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6) “은혜의 강”

하나님의 은혜(5) “은혜와 감사”
January 8, 2024
하나님의 은혜(7) “은혜의 계절”
January 8, 2024
하나님의 은혜(5) “은혜와 감사”
January 8, 2024
하나님의 은혜(7) “은혜의 계절”
January 8, 2024

하나님의 은혜(6) “은혜의 강”

하나님의 은혜(6) “은혜의 강” (고후 6:1-2)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난 번에 아마존선교 여행을 다녀 오면서 강물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는 강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보던 낙동강이나 한강 정도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존 강을 보고 나니 이건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정도 였습니다.

아마존 강은 제일 폭이 넓은 부분은 7키로미터 까지 된다고 합니다. 끝이 안보이는 강입니다. 제가 갔던 곳은 샛강이라고 하는곳 인데도 양쪽 폭이 300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이 아미존 강의 물이 얼마나 많은지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의 1/5이 아마존 강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넒은 강물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배를 타고 가는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강물을 타고 내려가는 시간의 차이가 2배가 더 되었습니다.

 

그렇게 물이 많으니 나무들이 잘 자랍니다.

아마존의 밀림을 가르켜서 지구의 생명줄 이라고 합니다.

밀림지대가 어머어마하게 넓습니다. 아마존의 정글은 끝에서 끝 까지의 거리가 비행기를 타고 4시간을 가야 합니다.

LA에서 뉴욕까지가 정글로 덮여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남미대륙의 태평양에서 부터 대서양까지가 밀림지대입니다.

비가 많이 오고 태양이 뜨겁기 때문에 나무들이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존을 다녀 오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속에 살아 가는 사람은 아마존의 나무들 처럼 늘 푸르릅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잘 자랄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매마르게 되면 사막 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구를 보게 되면 위도상으로 아마존과 같은 위치에 아프리카 대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프리카 대륙에는 절반이 사막입니다.

남쪽은 정글이 있지만 북쪽은 대부분이 사막입니다.

 

사막에 있는 나무들의 특징은 가시가 있습니다.

선인장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나무들에도 가시가 있습니다.

이것이 생존의 원리 입니다. 부족한 가운데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 날카롭고 공격적이 됩니다.

사막에 있는 나무들은 물이 부족한 가운데 살아 갑니다.

사막가운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잎이 넓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나뭇잎 대신에 뾰쪽한 가시를 가지게 됩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잎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가시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가시로 자신을 보호 합니다.

다른 짐승들의 접근을 막습니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 가지 입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나누어 주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부족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가시를 가지게 됩니다. 나누어 주는 삶이 되지 못하고 가시를 가지고 남을 찌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지존파 사건’의 인물들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어릴적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가진 자들에게 대한 증오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가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을 찌르게 되는 성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물질을 가지고도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적은 것을 가진 사람을 치고 빼앗아 가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무엇으로 생길수 있습니까?

이것은 물질로 생겨지지 않습니다. 세상 권세로 생겨지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생겨지지 않습니다

이 여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가지지 못하면 성도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은혜’를 가지지 못하면 사막의 나무들과 같이 가시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가시로 남을 찌르게 됩니다. 상처를 주게 됩니다.

아마존의 나무들과 같이 온세상에 물을 공급해주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그런 역활을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지 못하면 사막의 가시나무 같이 되어 버립니다.

 

나무의 생명이 물이라고 하면 , 성도의 생명줄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것이 성도의 생명줄입니다.

은혜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나누어 주는 삶, 베풀어 주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은혜가 있으면 사랑 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은혜가 없으면 사랑하고 싶어도 마음뿐이지 사랑해 지지 않습니다.

사랑대신에 가시를 가지고 남을 찌르는 삶을 살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은혜를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반드시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는 유달리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쓰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은혜’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그리고 살다가 사람들로 부터 받는 은혜 그 정도로 은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은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찬송도 은혜, 설교도 은혜, 기도도 은혜 은혜라는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그것은 은혜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요

성도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도 우리에게 이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은혜 받을 만한 시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풍성한 은혜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받아야 성도의 삶이 기름지고, 열매를 맺을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가 내 가슴 속에 넘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불경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페이먼트 걱정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교육이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은혜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은혜를 받고 충만한 가운데 살아갈수가 있겠습니까?

그전에 우리는 이 ‘은혜’라는 말의 개념부터 다시 한번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은혜’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다보니 잘못사용되고 잘못된 개념을 가질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일반적으로 쓰는 은혜의 개념은 자기 마음에 흡족하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마음에 흡족하지 못하면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 읽다가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설교를 듣다가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좋아 보이면 은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라고 하는 말의 뜻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은혜’의 일 부분 일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참뜻은 되지 못합니다.

 

미국사람들을 보면 ‘은혜’란 말을 그런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고 나서 감동이 오고 감화가 오면 ‘은혜 받았다’라는 말로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설교를 듣고 나서 미국 사람들이 쓰는 표현은 ‘I was impressed’ 라고 합니다.

‘감동을 받았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good sermon, good preachig’이라고 합니다. ‘좋은 설교’ 였습니다. ‘좋은 말씀’ 이었습니다. 라고 표현을 하지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은혜 받았다’ 라고 하는 말이 전혀 잘못되었다 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받으라고 하는 ‘은혜’의 본체는 무엇인가?

그 은혜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것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은혜를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입니다

 

‘은혜’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깨닫는 것이 은혜 입니다.

은혜의 시작은 깨닫는것 부터 이루어 집니다.

 

무었을 깨달아야 하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닫는 것이 은혜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를 깨달을 수가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첫째, 나는 죄인 인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자신이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의 강에 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사정없이 욕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자신들을 너무 의롭게 생각을 했습니다. 남보다 성경을 조금더 안다는 이유 자신들을 의롭게 생각했습니다. 남보다 기도 더하고 성전에 더 자주 간다고 해서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을 잘하는 사람들을 가르켜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나 받을수 있는데 자기도 죄인이면서 남을 판단하니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는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나니 할말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이요 로마의 시민권자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똑똑하고 권세와 명예를 가지고 있던 바울이었습니다.

자신이 최고로 의로운 사람인줄 알았던 사람 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나니 자기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는 말은 자신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인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보다 의로운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역시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앞에 얼굴을 들수 없는 죄인 들입니다

 

내가 죄인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앞에 낮아 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갑니다.

비는 하늘에서 내려서 낮은곳으로 흘러 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내립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흘러 가게 됩니다. 높은 곳에는 은혜가 머무르지 못합니다.

날마다 주님앞에 낮아지고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도 없는 죄인입니다. 하고 겸손하게 낮아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알아 갈수록 더 깊은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최고로 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 이지만 하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 볼때 하나님앞에 설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앞에 설때 나는 의로운 사람이었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를 지었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그 댓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셔야 할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성탄절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날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사람들은 ‘기쁘다 구주오셨네’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파티를 열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기쁜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치욕의 순간이요 고통의 순간 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심각한 날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허물과 죄로 인해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평생토록, 아니 영원토록 벌을 받아도 다 받지 못할 만큼 많은 죄를 지은 사람들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용서하신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용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은혜 가운데서 가장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사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나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 수가없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나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한국분들 가운데 미국에 와서 성공해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어느 한인 외과의사는 바닷가에 500만불 짜리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집의 뒷뜰이 바다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요트가 정박이 되어 있는 집입니다.

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할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의사라고 합니다.

언제나 그의 얼굴은 찌푸려 있습니다. 늘 줄담배를 피우면서 인상을 씁니다.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 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하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지만 그속에 은혜가 없으니 그의 삶이 불평 스럽고 짜증 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부요합니다.

예수의 은혜가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어도 마음은 부요합니다.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명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는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 사랑할 대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생명바쳐 사랑한 대상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서 생명바쳐 사랑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현대인들이 많은 물질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가 온전한 사랑의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과 권세는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의 사랑의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빛이 납니다.

 

사도 바울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명바쳐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해도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을 보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행20:23-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이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뜨거운 마음은 주님의 향한 사랑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 불타는 사명의 근원도 사랑에서 였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엡3:7-8)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사도바울은 스테반이 돌아맞아 순교를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증인이 되어서 지켜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사랑을 가장 외치는 사람으로 변하였습니다.

그를 이렇게 변화 시켜 놓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값없이 거저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잠기고 나고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바로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서 은혜가 떠나 버리면 마른 막대기와 같이 아무 볼품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속에 젖어 살아야 합니다.

그 큰 은혜가 넘치면 넘칠수록 더 힘차게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더욱 중요합니다.

은혜는 보답 할때 가치를 발휘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를 나누고 베풀때 은혜는 계속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서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