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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9) “풍성한 은혜‘

하나님의 은혜(9) “풍성한 은혜‘ (엡 1:3-10)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과거에 대한 회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과거를 회고 하는 법이 없습니다. 짐승도 약간의 지혜를 가집니다. 짐승도 기억력이 있습니다. 짐승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짐승은 지나간 과거를 회고해 보며 험한 일생 살았다고 생각하는 짐승은 없습니다.

 

기억력은 가지고 있지만 회고해 보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인생이 멋있는 것은 과거에 대해서 회고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인들은 이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고를 할만한 여유들이 없는 것입니다.

너무 바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살고 있기 때문에 회고를 해볼만한 마음의 여유들이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인생의 짐이 너무 많아 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현대인들은 인생의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너무나 업무가 과중합니다. 인간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2천년 후의 현대인들을 바라보면서 하신 말씀이 아닐까 할 정도로 현대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농사를 지을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하루종일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저녁이 되면 할 일이 없습니다. 날이 어두우니 일 할수도 없습니다.

전기도, 라디오도, 텔레비젼도 없으니 밤에 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자동차도 없으니 멀리 갈수도 없습니다.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어서 온돌방에 앉아서 놀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아 졌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할 일이 많은 것이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날들을 회고해 볼만한 여유들이 없어졌습니다.

회고할 여유들이 없어 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잃어 버리고 산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쫓기듯이 살다가 보면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나쁜가 하는 것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인간미가 없어지고 인간사회가 살벌해 지게 됩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은혜속에서 살아 갑니다

태어날때는 부모의 은혜 속에 태어 납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받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자기 손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 은혜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연구하고 여러 가지 들을 발명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들은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인간이 이땅에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이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빛과 공기와 물을 무엇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공짜로,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누가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것이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열심히 애는 쓰지만 중요한 것들은 은혜로 공짜로 얻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교육도 마찬가지고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를 잘 기르려고 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잘되는 것이지 부모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사업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잘되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을 하시되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전능자의 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사도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이만큼 온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똑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것 주의크신 은혜라, 한이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내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누구나 다 똑같은 말을 하게 될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이 끝날때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매일 은혜를 깨닫고 사는 인생입니다.

지난 다음에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지 말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은혜 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습니다.

매일 매일 그 은혜를 깨닫는다고 하면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삶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잘안되는 모양입니다.

지나고 나서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잘해드리면 참 좋으련만 사람들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게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고 건강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좋으련만 좋은 세월 다 보내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를 합니다.

 

돈있고 능력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를 위해 그 물질을 쓰면 좋으련만 잃어 버리고 나서야 후회를 합니다.

어짜피 잃어버릴 것 좋은 일을 위해서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만큼 사람이 은혜를 깨닫는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마음입니다.

인간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 지고 살벌해 지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은혜라고 하는 것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은혜를 아는 마음이 있는 한 인간 사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사회가 되면 그 사회는 동물의 세계가 되어 버립니다.

물고 물리는 그런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들이 생겨납니다.

왜 이런 사건들이 생깁니까?

부모의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기고 싸움이 생깁니다.

은혜를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받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빼앗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시끄럽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은혜를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어 버린 삶은 사막과 같습니다.

은혜가 없는 가정, 은혜가 없는 교회는 얼음으로 뒤덮인 남극과 같습니다.

 

어느 한국배우는 연기를 하면서 화나는 표정, 울분에 가득찬 표정을 짓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고 자기목을 조이고 한참 있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머리에 피가 몰리고, 숨이 막혀 지면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눈이 충혈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치 울분에 가득찬 사람같이 연기를 한다고 합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얼굴이 뻘깨지고 화난사람같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 인생에도 은혜를 아는 마음이 없어지면 그렇게 됩니다.

언제나 핏대를 내고, 화난 것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은혜는 ‘단비’와 같은 것입니다.

농사를 하는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단비’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수가 없습니다. 봄에 적당한 비가 와야 논에 물을 받아서 벼를 심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빛이 필요합니다.

강렬한 태양 빛이 있어야 벼의 알맹이가 튼튼해 집니다.

그리고 과일들이 맛있게 여물어 갑니다.

뜨거운 태양빛속에서 과일들은 단물이 흐르고 맛있게 익어 갈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봄에 내리는 단비와 같고,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어야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여물어 갈수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부드러워 집니다.

딱딱하게 굳었던 땅도 은혜의 단비를 맞으면 부드러워 집니다. 부드러워 진 땅에는 어떤 씨앗을 뿌려도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부드러워 집니다.

핏대를 내고, 화를 잘내고 거칠고 하는 성품은 아직 은혜를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지신 분들은 기분이 안좋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타고난 성품이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슴속에 가득하게 되면 부드러워 지게 됩니다.

아무리 살인강도라고 해도 그 어머니의 은혜 앞에는 부드러워 지듯이 사람이 은혜를 깨닫게 되면 부드러워 지게됩니다.

 

은혜가 없으면 사람은 사나와 지게 됩니다.

우리 인간사회의 많은 문제가 어디서 생깁니까?

마음이 굳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음이 강팍 합니다.

마치 물이 말라 버려 바닥이 갈라져 버린 저수지 바닥과 같은 것이 우리의 마음 일때가 많습니다.

 

가끔 가뭄이 들어서 저수지의 물이 다 빠져 나가버리면 그 저수지는 바닥이 갈라집니다. 신문에서도 그런 사진들을 종종 봅니다

논밭에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할 저수지에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풀한포기 자라지 못합니다. 물고기도 살수가 없습니다.

베풀어 주지 못하는 저수지는 저수지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도 어릴적에 여름만 되면 저수지에 가서 헤엄치고 놀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저수지에 가서 썰매를 탔습니다.

저수지는 동네의 생명줄 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 입니다.

낙시를 좋아하는 어른들에게는 낙시터가 되기도 합니다.

빨래하는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저수지를 통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에 은혜가 있으면 물이 가득하게 담긴 저수지와 같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줍니다.

즐거움을 공급해 주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신앙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도 기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마음의 저수지에 은혜의 물이 풍성하기 때문에 나누어 주게 됩니다.

 

은혜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뻐 보입니다. 다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미운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은 은혜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무엇입니까?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설교를 듣고 나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야할 길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 말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언제나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공기를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태양을 주신것도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부모를 주신것도 은혜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주신것도 은혜입니다. 건강을 주시고 좋은환경을 주신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 보다 제일 큰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은혜입니다.

 

부모의 은혜에 눈을 뜰 때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장성해도 부모의 은혜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제 한 단계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뜨는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눈을 뜨는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이 은혜가 가장 귀한 은혜입니다.

(엡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를 용서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눈을 떠야 합니다.

 

세상의 학문 가운데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고학은 과거의 발자취를 연구합니다.

땅을 파헤치고 무덤을 파헤치면서 과거를 연구합니다.

진화론 학자들은 생명체의 진화를 연구합니다.

이땅에 있는 생명체들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연구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연구합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인간의 역사는 발전해 왔는가를 연구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시작이 어디인가를 연구합니다.

 

과거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일입니다.

인간이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지금 까지 살아 온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제 어디로 갈것인가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불행하게도 여기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알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죽은 다음에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못합니다.

무덤에서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덤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하나님 앞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9: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이치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인간은 무덤에서 끝이 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는날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그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자기의 행위를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앞의 심판대에서 의롭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지옥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죄의 심판을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서야할 자리에 서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서야 할 심판의 자리에 대신 서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대신 심판을 받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는 것이 구원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을 위해 대신 심판을 받아 주셨는데 이것 마저 거부했기에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발견하고 나면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태양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시오, 공기와 물을 주신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들이 베풀어 준 은혜도 깨달아야 합니다.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를 주고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은헤를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은혜를 주기만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빚진자 들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빚을 갚아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언제나 빚진자의 마음으로 은혜를 갚고자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은혜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깨달았다고 하면서 사람으로부터 오는 은혜는 깨닫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사람으로부터 오는 은혜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것은 예배 드리고 은혜를 받으려고 나옵니다.

이러한 은혜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사람은 육을 가졌고, 죄성을 가졌기 때문에 좋은 것은 자꾸 잃어 버립니다.

은혜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한 번 깨달았다고 해서 영원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문제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를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자식이 잘하던 못하던 그 자식을 향한 부모가 베푸는 은혜가 영원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도 영원할 것입니다.

 

평소에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에 은혜가 깨달아 질때가 옵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특별히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그 은혜가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그것을 몰르고 살았을 뿐입니다.

 

2월달이 되면 발렌타인데이가 있습니다.

평소에 바쁘게 살다가 아내와 남편의 카드를 보면 새로운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번에 아마존을 다녀왔습니다. 2주동안 떨어 져야 했습니다.

거기서는 전화도 잘안되고 편지해야 너무 오래 걸리고 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미리 카드를 썼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으로 가면서 우체통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마존으로 떠났습니다.

몇일 지난 다음 집사람은 저의 카드를 받았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금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느끼나 느끼지 못하나 우리에게 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숨쉬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에 명예,권세,물질을 붙잡으려고 정신없이 달려가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삽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다 보니 마음은 강팍해 집니다.

물이 말라 버린 저수지와 같은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도 괴롭고 주위사람도 괴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기도 기쁨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매주 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우리의 말라버린 저수지에 물을 담기 위해서 입니다. 은혜의 단비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교회에 왔다갔다 하면 은혜를 깨달을수가 없습니다.

 

몇주전에 레이커스 경기장에 갔었습니다.

저는 가서 여러 가지를 느꼈습니다.

첫째는 이런 좋은 건물이 교회로 쓰여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경기에 열중하면서 즐겼습니다. 운동선수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러온 모든 사람들이 모두 마치 자기가 경기하는 것 처럼 경기에 몰두하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기를 주최하는 측도 얼마나 세밀하게 준비를 했는지 모릅니다. 경기장을 찿아온 손님들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자동차를 파킹장으로 안내하는 것에서부터 경기 중간 중간에 타임아웃이 생기면 그 짧은 시간에도 춤추는 아가씨들이 나와서 춤을 춥니다. 일초라도 관중들이 지겹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보면서 교회도 저래야 은혜를 받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봉사하시는 분들은 성도님이 예배를 최대한 잘들일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그리고 성도님들은 다른 것 다 잊어 버리고 예배에 열중하고 해야 매주일 마다 은혜가 충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셋째, 그 경기장에서 느낀 것은 ‘나는 재미가 없었다’하는 것입니다.

다들 재미있어 하는데 나는 재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왜 재미가 없었겠습니가?

마음이 딴데 있으니 재미가 없을수 밖에없습니다.

머리속에는 언제나 교회생각, 설교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는 뭐 설교 예화 할것이 없나 하고 있으니 경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예배중에 몸은 있지만 마음은 딴데 있으신 분들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천사을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예배에 전념을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어떻게 해야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을수가 있겠습니까?

고넬료 가정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 가정은 베드로를 모시고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온 가정이 모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들은 베드로의 앞에 있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앞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로 들은 것입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로 모였습니다.

은혜는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은 대로 순종하고자 할 때 더 많은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로 부터 받는 은혜를 언제나 생각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보답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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