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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마음” (빌2:5-11) 2021030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이시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처럼 높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 나시고 사람이 받아야 할 죄의 댓가를 대신 받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낮아 지시고 복종하시고 죽어 주심으로 인해서 인간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게 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셨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 낮추셨습니까?
말 구유까지 낮추셨습니다.
왜 낮추 셨습니까? 우리를 높이기 위해서 낮추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낮아지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섬기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내가 낮아 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존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비천한 사람’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요, 사랑의 완성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잘나가던 시절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멋있음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존귀하신 분이지만 스스로 종이 되어 주셔서 비천한 신분을 가지시고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가 높아 지는 기분이고 대접받는 기분이 들고 내가 존귀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가까이 하고 자꾸 만나고 싶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내가 비참해 지는 기분이 들고, 기분이 나빠 진다고 하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자랑만하고, 가르치려고 하고, 무시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런 기분이 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네를 만나면 살 맛이 나네. 자네만 만나면 내가 높아지거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높여주는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이십니다. 사람들은 자꾸 끌어 내리려고 하지만 우리를 위로하시고 계속 높여 주시는 분은 우리 주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구유의 천한 자리에 나셨습니까?
‘출신’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금수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출신이 좋은 사람은 으쓱대고, 출신이 약한 사람은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가장 천한 가정을 통해서 태어 나셨으니까.. 출신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또 ‘외모’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것도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모’ 역시도 가장 보잘 것 없었습니다.
[이사야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외모도 볼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붙어 있는 예수님 사진은 예수님의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마치 서양사람인 것처럼 그려 놓았지만 예수님은 중동지역 사람이셨고, 머리도 그렇게 거룩하게 늘어져 있지 않은 곱슬머리였고, 키도 작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외모로는 볼품이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학력’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가방끈이 짧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지혜’에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집’ 한채 없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집한채 없이 떠돌아 다니셨고, 머리 둘곳도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낮은 것을 다 스스로 한몸에 담아 예수를 만나는 사람마다 다 높아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날이 가까워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깁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무릎을 꿇었고 허리를 굽혔으며 자기를 발 밑으로 낮추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비천하게 낮아 지셨기에 죄인인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신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빌립보서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말씀하시고 우리에게도 원하시는 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실때도 하신 말씀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자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자세를 보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이 되려면 복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마음에 담습니다.
은혜도 우리의 마음에 담습니다.
사람의 크기는 마음의 크기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행복도 마음에 있고, 불행도 마음에 있습니다.
성공도 마음에 있고, 실패도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천사인 것은 천사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악마인 것은 악마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의 마음으로 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장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닮는데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말씀에도 ‘너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온유와 겸손’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성경에서 말하는 한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느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나가다가 왜 넘어지고, 시험에 빠지는가? 겸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을 누리는 삶은 오직 겸손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해당이 되는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우주가 존재 하는 한 변하지 않는 것이 이 법칙인 것입니다.

역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한때 세상을 호령하는 권세들이 얼마를 지나지 않아서 다 사라졌습니다.
왜 그렇게 되느냐 겸손을 잃어 버리고 교만해 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겸손이란 말은 영어로 humility입니다.
이 말은 humus, 흙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서 human, 인간이라는 말과, humility 겸손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겸손이란 ‘흙’처럼, ‘먼지’처럼 자신을 낮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흙’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흙’은 제일 천한 것입니다. 제일 흔한 것이 흙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흙에서 만들어 집니다.
모든 곡식과 과일과 채소가 ‘흙’에서 만들어 집니다.
모든 짐승들이 뜯어 먹는 잡초도 ‘흙’에서 만들어 집니다.
‘흙’은 생명입니다.
‘흙’은 가장 천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은 천한곳에 있으면서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것이 흙입니다.
그것이 겸손이고,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이것을 깨달을때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광과 존귀를 누리실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천국은 완전한 아름다움과 완전한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천사들의 찬양속에 살아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입은 옷은 한점의 흠이 없는 완전한 빛의 옷입니다.
그런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얼룩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천한 가정에 오시고, 가장 천한 장소에서 출생을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분이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모욕을 받으시고,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고 고통을 받으면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겸손입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겸손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늘 죄인된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겸손인 것입니다.
죄인이 큰 소리 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나 잘났다 말할것이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너 왜 그 모양이냐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주님의 삶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같이 낮아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요즘 같이 변화 무쌍하고 한치 앞을 알수 없는 이런 시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아진 마음으로 이 시대를 살면 우리는 훌륭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낮은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없는, 하잘 것 없는, 하나님 앞에 가장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 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때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시며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죄인이라는 터 위에 가정을 이룩하면 절대로 그 가정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터 위에 교회를 봉사하면 그 봉사에는 열매가 맺어집니다.
시험 들지 않습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왜 넘어지게 됩니까? 다 내 잘났다. 내가 옳다..나는 의롭다. 여기에서 문제가 오는 것이지 ‘나는 죄인이다’고 생각하고 십자가의 은혜 아래 겸손해 지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이 세상은 마귀의 무리가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 시키고 멸망시키고자
잠시도 쉬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도 마귀는 꿈속에 까지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금식기도하는 곳에도 마귀는 찾아와서 예수님을 넘어 뜨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곳곳에 방해자들이 있고, 곳곳에 생각도 못한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정글을 헤쳐 나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우리에게 최선의 길은 최고의 승리자, 위대한 승리자이신 주님을 본받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이야 말로 최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이래 예수님보다 위대한 일을 하신 분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위대한 일들을 다 합한 것 보다 예수님은 더위대한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럽을 변화 시켜서 지난 2천년의 역사를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세계4대 문명은 아시아 였습니다.
북쪽의 유럽은 흉폭하고 난폭한 민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유럽으로 발길을 향하면서 유럽은 복음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후 2천년동안 유럽은 예술과 과학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지배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요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이래 최고의 강대한 나라인 미국이 계속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가장 큰 위기는 우방들의 존경을 잃어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재 미국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교만인 것입니다.
겸손을 잃어 버렸습니다.
지난번에 9.11 사태가 나고 나서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서 미국의 편에 서든지, 테러범들의 편에 서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참으로 교만한 말입니다.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 부치 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미국을 두려워한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방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미국이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겸손을 회복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회복이 되지만, 겸손을 회복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고 세상을 통치 할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교만해서 약자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양쪽다 똑 같이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는 뉴져지 허드슨 강 옆에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은 미국의 육군의 지휘관이 될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입니다.
이 학교에서는 뛰어난 학업성적, 기술, 체력 그 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올바른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지휘관이 될 사람은 마음이 바로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외출했다가 열 시에 들어와야 되는데 열 시에 못 들어오고 한 오분 늦을 것 같아서 룸메이트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내가 오분 늦으니까 연락이 오면 왔다고 해라 그리고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말 한마디가 퇴학당한 것입니다. 그런 정신으로는 지도자가 될 수 없고, 국가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학교 였는데 작년에는 몇십명이 단체로 시험에 컨닝을 하다 걸렸습니다.
미국의 정신이라고 하는 육군사관학교도 이렇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누가 곁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위기가 크다고 하더라도 그 위기를 능히 관리할수 있는 분이 곁에 있다면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닌 것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항상 함께 한다면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 인생길에 누가 곁에 있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나의 인생길에 누가 동반자인가?
나의 신앙의 길에 누가 동반자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길에 동반자가 되셔서 항상 함께 한다는 것 보다 더 기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전하는 성경 말씀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기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인생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신다는 것 이상으로 기쁜 소식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것은 그 동반자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 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셔도 내가 그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주님을 멀리 하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도움을 받을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은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자신들의 배에 예수님이 타고 계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부탁을 하자 풍랑은 금새 잔잔해 지고 위기는 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깨웠더라면 고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내힘으로 온갖 애를 다쓰다 나중에 힘이 다 빠지고 나서야 주님을 찾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전에 중국에서 한국의 연속극 대장금의 열풍이 불고 있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중국의 젊은 여성들이 대장금의 주인공인 이영애 사진을 들고 와서 성형수술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영애처럼 얼굴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닮으려면 장금이의 마음을 닮아야지 왜 얼굴을 닮으려고 합니까?
장금이가 장금이가 된 것은 장금이의 마음인데 그 마음은 닮으려고 하지 않고, 외모만 닮으려고 줄을 서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하는데, 주님의 마음은 닮으려고 하지 않고,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부러워 하고, 주님이 행하신 축복들을 가지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빼앗긴 땅을 회복하기를 소원했지만, 예수님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빼앗긴 너희 마음을 찾아오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은 인생을 최고로 위대하게 살다 가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시고, 모든 사람의 찬양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 그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낮은 마음, 겸손의 마음, 사랑의 마음, 섬김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위기속에 살아가는 최고의 처세술이요, 최고의 성공학이요, 최고의 행복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마음을 배워서 이 시대을 밝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빛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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