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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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마27:45-50) 20210327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오늘을 종려주일 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의 마지막 한주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3년 반 동안을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수살렘에 입성하실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외치면서 찬송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내어 쫓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마태복음 22,23,24장에 나오는 말세에 대한 중요한 말씀들을 하셧습니다.

▶▶수요일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부어드렸으며 가롯 유다가 은 30전에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목요일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만찬을 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그날 밤에 잡히셔서 제사장에게 가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금요일에는 제사장과 헤롯왕과 빌리도에게 심문을 받은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박히 셨습니다,.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셨고 다음날,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습니다.
일년의 절기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절기는 이번 한주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위에 교회가 세워 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오늘날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종려주일을 맞아서 매일 바라보는 십자가 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첫째, 현재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인간의 삶에 제일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시간’에 맞추어 일어납니다.
‘시간’에 맞추어 일을 나갑니다.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약속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매일 매일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시계를 보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생명’ 역시도 ‘시간’입니다.
90년이 ‘인생’을 살았다고 하면 그것은 90년의 ‘시간’을 산 것입니다.
이민생활 40년이라고 하면 40년의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이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속에 이루어진 모든 사건을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중요한 것이 ‘시간’인데 이 ‘시간’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이 2021년 3월 28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신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2021년 보다 훨씬 깁니다.
인류최초문명인 메소포타미아문명은 기원전 6천년에 시작이 된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황하문명은 기원전 2천년경입니다. 지금 중동지방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인류문명의 시작이고, 중국의 황하문명은 그 보다 몇천년 뒤에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최초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시작이 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부분입니다.

중국의 최초의 왕국은 아브라함시대보다 늦게 시작 되었습니다.
중국역사의 시작이 4천년전인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5천년으로 주장하는 것은 민족적인 자긍심을 가지기 위한 것이지 실제 한반도에 국가라는 것이 세워지는 것은 그 보다 훨씬 뒤의 일입니다.

어쨌던 인류의 역사가 최고로 길게 잡아도 7-8천년 정도 인데, 현재 우리의 시간은 2021년으로 계산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인류의 시간이 그렇게 중간에 뚝 잘라서 지금을 2021년이라고 정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것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시간을 BC 라고 하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때부터는 AD 라고 정하고 현재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BC 라는 말 대신에 CE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Common Era ,공통적인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설사 그렇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2021년 이란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계산한 시간이라는 것을 변할수 없습니다.
이미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간이고, 모든 컴퓨터에 입력이 되어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던 믿지 않던 ‘예수님의 시간’을 따라서 살고 있다는 것이 ‘우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파티’를 합니다. 자신의 ‘생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해서 정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나 ‘생일파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출생과 죽음의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이것은 모든 인간의 ‘출생’과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태어나고 죽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일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도대체 누구이길래 인간의 출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것일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표현하는 방식대로라면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나의 출생과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존재이고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지를 못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하는 문제 였습니다.

이 세상과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오직 성경만이 이 모든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죄로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해 가게 됩니다.
비참한 이야기 같지만 인간은 죽기위해서 살고 있다는 표현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 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데 그러면 왜 짧은 인생을 그렇게 더 불행하게 살고 있고, 잘 살고 있지를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바르게 죽음을 대할수 있을까?
하고 바르게 죽는 것을 생각하면 더 바르게 살수 있습니다.
바르게 죽음을 대하려고 하면 바르게 살아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현재의 유익만 생각하다보니 바르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비뚤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바르게 살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모두가 조금씩은 비뚤어져 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미국 사람들 중에 현재 감옥에 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0.7% 라고 합니다.
전체 인구 비율로 그러니까 어린아이나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을 빼면 100명중에 한 사람은 감옥에 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을 포함시키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직접 범죄가 드러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범죄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면.. 세상에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정상적인 것’에서 조금 씩 비정상적인 것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사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조선구마사’라는 드라마가 두 번 방영을 하고나서 폐지가 되었습니다. 300억이 넘는 돈을 투자한 드라마인데 역사를 왜곡했다는 시청자들의 항의로 인해서 2회 방영을 하고 폐지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드라마를 쓴 작가가 조선의 태종을 백성들을 잔혹하게 살인하는 미친사람처럼 묘사를 한 것입니다. 순전히 작가의 상상이지만 그럴려면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으면 되었을텐데 역사속에 실존하는 인물을 자기 마음대로 비뚤게 표현을 했기 때문에 심한 항의를 받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하자마자 방송이 중단이 되는 초유의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예계나 창작문화에 관여하는 분들은 항상 유혹을 받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창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적이 아닌.. 흔히 말하는 ‘삐딱선’을 타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정상적인 것에서 비정상적인 것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정상적인 삶이 조금씩 비정상적인 것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감각이 둔해 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민주당이 다시 집권을 하면서 제일 먼저 하고 있는 일이 소위 ‘평등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통과 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원에서는 이미 통과가 되었고 지금 상원에서 표결을 앞두고 있어서 기독교 단체에서 반대 운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공화당이 집권할때는 제일 먼저 한 것이 ‘이민자’를 추방하는 법을 만드는 것을 하더니 민주당은 ‘평등법’을 만들어서 동성연애를 더 확실하게 만드는 법부터 만들고 있습니다.

‘평등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동성연애’를 넘어서 이제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남자와 여자의 선택을 부모가 아닌 자기 스스로 할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기준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하고 싶은대로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유치원때부터.. 나는 남자하고 싶어 하면 그 아이는 남자로 분류가 되고, 나는 여자하고 싶어 하면 그 아이는 여자로 분류가 될 수가 있는 법을 지금 민주당이 집권을 하자 마자 추진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만들려고 하는 그런 법입니다.

유럽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그렇게 되었고, 케나다 역시 이미 이전부터 그렇게 되었고,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미국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모두 양 극으로 달려 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미국의 평등법과는 다르지만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평등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미국과 같이 되어질 것입니다.

세상이 지금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죄로 타락시키려고 하는 사탄과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결과는 세상을 지금 멸망으로 달려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이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 일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교회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코로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 올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더 어려운 세상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 인간을 이처럼 짐승보다 못하게 만들고 멸망과 심판으로 가게 만드는 주범은 죄입니다.

인간의 죄가 모든 인류에게 번졌고, 자손 대대로 저주의 고통속에 있게 된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죄의 저주를 풀어 주기 위함입니다. 저주를 푸는 것은 저주를 내리신 하나님 만이 하실수 있는 일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속에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의 저주를 풀어 주시고,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인간은 죄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게 되고,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 모든 인간이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남의 죽음을 해결해 줄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죽음도 해결해 주지 못했던 ‘석가모니’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죽음을 해결해 줄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가정도 해결하지 못해서 집을 뛰쳐 나온 석가모니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가정문제를 해결해 줄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위대한 인물도 자신의 ‘죽음’을 해결하지 못했고,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죽음의 심판’을 내리신 하나님만이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라는 것은 잘못한 것은 반드시 댓가를 치루는 것이 ‘공의’입니다.
‘사랑’은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어서 ‘죄’의 댓가를 치루어 주심으로 ‘공의와 사랑’을 두가지다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하고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인간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의 시간이 AD와 BC로 나누어 지는 것인 사람들이 만든 것 같지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만물을 바라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고, 매일 매일 시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인생에게 그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의 시간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배인 사도 바울은 (갈6:14)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독교 역사에 최고로 위대한 인물이 된 이유는 바울이 유능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사람들이 변하지만 ‘사도 바울’처럼 획기적으로 변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변화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 믿고 변화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처럼 큰 변화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옥에 가두고, 교회를 말살하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변화되고 나서는 예수 믿는 사람을 만들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마지막에는 순교까지 하게 됩니다.

그 시대에 가장 똑똑하고 인정받던 사람이 이렇게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나서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기 전에는 자신들의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가는 겁쟁이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위대한 사도로 바뀌게 된 것은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나서 부터인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았을때와 깨닫지 못했을때가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능력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놀라운 능력이 임할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십자가에 대해서 무감각 할까요?
우리가 너무나 편안하고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또한 배고픔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과거에 배고픔을 경험했던 분들도 잊어 버리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자유와 풍요로움을 주기 위해서 먼저 살다간 조상들이 얼마나 큰 고통과 피를 흘렸는지를 잊어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영생의 축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 높이며, 감사하고 의지하며 십자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십자가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영적인 문제, 구원의 문제, 신령한 문제, 거룩한 문제를 누가 풀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풀어줍니다.

(205장 1절) 예수앞에 나오면 모든 죄사하고 주의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많고 많은 문제를 모두 풀어줍니다. 나와 너와의 모든 수평적인 그래서 십자가는 십자로입니다.

사방으로 다 뚤려 있는 넓은 길인 것입니다.
▶▶죄(罪)라는 글은 넉 사(四) 자 밑에 아닐 비(非)입니다. 동서남북이 모두 안되는 게 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동서남북 모두를 열어 줍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십자가의 은혜가, 십자가의 축복이 우리를 열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겨 찢어지고 부끄럼 당하므로 우리의 부끄러움이 가리워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므로 내 모든 죄가 사하여 진 것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놀아나고 있습니까? 온갖 죄악으로 빠지게 하고 불행으로 빠지게 하며, 파멸로 빠지게 하는 것이 사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십자가로 무장해야 합니다. 교회로 나와서 십자가 그늘 아래 살아야 합니다. 이곳에 평안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긴급하고, 필요한 것은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세상은 경제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경제가 아무리 좋아져도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잘 살수록 인간은 더 죄악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깨닫고 세계최고의 과학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905년에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는데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깨닫기 이전에 태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모든 물리학의 법칙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레이가 맨 처음 발견한 관성의 법칙(뉴턴의 제1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100년 전까지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상대성이론이 깨달아 짐으로 인해서 인류의 과학은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성이론을 근거로 해서 핵폭탄을 만들고, 우주선을 쏳아 올리고 하는 모든 과학의 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인간이 접근하지도 못한 수많은 원리들이 있습니다. 이런 물리학적인 이론들은 이 세상이 존재하고, 우주가 변함없이 존재해 나가는 힘입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세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질의 세계의 힘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은 물질의 세계를 초월하고 물질의 세계보다 천배, 만배 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 영적인 세계의 힘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개개인은 지구안에서는 먼지와 같이 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구가 속한 은하계안에서는 또한 먼지와 같이 작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주는 수억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는 은혜계가 또한 수억개 존재하는 어마어마 하게 큰 것이 우주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의 세계가 얼마나 큰 것인가?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먼지를 수억개로 쪼개어 놓은 것보다 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우주가 영이신 하나님은 손 바닥안에 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존재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크기는 하나님 앞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크다 적다, 넓다 좁다 하는 개념은 인간의 기준인 것이지 하나님에게는 크고 적고하는 개념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의 법칙이 물질의 세계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영의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하잘 것 없는 것에 불과 합니다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물리학의 법칙에 의하면 물에 빠져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렇지 않게 물위를 걸으셨습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널때 바다가 갈라집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을 하다가 태양아 멈추어라 하니까 태양이 멈추어 섰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기도하니까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 갔습니다…. 이것은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 영의 세계입니다.

육체를 가지고, 육신의 세계에 묵여 있고, 물리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에게 나갈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십자가의 길에 그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물리학의 지배를 받지만, 인간의 영혼은 물리학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깨어나고, 인간의 영혼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알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세상의 지식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했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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