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8) ‘은혜의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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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8) ‘은혜의 단비’ 

(고후6:1-10)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비가 내리니 사람들의 반응이 몇가지로 나누어 집니다.

건물주인 분들은 건물에서 비가 새면 수리할 일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비즈네스 하시는 분들은 오늘도 공쳤구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키를 좋아 하시는 분들은 비로 보이지 않고 눈으로 보입니다. 산에 눈이 오겠구나 생각하며 스키탈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를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파릇 파릇 새생명을 낳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생각을 합니다. 마음껏 비를 받아 마시는 저 나무와 잔디들은 얼마나 지금 좋을까 생각을 합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인데 그것을 채워 주는 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풍요로웠던 문명이 사막으로 변해 버리고 멸망해 버린 것은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양의 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농사는 물론이고 현대산업도 그 어느 분야에서든지 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햇빛도 그렇습니다. 모든 자연의 생명, 인생의 모든 활동, 동식물의 움직임은 태양빛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태양빛이 비칠때 살아 움직이게 되고, 발전하게 되고 ,각각 자기 일을 감당 할수 있게 됩니다.

 

비와 햇빛은 모든 생명의 세계에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인간들이 강한것 같고 힘이 있는것 같지만 실제 인간의 힘으로 할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적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것들입니다.

우리를 길러 주시고,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강성하게 하시고, 돌보아 주시는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져야 우리가 모든 삶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에 비를 내리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단비도 늘 주셔야 우리가 복되게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비와 같고 물과 같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좀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되는 것이고 모든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가장 귀중하기 때문에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심령에 은혜가 있는가 없는가를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은혜가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서신을 보면 언제나 첫마디에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은혜’라고 하는 말은 구약성경에 144번, 신약에 132번 나오고 있습니다. 구약이 신약에 비해 3배로 많은 분량인 것을 생각하면 신약성경에 은혜라고 하는 말이 두배 이상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말의 뜻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공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어야 모든 것이 넉넉합니다.

가정에 은혜가 있으면 넉넉하고, 교회에 은혜가 있으면 교회가 넉넉하고, 은혜가 풍성하면 풍성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시여 은혜를 내게서 거두지 말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잘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이었던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니 그는 비참해 졌습니다.

 

어느 가정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아버지를 칼로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유한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하기 위해 어머니를 날마다 구타하고 괴롭히는 것을 보던 아들이 순간적으로 부엌칼로 아버지를 찌른 것입니다.

그 순간을 참을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순간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에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참아야 할때, 참게 하시고, 절제하게 하시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빗방울 같이 작은 것이 떨어지지만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소중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인간의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문제를 하나님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은혜의 방법 입니다.

 

늪에 빠진 황새가 빠져 나오기 위해 다리를 빼면 부리가 늪에 박히고, 부리를 빼면 다시 다리가 빠지고, 이를 반복하는 것과 같은 것이 인간의 방법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잘 살려고 애를 쓰면 건강의 문제가 생기고, 건강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녀의 문제가 생기고, 내가 편하고자 하면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고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부작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한쪽만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잘되게 하십니다.

 

일은 시작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칠때 까지의 모든 과정이 중요합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씨를 뿌릴때만 잘뿌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거두어 창고에 들이기까지 계속하여 성실히 일을 해야 합니다.

 

한 가지를 잘 한다고 해서 모든 것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입시때가 되면 대학입시 자녀를 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닐 정도 입니다.

그런데 입시때가 되면 안타까운 일들이 꼭 생깁니다.

 

어떤 학생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밤잠을 안자며 공부를 해 놓고 막상 입학시험 치는 날에 학교에 지각을 하여서 시험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갑자기 병이 나서 시험을 못치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만나서 시험을 못치르는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 은혜를 받아 은혜의 길에 들어서면 그것이 계속 되어 끝까지 은혜의 생활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이 마를때 시원한 냉수 한그릇 마시는것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갈증을 채워 줄수 있는 생수를 마실수 있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하는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자기 힘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또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산소와 물과 따뜻한 온도를 인간의 힘으로 가질수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도 우리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우리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운명’ 이라고 말을 합니다.

‘운’이라고도 합니다. 또는 ‘재수’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운’이 좋으면 잘되는 것이고 ‘운’이 나쁘면 잘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운’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때 영혼이 만족 할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자동차의 기름과 같습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자동차라고 하더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잘 달리다가도 기름이 떨어져 버리면 차는 길위에 멈추어 버립니다.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차는 돈의 힘으로 움직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의 힘으로 움직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움직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으면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나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아무리 사람이 막고, 마귀가 막아도 나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의 행위와 노력에 관계 없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은혜를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뜻이 아니고 부모에 의해 태어나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 믿음의 은혜, 선택받는 은혜는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선택해 주셨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큰 은혜입니다.

찬송가 가사 처럼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쓸데 없는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수 없도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머리 조금 좋은 사람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조금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좋은 교육받은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나로 말미암아 은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함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잘하면 많이 주시고 못하면 주신것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면 그만큼 은혜를 받는 것이고 불순종하고 하나님 계명을 거역하면 그만큼 은혜의 생활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 암는 것입니다.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을 수도 있고, 큰 은혜,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도 있고 메마른 광야 같은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똑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어떤 집은 아름답게 깨끗하게 꾸며 놓고 사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창고 같이 해놓고 지내는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 잔디가 잘자라기도 하고 누렇게 변해 버리기도 합니다.

아름답게 꽃이 피기도 하고 잡초만 무성할수도 있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혼할때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시작을 합니다.

행복을 바라보며 결혼을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결과는 달라 집니다. 결혼하고나서도 계속해서 두사람의 사랑을 가꾸어 가는 집은 행복을 유지 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신경을 안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돌보지 않는 잔디와 같이 누렇게 변하고 잡초가 잔뜩 나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결혼식을 해도 결혼한 후에 서로 사랑의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서 잡초가 나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초라하게 결혼식을 올려도 계속해서 사랑을 가꾸는 집안은 계속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다 같이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행위에 따라서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롯과 같이 소돔성과 함께 멸망해 버리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똑 같이 시작을 했습니다.

같은 고향에서 나와서 같이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대로 살아서 그 축복을 계속해서 이어 갔습니다. 그러나 롯은 욕심과 죄를 따라 살다가 결국 패가망신하고 말았습니다.

 

12명이 예수님의 제자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모두 똑 같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가장 위대한 사도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결국 자살로 끝나는 비참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입니다.

은혜를 발전 시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망쳐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용돈을 줍니다. 똑 같이 용돈을 주면 어떤 자녀는 잘 보관하고 모아 가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녀는 몇 일 못가서 다 써버리고 다른 형제에게 구걸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마다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비를 주십니다.

오늘의 은혜가 있고 내일의 은혜가 있습니다.

 

잘하고 못하는 내 행위를 따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생활하는 사람, 열심히 예배드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열매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순종하며 나아갈때 내 영혼은 날마다

시냇가의 나무처럼 자라나고 시절을 좇아 과일을 맺게 됩니다.

 

디모데후서3장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육의 고통, 영적인고통, 삶의 고통.. 모든 고통을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최고의 장소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고통이 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났기 때문에 고통이 온 것입니다.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녀의 법칙은 은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바로 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 기능을 다할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은혜를 떠나 버린 인간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불행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서 모든 것이 풍부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이땅의 식물들이 자랄수 있게 태양과 비를 주시듯이 우리의 영혼이 은혜를 공급 받을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교회 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샘입니다. 은혜의 우물과 같은 곳입니다. 영원히 끊어 지지 않고 언제나 공급 되는 은혜의 샘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은혜를 공급 받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 잘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교회와 멀어지게 되면 은혜와도 멀어지게 됩니다.

교회에 자주 올수록 더 많은 은혜의 물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언제나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교회와 멀어지는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안되는 것이 인생 인것을 깨달아서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그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영광의 보좌요, 은혜의 보좌입니다.

이 세상의 우물이 교회입니다.

목마른 영혼을 흠뻑 적셔 줄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세상의 어둠을 밝혀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수고하고 짐진 영혼들을 만족시켜 줄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풀어 줄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이와 같이 귀한 것을 알아서 이 교회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더 큰 은혜 가운데서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예배시간입니다.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고, 감사와 헌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아낌없는 은혜를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영육의 질병을 치료하시며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위로 하십니다.

잠든 신앙이 깨어나며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그러진 마음과 잘못되고 부패하고 냄새 나는 부분을 고쳐 주십니다. 마치 자동차 정비를 하고 나면 자동차가 새로워 지는 것처럼 새로운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치료 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릴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바른 예배가 있는 곳에는 넘치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총리를 세번이나 했던 유명한 글랜스턴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정사에 바빠서 분망하게 돌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도 몰라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별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주일 예배시간을 잊어버려서 예배에 빠진일은 한번도 없습니다. 내가 나라 일을 감당할수 있는 힘은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받습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셋째,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는 사람에게 더큰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는 깨닫는 사람이 그 은혜를 누릴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성숙해 지지 않으면 은혜를 깨닫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장성해서 자신도 아이를 가져보고 나면 그제서야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말을 합니다.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내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이 나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셨는가?

내가 무엇이관대 교회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하던 나를 하나님의 일꾼 삼아 주셨는가?

그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해서 생명까지라도 바치지 않으면 견딜수 없을 만큼 그 은혜가 감사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은혜를 받기만 하고 베풀줄 모릅니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이 되면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됩니다.

어린아이는 세상을 살리수 없습니다.

받기만 하고 편한길만 찾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성숙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받은 은혜를 베풀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 속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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