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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2) “가장큰 은혜”

하나님의 은혜(2) “가장큰 은혜” 엡2:1-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일 것입니다.

‘생명’은 영어로 ‘Life’입니다. ‘Life’는 ‘생명’이라는 뜻과 또한 ‘인생’이란 뜻도 함께 있습니다. ‘인생’은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이란 말과 똑 같은 뜻을 가진 말이 ‘구원’입니다.

 

◯ 성경의 가장 큰 주제는 ‘구원’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라고도 하고,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라고도 합니다.

‘생명’을 얻기 위한 구원이라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지금은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없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육체는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분리 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 역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구원자’라고 부릅니다.

곧 ‘죄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인 것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육체는 살았으나 영혼은 하나님과 분리 되어서 죽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 왔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면서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인간의 죽음이 육체적인 죽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이 더 무서운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 왔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표현이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었더니’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인데 그 중에는 ‘자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 과 ‘자녀’를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똑 같으면 이렇게 구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들’ 과 ‘자녀’를 구분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인데 그 중에는 하나님의 자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의 구절을 보시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여기에 ‘우리’라는 말이 나오고 ‘너희는’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구를 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그 큰 사랑’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것이 ‘진노의 자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은혜’ 인 것입니다.

 

1절부터 보시면 ‘너희’ ‘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에베소 교회 교우들을 향해서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에베소교회 교우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서 하시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왜? ‘은혜’입니까?

우리 모두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대상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어 주시고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는 ‘공짜’로 주는 선물입니다.

내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공짜로 주는 것이 ‘선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 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신학적으로 논쟁을 하지만 제가 믿는 것은 ‘나는 이 세상에 태어 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자녀’ 였다는 사실입니다.

‘진노의 자녀’ 였지만 그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이왕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야 은혜가 더 되고 감동이 더 되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을까? 못받을까? 이러다 죽어서 지옥가면 어떻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 이것은 육신의 한계를 가진 인간에게 구별이 되는 것이지 영원하신 하나님, 처음이요 나중이신, 모든 시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항상 현재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 하십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눈에 보시고, 과거, 미래, 현재 속에 동일하게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사실 하나님의 시간에는 먼저 선택했다는 표현이 맞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선택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논쟁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 더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을 얻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중에 은혜’ 이고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잘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인 것입니다.

 

‘생명의 은혜’가 가장 귀하기에

첫째,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받은 ‘생명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서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살때가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잊어 버리고 살때가 많은데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그 때서야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매일 같이 죽음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생명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것이 가슴에 다가 올때가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은 우리의 삶 자체 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랑이 더 가슴에 와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주제들이 있지만 모든 이야기의 바탕은 ‘생명’입니다. ‘생명’은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보이지 않게 땅속에 있지만 그 뿌리로부터 생명이 자라게 되고 우리가 눈에 보는 것은 가지와 열매와 꽃들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열매와 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 열매가 존재할수 있게 해준 ‘뿌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뿌리가 없었다면 나무둥지도, 가지도, 열매도 존재할수 없습니다.

 

성경공부도 시대에 따라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어 왔습니다. 70년대 이전에는 주로 교리중심의 성경공부 였습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벧엘성경공부 , CCC나 네비게이터교재, 두란노의 일대일 성경공부, 사랑의 교회의 제자훈련, 전도폭발, QT, 두날개, 알파코스, 크로스웨이, 뜨레스디아스, DTS, 등으로 많이 다양화 되었습니다.

 

모든 성경공부에는 기본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과, 구원, 성경, 기도, 전도, 봉사.. 교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모든 것의 뿌리는 ‘생명’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은 너무 약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초대교회에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제일 강조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행 5: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그 시대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그 시대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당신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였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 였습니다.

 

중세시대는 교회가 타락을 해서 구원을 마치 돈으로 사고 파는 것처럼 선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와 칼빈은 아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돈으로 살수 있는 것도 아니고 행함으로 얻을수 있는 것 아니다.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은혜’ 이것이 종교개혁자들과 지난 500년 동안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던 내용입니다.

 

그러다가 100여년 전에 아주사 성령운동이 일어나면서 다시 성령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회가 말씀과 믿음만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구약의 율법시대와 같이 너무 경직되고 너무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아주사 성령운동으로 시작된 성령운동은 딱딱한 율법적인 신앙에서 다시 자유로운 성령님의 역사와 방언과 예언과 치유와 회복을 통해서 경직된 신앙생활에서 좀더 활기찬 예배로 발전하게 됩니다.

 

요즘 드리는 찬양과 예배는 아주사 성령운동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에서 시작된 예배와 찬양들입니다.

열린예배, 통성기도, 치유와 회복운동.. DTS, 모두 아주사 성령운동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빈야드교회’가 열린예배로 유명해 질 때 였습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때 과제가 ‘빈야드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고 리포트를 쓰는 것이 었습니다.

지금의 현대교회들의 예배는 모두 ‘빈야드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그것 역시 시들시들해 지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일반 성도님들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을 것입니다.

일반 성도님들은 생활하기에 바쁘고 신앙생활은 일반생활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교회의 영적상태라든지 하나님의 역사라든지 하는 부분에는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면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고 그러면 세상이 지금 처럼 어려워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전화기에 GPS가 모두 있어서 자동차에 따로 없어도 지도를 찾아 갈수가 있습니다.

구글지도를 키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으켜 줍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자세히 알으켜 줍니다.

GPS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구 위에 띄어 놓은 인공위성에서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 앞에 어떤 것이 있는지 볼수가 없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전체를 다 볼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면 영적GPS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전체를 볼수 있어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체 인생을 한눈에 보고 계십니다.

 

지금 시대는 복음의 원천이고, 성경의 핵심인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경제적인 문제도 아니고, 이념의 문제도 아니고, 인종차별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 시대는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생명’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요 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둘째,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생명을 가진 사람은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429)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에 정신을 빼앗겨 살다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축복인 영원한 생명을 잊어 버리고 살때가 많습니다.

그럴때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것입니다.

받은 복중에서 최고의 복은 ‘영생의 복’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 세상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절) 세상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 하리니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앞길이 막히고 위험이 생겨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보호해 줄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생명의 특권은 다른 생명을 낳을수 있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큰 풍랑을 일으켜 배가 위험해 지게 만들었습니다. 배의 사공들은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 지고 풍랑이 일게 되었는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때 요나가 이실직고를 합니다. ‘이렇게 큰 풍랑이 일게 된 것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을 가는 중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경고를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선원들은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나는 말합니다. ‘나를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잔잔해 질 것입니다’ 선원들은 망설입니다.

요나는 선원들을 설득해 자신을 바다에 던기게 합니다.

그러자 그렇게 무섭게 불던 풍랑이 잔잔해 졌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아마 큰 고래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를 합니다. 그러자 물고기는 요나를 해변에 토해서 요나는 다시 살아 나게 되고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 요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이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서 세상에 없었던 큰 풍랑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 교회가 요나와 같기 때문 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회개하고 바로 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헐리웃에서 예수님을 동성연애자로 표현한 영화가 만들어 져서 기독교단체에서 상영금지를 위해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도 집안이 모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고, 그영화의 대본을 쓴 작가는 부모가 태국선교사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교회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사망의 그림자로 덮여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의 힘입니다.

병이 들어 누워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생명의 힘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의 힘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5: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힘을 우리가 받을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 성령님 이십니다.

성령충만 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 하다는 것은 ‘생명’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겠습니까? ‘생명’이 충만하니까 사랑이 넘치고, 생명이 충만하니까 기쁨이 넘치게 되고, 생명이 충만하니까 모든 환경에서도 평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생명충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생명’은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생명’은 노력으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땅에 태어날 때 어머니로부터 ‘생명’을 받아서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도 나에게 생명 주세요.. 노력해서 생명을 얻는 사람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 나에게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에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만들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가장 큰 은혜라고 한다면, 우리가 할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생명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 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는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해야할 가장 크고 귀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더 많은 영원한 생명이 태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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