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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4) “은혜를 아는 사람” 

(시116:12-17)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사람들은 인류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환경과 오염에 대해서도 걱정을 합니다. 기상이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인류의 미래는 자연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앞날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잘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우리가 섬기는 교회도 역시 똑 같습니다.

가정의 앞날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앞날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어떤 신앙과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 교회가 좋아 질 수도 있고, 더 좋은 교회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에 ‘집안에 사람이 잘들어 와야 한다’ 하는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귀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살릴 수도 있고,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새 사람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은혜를 주시고 우리로 좋은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어렸을 때부터 아주 가난하고, 어려운 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재산은 없고, 멸시 천대받고, 공부하지 못하였습니다.

대대로 가난하게 살아온 집 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집이 열심히 교회를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치고. 예의와 도덕을 어려서부터 잘 가르쳤습니다.

좋은 성품을 가지고, 좋은 일 할 수 있는 착한 사람으로 잘 길렀습니다.

그 자녀들이 자라면서 그집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찌들었던 가난은 거짓말 처럼 사라져 버리고 누가 봐도 복받은 집안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그 마을에서 제일 잘 살고 지역 유지로 온갖 영광을 누린 집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 자녀들은 성실하지 않고 망나니 였습니다.

집안은 해가 갈수록 기울어 졌습니다.

그 많던 재산은 없어지고 온갖 우환이 끊어질 날이 없는 그런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내일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세계를 복음화 하는것 이었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3년동안 제자들과 있으면서 한번도 세계를 복음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 하신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어떻게 일해야 한다고 일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도 없습니다.

세계복음화 전략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데 대한 말씀입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지 않고 머리만 좋으면 더 크게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좋은 사람을 만드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이 되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은 은혜로 가진 것 들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살리는 사람이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죽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하 자원이 아닙니다.

지하자원은 중동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땅 밑에서 그냥 펑펑 올라옵니다.

그들은 땅속에서 올라오는 원유를 팔아가지고 호의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세계에 영향을 끼칩니까?

세계적인 인물이 납니까? 학문적으로 무슨 공헌을 합니까?

 

가난할 지라도, 영적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영국은 18세기에 와서 경제적인 큰 위기를 만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총체적으로 부패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소망이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때 1720년경에 태어난 아이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 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수잔나’라고 하는 믿음 있는 어머니 였습니다.

19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보통 어머니가 아닙니다.

가난 하다고 비굴하지 않고 자식들을 말씀으로 길렀습니다.

 

당시 대학이 지성의 탑이 아니라 방종과 타락의 탑 이었습니다.

그때에 요한 웨슬레와 형제 찰스 웨슬레가 옥스포드에 다니면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홀리 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많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4명이 모여 시작 했지만 놀라운 일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성경공부하고, 은혜를 받으면서 옥스포드 대학 전체로 번져나갔고 영국은 어두움과 방황의 땅에서 빛을 비추기 시작한 땅이 되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미국에 선교사로 갔다가 돌아와서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영국은 살아났습니다. 의회가 살아났습니다. 영국의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그 이후로 영국은 모든 일에 앞서가는 나라가 되고, 질서 있고,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렇게 최고의 민족을 만든 것은 바로 옥스포드의 ‘홀리 클럽’과 요한 웨슬레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 영적 부흥인 것입니다.

 

1875년 미국에서 7남2녀 중 6남으로 태어난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무디(D.L.MOODY)라고 하는 분입니다.

웨슬레도 19형제중에서 나왔고, 무디도 9형제중에서 나왔습니다.

 

무디 역시도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아버지는 석공으로 일을 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무디는 학교 공부를 여섯 달밖에 하지 못하고 더 이상 다니지 못 합니다.

10살 때 출판사의 직공으로 일하며 종이를 나르면서 어머니를 돕는 자리로 나갑니다.

16살 때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보스턴에 있는 구두공장의 직공으로 취직을 합니다.

그는 구두직공으로 있으면서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디는 힘이 났습니다. 교회 학교 교사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사정을 합니다.

그는 열심히 아이들을 전도했습니다. 교실이 모자라 건물들을 빌려가면서 주일학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는 평신도로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백만의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시카고를 변화시켰습니다. 미국을 변화시켰습니다. 지금도 매년 무디신학교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와서 공부를 합니다.

 

가정을 누가 살립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누가 살리고 부흥시킵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은혜, 구원의 은혜, 주님을 만난 기쁨을 가진 사람이 전도하고 봉사합니다.

기쁨이 없는 교인은 힘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앞날은 누가 구할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릴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워 져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가정의 소망이요. 민족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영적 축복의 근원이 될 줄 믿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루블 박물관에 가면, 프랑스가 가장 자랑하는 것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비너스 상’과 레오날드 다 빈치의 ‘모나리자’ 입니다.

저도 과거에 미술공부를 할 때 비너스상을 많이 그려 보았습니다.

신비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나리자의 얼굴은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그 두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 합니다.

아마 그 두 작품을 빼앗아 가려고 하면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을 프랑스 사람들입니다.

 

프랑스가 세계의 일등국가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예술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사람보다 예술품에 더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가 어찌 그런 작품보다 못하겠습니까?

 

일본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절대 일등국가가 되지 못합니다.

중국도 러시아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는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왜 일등국가 입니까?

미국은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에 미국사람들이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하는 것을 보면서 참 아깝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도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풍토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요즘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들의 원인은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입니다.

 

과거 6.25 전쟁때 ‘노곡리 사건’이 밝혀지자 미국의회와 신문들은 한결 같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몇백명의 무고한 양민을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 하겠다는 것입니다.

미국군인들은 한국을 위해서 싸우다가 수만명이 죽었습니다. 전쟁통에는 그런 불상사가 당연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때 한국군인들은 월남에 가서 그보다 훨씬 더했습니다.

누가 베트콩인지 구별이 안되니까 마을에 들어가서 마구잡이로 죽였습니다.

그래서 월남정부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월남사람들이 항의 하기도 했습니다.

 

노곡리사건은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미국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국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은 안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배상하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한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까?

지금도 자기들이 잘했다고 큰소리를 치고, 한국을 도왔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은 아무리 경제적인 부를 누려도 절대 일등국가는 되지 못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미국의 정신은 기독교 정신입니다.

곧 성경의 정신입니다.

 

한국에서 세계선교사로 나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1만명이 넘습니다.

선교사님이 한달에 쓰는 돈이 평균 3천불 정도 됩니다.

1만명이면 3천만불 입니다. 일년에 3억불 이상의 돈을 선교비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 학교를 짓고, 교회를 짓고 하는 돈을 합하면 훨씬 더 많아 질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우리 한국교회가 이렇게 외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시끄럽고 싸움만 하는곳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버스를 타고가는데 두사람이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사람이 일어나서 큰소리로 꾸짖었습니다.

‘버스안에서 싸우면 되느냐, 여기가 교회인줄 아느냐 ’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주 들은 이야기 일 것입니다.

 

밖으로 보여지는 한국교회는 이기적이요, 자기들의 축복만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는 것도 사실 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구석진 곳에서 희생를 하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은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어려울때는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우리 민족은 선한 민족입니다.

 

어둡던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고 교회가 세워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세계속의 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성숙해 지리라 믿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전세계로 나가서 베풀고 나누어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우리 민족속에 점점 자리를 잡을 때 우리민족은 일등민족으로 성장하게 될것입니다.

 

루부르 박물관의 비너스 보다, 모나리자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립니다.

 

인간은 꼭 높은 지위에 있고 많은 것을 가져야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아이대로 말할 줄 몰라도 너무 아름답고 금방 태어난 아이는 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아름답습니다. 건강하나 건강하지 못하나, 배우나 배우지 못하나, 인간은 제각기 아름다움을 다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인간됨에 있습니다.

 

인격에 있는 것입니다. 성품에 있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성을 그대로 갖고 있을 때 아름다운 것이지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제 아무리 위대한 지위와 복장과 지성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는 아름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은 못 입은 것도 아니요, 가난한 것도 아니요, 인간의 참 가치인 인간성을 상실한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입니까?

사람은 짐승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여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은혜를 잊어 버리고 비인격화 되고, 비인간성을 가졌던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믿고, 다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를 잃어 버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서 다시 은혜를 깨닫고, 은혜의 세계를 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죄로 인해서 감겨졌던 우리의 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서 은혜의 세계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진리의 세계는 곧 은혜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곧 은혜의 세계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은 선물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공짜로 주는 선물입니다.

 

은혜의 세계에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자신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은 그래도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은 그래도 선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베풀려고 애를 쓰는 괜찮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나를 축복해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나는 죄인이요,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자였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고백을 하면서 늘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나는 만삭이 되지 못해서 난 자처럼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은혜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원망이 생기고, 불평이 생깁니까?

그것은 아직 나는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다 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생일에 친구들을 불러다가 파티를 하고 음식을 챙겨줍니다.

그러면 놀러온 아이들은 감사합니다 하면서 먹습니다.

그러나 그 집 아이는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듯이 먹습니다. 엄마가 해주니까 감사한 것이 아니고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래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죄가운데 태어나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서 하나님의 잔치상에 앉을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양자가 된 것입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상에 앉을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 이었지만, 하나님이 거져 베풀어주신 사랑에 힘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은혜는 이것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은혜의 세계가 보이는 것입니다.

감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만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은혜의 바다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노인분들이 세금한푼 내지 않았으면서도 웰페어를 타서 편안하게 지내고, 메디칼로 모든 병원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이 참 좋은 나라, 고마운 나라 라고 생각을 할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은 자기땅에서 살게 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입니까? 한국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중국이나, 소련에서 살던 사람들이 고국에 돌아 살고 싶어하는 데도 이런 저런 핑계로 허락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되었습니다. 큰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았습니다.

사람은 잘되면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자기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된줄고 착각을 합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앗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항상 생각 했습니다.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불평만 늘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나 많은데 은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강팍해 집니다. 사나와 집니다.

 

가장 귀한 것들은 모두 은혜로 받은 것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무엇으로 살수있습니까?

공기를 무엇으로 살수 있습니까?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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