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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3) “은혜를 사모하라” 

하나님의 은혜(3) “은혜를 사모하라” 

(히4:14-16)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사람은 어려울 때 자신의 본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좋습니다.

어려움이 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 지게 됩니다.

 

‘믿음’도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을 예로 들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은 비바람이 쳐도 무너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 우리의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떤지..하는 것들이 더 잘 보여지게 됩니다.

 

빛이 얼마나 밝은 빛인가? 하는 것은 어둠이 찾아 오면 금새 볼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 예수 믿는 사람, 교회의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금년의 환경은 작년과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셨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려울수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더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경제가 멈추어서고 항공모함도 멈추어 서고 비행기도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100년도 안되는 짧은 인생을 고난속에 살다가 허망하게 죽음으로 끝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어 주시고 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살아 갈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최고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저는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노아의 홍수.. 그리고 애급에서의 10가지 재앙, 홍해가 갈라지고, 여호수아때 태양이 멈추어서고, 히스기야때 해시계가 뒤로 물러가고..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고.. 자연의 순리를 뒤집는 기적들을 글로만 읽고 믿음으로만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로 인해서 세상이 멈추어 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느껴 졌습니다. 세상을 멈추어 서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구나..

 

이것은 말로만 듣던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는 것이 느껴 졌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말인가? 하겠지만 세상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좋은 일은 좋은대로 나쁜일은 나쁜대로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쁜일도 하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쁜일은 인간이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말입니다.

 

말세가 되면 많은 재앙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재앙을 통해서 경고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면서 이게 무슨일이지?

하면서 건넜을 것이고

태양이 멈추어 선 것을 보면서 왜 하루가 이렇게 길지? 하면서 전쟁을 했을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지나가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태양을 멈추게 하신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세상을 멈추어 서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코로나’가 세상을 멈추어 서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멈춰 서게 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년중에 가장 중요한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지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가장 큰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며 잘사는 것입니까?

그것은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요, 그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안에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첫째, 나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시대를 율법시대라고 하면 신약시대는 은혜시대 입니다.

구약시대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어떤 행함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를 잊지 말고 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은 ‘미스터트롯’이라는 방송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뽕짝’이라고 해서 주로 성인들이 좋아했지 젊은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특히 저희와 같은 70,80세대는 팝송이나 세시봉 쪽의 음악을 들었지 ‘트롯트’는 듣지를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트롯트’가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어서 저게 무슨 일이래? 궁금해서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방송을 보면서 은혜를 받고 회개를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트롯트’를 무시했던 것을 회개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미스터트롯’을 보면서 무슨 은혜를 받을수 있을까?

이상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대중가요’들이 보통 한 곡이 3,4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고 환호성을 지르고 감동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무엇을 회개했는가? 하면 가수들은 3분밖에 안되는 짧은 노래를 부르면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데, 목사인 나는 그보다 10배는 더길게 30분동안 설교를 하면서도 감동을 주지 못하니..트롯트 가수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가요는 3분만에도 감동을 주는데, 설교는 30분을 하고도 왜 감동을 주지 못하는가?

혼자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설교가 길어서 그런가?

대중가요는 이미 수십년동안 불려 왔던 곡들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가사들입니다.

그런데도 시작을 하자마자 감동을 받습니다.

첫 소절만 불러도 감동을 받습니다.

왜 그럴까? 설교하고 무엇이 다른 것일까?

 

우리는 설교를 들을때 새로운 것을 듣고 깨달아야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도 새로운 것을 전하려고 고민을 하고, 듣는 사람도 새로운 사실을 듣고 싶어 하고 그래야 은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아는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이 ‘재탕’한다고 해서 싫어 합니다.

 

그런데 대중가요는 이미 수백, 수천번을 들어 온 가사인데도 부르고 또 부르고, 듣고 또 들으면서 감동을 받고 좋아 합니다.

클래식음악은 수백년 동안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좋아 합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그런데 설교는 왜 매주 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 은혜를 받는다고 생각할까?

 

과거 기독교 2천년 역사 동안에는 설교가 오늘날처럼 이런 설교가 아니고 성경말씀 자체를 강해하는 것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경말씀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은혜를 받고 힘차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말씀 자체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감동이 되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해석과 적용’보다 비교 할수 없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입니다.

 

LA에도 매달 한국에서 인기가수들이 와서 공연을 합니다. 우리 교회 김호인집사님이 가끔 거기에서 반주를 하러 가기에 물어 보았습니다. 가까운데도 아니고 여기에서 두시간 가까이 운전해 가야하는 곳인데 사람들이 옵니까?

물어 보았습니다. 티켓값도 100불이 넘고, 2시간을 운전해서 가야 하는 곳인데 공연장이 꽉 찬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좋아 하니까 그렇게 멀리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노래가 시작하기도 전에 열광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듭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시간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인 저 자신이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나 하나님 앞에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서 왜 그렇게 열광을 하지 못할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들으면서 왜 감동을 받지 못할까?

 

‘십자가’가 대중가요 보다 못한 것일까요?

‘찬송가’가 대중가요 보다 못한 것일까요?

 

‘대중가요’는 뻔히 아는 노래인데도 감동을 받는데 우리는 왜 ‘십자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답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십자가를 싫어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싫어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좋아하지 않기에 열광하지 않고, 좋아 하지 않기에 감동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첫사랑을 회복하라,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살펴 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가 그것일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봉사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감동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처럼 그랬습니다.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는 인생, 지옥으로 향하고 있는 인생을 구원해서 천국 갈수 있게 해 주신 은혜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의 은혜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구원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도 구원의 선물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인간의 역사에 끊임없이 고통이 찾아 오는 것은 죄 때문인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삶은 불행한 것입니다.

 

영원히 인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정부에서 내린 행정명령이 ‘거리두기’ ‘집에 머물기’입니다.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전염이 되어 죽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 ‘죄’ 입니다.

‘죄’로 인해서 죽지 않으려면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로부터 거리두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와 더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리두기’를 선포하셨습니다.

‘죄’로부터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고를 듣지 않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 입니다.

이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은혜를 보답 해야 합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두가지 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리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욕 가운데서 ‘배은 망덕한 놈’이라는 ‘욕’이 있습니다. ‘욕’ 이라기 보다 ‘꾸지람’이라 할수 있겠지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할것 없이 인간은 동일한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심은 모두에게 말합니다.

 

사람중에 가장 나쁜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망해가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민족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의로운 것 하나 없습니다.

목이 곧은 백성, 반골의 백성,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은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그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도 그 은혜를 다 갚을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 하시는 우상과 짝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시기 위해서 무수히 선지자들을 보내서 경고하시고, 타이르시고, 또 경고하시고 했지만 이스라엘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가장 나쁜 것이 은혜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일만달란트 빚을 진 사람의 예화를 말씀하셨습니다. (마18:23-34)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강조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 오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여러분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사람이나 있습니까?

 

여러분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원수는 한 사람이라도 많고, 친구는 백명 이라도 적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계속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구원의 은혜는 한번이면 충분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짐승보다는 월등히 뛰어 나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 만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때를 따라서 도와 주시는 은혜’ 또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와 더불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농사도 지을수 없고, 고기를 잡을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2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면서 먹을 걱정 하지 않았습니다.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고, 옷이 헤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실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신28:7)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려 들어 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우리는 우리의 삶의 대적이 많습니다. 수많은 대적이 잘 될수록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이런 악한 세력이 너무 많습니다. 누가 다 막아 줄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두 번째 은혜는 (신28:8)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손이 복을 받아 손이 닿는 곳마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은혜는 (신28: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으로 많게 하시리라”

자손의 복과 그리고 토지 물질의 복을 말합니다.

 

네 번째 은혜는 (신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을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이지 아니하며”

복의 근원이 되어 남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유익을 주는 이런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섯 번 째은혜입니다.

(신28:13)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

다른 사람을 인도 할수 있는 리더가 되는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가장 큰 은혜’인 ‘구원의 은혜’는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헤어질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사랑해야 합니다.

싫어 하는 사람과 영원히 사는 것은 지옥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이미 받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땅에 살아가면서도 계속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험하고 생각대로, 노력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을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까지것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예배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길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항상 넘쳐야 합니다.

사모하는 사람은 수십번 수백번 들어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십자가’ 말만 들어도 감동이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은 보기만 해도 좋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을 찾으면 사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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