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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8)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믿음의 길(8)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히11:8-16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요즘은 세상이 물질만능의 시대라고 그런지 인간의 삶을 돈의 가치로 계산해 보는 그런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혼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되는가?

미혼한 남성이 결혼한 남성수준의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연간 13만달러를 더 벌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가사를 보는 일의 가치는 얼마나 되느냐 하는 연구도 했습니다. 연간 10만불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달에 1만불의 가치가 있다는 말 입니다.

일 안하고 집에서 가사를 돌보느라 남편 눈치 보시는 분들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건강에 대한 연구한것도 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을 잃어 버린 사람에 비해서 60만 달러의 연봉을 더 받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믿음‘은 ’건강‘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건강상태가 다 다르듯이, 믿음의 상태도 다릅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믿음과 건강이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가치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다른 것입니다.

건강하면 60만불의 어치의 행복감을 얻는다고 하지만,

믿음을 얻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을 얻고, 이땅에서의 평안과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에는 노아에 이어서 아브라함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2의 노아라고 할수 있습니다.

노아는 모든 인류의 육체적인 조상이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에서 살고 있던 평범한 노인에 불과 했습니다. 그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는 아브라함의 그 믿음이 하찮아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식 하나 없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잘것 없어 보였던 믿음이 인류 최고의 축복받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중이 중요한 것입니다. 끝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축복은 처음에는 반짝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갈수록 잘되는 축복이요, 끝이 창대해 지는 축복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날때는 자식이 없이 조카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전 세계인구의 반을 차지 하고 있습니다.

수십억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처음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지만 나중이 다른 것입니다. 끝이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전당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제일 많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이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노아의 믿음을 통해서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요, 준비하는 믿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믿음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주 이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것 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도신경 신앙고백의 믿음인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의 신앙고백은 믿음의 뿌리, 믿음의 기초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믿음, 훌륭한 믿음은 그것을 토대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좋은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네가 살고 있던 본토, 그리고 너의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명령 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서 다른 지방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이민을 갈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나라에 이민을 간다는 것은 큰 모험 입니다.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75세였습니다.

요즘 나이로 치면 중년이 지난 나이입니다.

젊었을 때야 어떤 모험이든 다 할수 있지만, 중년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모험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그리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서 간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이민을 떠날 것을 명령 하셨습니다

축복을 하시려면 지금 사는 곳에서 복을 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이민을 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나안은 아브라함이 지금 사는 곳 보다 더 좋은 곳이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는 것도 큰 마음의 결심을 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더 잘살고 안정된 나라라는 것이 이미 알려 졌음에도 이민오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그와 반대되는 이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라는 곳은 지금 이라크 지역입니다.

문명적으로도 가나안땅보다 훨씬 더 발전된 곳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인류4대문명 발생지 중에 하나입니다.

4대문명발생지는 중국의 황하문명, 인도와 파키스탄의 인디스문명, 에집트 문명,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문명입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 에덴동산에 나오는 두 강이 흐르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하신 가나안땅은 두 문명사이에 끼어 있는 외곽지대입니다.

변두리 지역입니다.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두 개의 큰 문명 사이에 끼어가지고 양쪽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가나안 7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불신앙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지역으로 아브라함을 이민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적인 믿음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원조이자, 선교의 원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순종의 믿음은 선교적인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100년이나 외롭게 방주를 지어야 했던 노아의 믿음도 선교적인 믿음이요, 애급의 왕자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를 버리고 그당시 노예로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세의 믿음도 선교적인 믿음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설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순종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쉬운길을 가고, 더 좋은 길을 간다면 순종하고 말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아도 갈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이 필요한 것은 그 길이 모험의 길이요, 힘든 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 도착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인타운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한인타운에서 또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한인타운에서 목회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좀 안정된 외곽지역에 교회를 했더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도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한인타운을 고집하고 여기에 있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곳이 복음이 더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지금 까지 한인타운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교회를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시험이 왔습니다.

권총강도를 연거푸 3번 당한 것입니다.

처음 두 번은 집사람과 아이둘이 같이 있는데서 권총강도를 당했고, 한번은 배장로님과 밤에 심방을 갔다오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강도를 두 번이나 당하고 나니 한인타운이 싫어 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이래도 이곳에서 목회를 하겠느냐?‘ 강도를 3번 만나게 하시고 한인타운이 정말 너의 목회지라고 생각하느냐? 하시면서

저의 믿음을 테스트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너의 고향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이민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할렐루야 아멘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말없이 순종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즐거웠다는 표현은 성경에 없습니다.

나중에는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또 하나님은 말씀했습니다. 그때도 아브라함은 말없이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즐거워 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말없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령충만할때는 ’할렐루야 아멘‘ 하지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이라고 해도 대책없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민을 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할렐루야 아멘‘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종은 하지만 그 마음에는 갈등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과 환란이 기다리지만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할렐루야 아멘‘은 없었습니다.

비록 순종하지만 마음에는 갈등과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만세 전에 모든 계획을 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정확한 지점과 시간에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마음 편한 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늘 하고 있던 일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가 소원하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꿈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능력과 역사를 이루실 때, 때로 그것은 우리에게 힘들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 아주 온화한 봄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일을 하게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갈등과 우려속에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떠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자리를 일어나서, 너의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서, 너의 안위 속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속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고 말씀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쉬운일에는 순종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냥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결심한다는 것이 뭡니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금방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에 각오를 할 필요도 없고, 겸심을 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나 이따가 점심 먹어야지’하고 마음에 각오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것, 즉 순종하는 것부터 우리의 믿음은 시작됩니다. 갈등 속에 순종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평안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나는 믿을 수 없는데, 나는 할 수 없는데, 내게는 납득되지 않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시니 어떻게 할까?’하는 갈등의 저울질 속에서 마침내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지’라고 선택하여 덥석 한걸음 내디딜 때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자리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태한 신앙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믿음에 더 큰 믿음을 향해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순종은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발을 합니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흔들리면서도 일관성있게 하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하고, 일등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로 스포츠선수들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좋은 성적만 거두는 선수는 없습니다. 잘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합니다. 전성기도 있고 쇠퇴기도 있습니다.

성적은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잘할때도 ’프로선수‘이고 못할때도 ’프로선수‘입니다.

믿음의 길도 비슷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순종‘을 직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잘하기도 하고 , 못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잘하던 못하던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다만 훌륭한 선수가 있듯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선수의 특징은 지속적으로 일관성이 있게 어느 수준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전당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훌륭한 믿음은 지속적으로 일관성있게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이민을 가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해서 마지막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말씀에 이르기 까지 일관성있게 순종을 했습니다.

그것을 충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6.25전쟁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1950년 6월29일 이었습니다. 북한이 남침해 오고 나서 4일 만에 한강 이북은 북한군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영등포에 한 진지에서 한국병사가 외로이 진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른 군인들은 다 후퇴를 했는데 일개 중대만이 진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몇 명의 미군 장교가 통역관을 대동하고 진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한국병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떠나지 않고 여기를 지키고 있는가? 그러자 그 병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 후퇴하지 않습니다. 철수명령이 있기 전에는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에서 살것입니다.

그말에 미군장교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돌아가면 즉시 지원군을 보내 주겠네..

그 미군장교는 멕아더 사령관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생하자 극동 사령관이었던 멕아더 장군은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급히 전선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 병사의 말에 감동을 받은 멕아더 장군은 돌아가는 즉시 한국참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부대는 3일을 버티다가 후퇴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속한 부대는 백골부대 18연대 1대대 3중대 였습니다.

맥아더 장군와 이야기를 나눈 병사는 충청북도 충주에 살고 있는 신동수할아버지 였습니다.

맥아더의 참전 어휘록에 보면 한국병사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 나와 있고, 멕아더 장군이 그 병사의 충성에 감동을 받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신동수 할아버지는 그 진지를 지키다가 총상을 입고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까지 지속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충성인 것입니다.

코카콜라는 발명과 판매의 신화를 남긴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카콜라 병은 아름다운 여인처의 몸매를 연상하게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코카콜라 병은 공장에서 일하던 ‘얼 알 딘’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 18세의 직공이 1923년에 만든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어느날 코카콜라 회사가 공모한 병 디자인에 응모하기로 하고 고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를 만나러 온 애인이 그날 따라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자기 애인은 몸에 착 달라붙은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주름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한순간 애인의 몸의 곡선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순간, 콜라 병을 착상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당시 6백만불이라는 거금의 상을 받아 6백만불의 사나이가 되고, 그 애인은 그의 아내가 됩니다.

 

오늘날 코카콜라는 전세계 최고의 상품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코카콜라가 이렇게 많이 팔 수 있었던 마케팅의 비밀은 광고 디자인의 일관성 때문이라는 것은 알려진 비밀입니다.

코카콜라는 여러 다양한 상품형태를 발전시켜 왔지만 병의 모양과 1886년에 처음 사용한 COCA COLA라는 독특한 C자를 사용한 글씨체만은 변함없이 일관성있게 100년이상을 사용해 온 것입니다. 일관성-이것이 바로 코카콜라 영향력의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자동차벤즈의 디자인의 특성은 모서리가 각이 지지 않고 둥글다는데 있습니다. 과거 다른 회사의 자동차디자인들은 모서리가 각이 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벤즈자동차는 변함없이 모서리가 각이 지지 않은 부드러운 디자인을 고집해 왔습니다.

벤즈나 롤스로이즈나 이런 오랜 명품자동차들의 디자인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디자인이 크게 변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스타일의 디자인 자체가 브렌드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상품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명품의 특색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상품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가치도 일관성에서 만들어 집니다.

변함이 없는 사람을 ‘진국’이라고 합니다.

‘한우물을 파라’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신앙의 가치도 일관성에 있습니다.

기도의 가치도 일관성에 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심했지만 3일을 넘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의 가치는 일관성에 있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킨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가치도 일관성 있는 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겠고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재물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너의 후손이 민족을 이룰 만큼 많아 지겠고, 그리고 이름이 창대해 지겠다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한국이 배고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많은 것이 귀찮았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적은 것이 ‘세련’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곧 재산이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실한 사람들을 많이 얻는 것이 힘입니다.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가슴에 맺힌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자녀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 섬겼지만 자녀를 주시지 않는 하나님에게 섭섭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자녀를 가질 나이도 지났습니다. 이제는 담담히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 들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으로 이민을 가라고 말씀 하시면서, 그 대가로 너에게 자녀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고, 너의 이름이 창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할지 아마 아브라함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믿지 않을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텐트안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고 했습니다.

웃어야 정상이지요, 이미 여자로서는 아이를 가질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가지게 될것이라고 하니 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다‘

오늘 성도님들에게 이 말씀이 마음에 잊혀지지 않고 가슴에 새겨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아픈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가장 약한 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는 줄로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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