한상자와 바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가 저물어서 주막에서 하루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사람은 다른 지방에 사는 돈많은 부자였습니다. 그 부자는 사과냄새가 향긋해서 그 사과를 어디서 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자초지정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껄걸 웃으면서 당신 이제 큰일났습니다.

이제 집에 가면 마누라한테 혼날줄 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우리 마누라는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잘했다고 칭찬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부자는 말하기를 ‘지금 까지는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일만은 절대 아닐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 하다가 내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부자는 큰돈을 걸었습니다. 두사람이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마누라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그 아내는 ‘참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과가 먹고 싶었는데 너무 잘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소 한마리보다 몇배나 더 되는 돈을 주고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사는 부부가 있을수 없겠지만, 서로 칭찬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잘했군, 잘했어’ 항상 칭찬해줄수 있는 것이 믿음이요, 신뢰입니다.

잘한일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일도 받아주는 것이 신뢰입니다.

 

셋째, 하나님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의 특징은 부모보다 항상 앞에서 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밖에 나가 보시면 아이들은 항상 부모보다 먼저 가지 뒤에 따라오지 않습니다.

뒤에 따라오는 아이들은 딴짓을 하든지 아니면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가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언제든지 부모 보다 먼저 가려고 합니다.

 

차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 갈때도 먼저 뛰어 들어 갑니다.

길을 건널때도 먼저 뛰어 가고, 집으로 돌아올때도 먼저 뛰어 갑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뛰어 가봐야 결국 부모가 올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먼저 뛰어가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초년생들은 언제나 하나님보다 앞에 갑니다.

그래서 일을 만듭니다.

그리고 죽겠다고 아우성 칩니다.

뛰어 가봐야 결국은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면 쉽겠으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뒤에서 가는 것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보다 한발자국 뒤에서 가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서 성숙해 져야 가능한 일입니다.

 

넷째, 고난을 통해서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욥’은 ‘인간이 겪을수 있는 가장 힘든 고난을 겪었습니다.

동방의 최고 갑부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

다. 우리나라 속담에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만 욥의 경우는 3년이 아니라 3일 먹을것도 없이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거기다가 한날에 자녀들을 몽땅 잃어 버렸습니다.

아내까지 위로는 고사하고 빈정대고 비난합니다.

친구들이 와서 정죄를 합니다.

이런 힘든 고난의 과정을 겪은 다음 욥은 말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듣기만 했다가, 이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눈으로 보여주고, 몸으로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평화와 화평이 있습니다.

평화와 화평이 있어야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겨야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신경이 날카로와 있을때는 만사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평화가 있어야 여유가 생깁니다. 기적이 생깁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기대할수 없는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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