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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10) “돕는 은혜” 

하나님의 은혜(10) “돕는 은혜” 

(히 4:14-16)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가전제품을 사면 사용설명서가 나옵니다.

설명서에 보면 기계를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가 하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보면 반드시 첨부되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라 하는 내용입니다. 간단한 문제는 어떻게 하고, 안되면 회사로 전화라고 해서 전화 번호가 적혀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 나가는 방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종교적인 방법입니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정성을 들여서 그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병이났을 때,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간접으로 종교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운동선수들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수염을 깍지 않고 경기에 나간다든가, 씻지를 않는 다든지,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 든지.. 나름대로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즙은 전도할 때 ‘교회에 갑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읍시다’ 라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이렇게 전도 할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귀신에게 시달리지 말고 왕귀신을 섬기시오, 큰 귀신을 믿으시고’ 이렇게 전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조상들은 너무나 많은 귀신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모든 자유를 잃어 버렸습니다.

 

결혼하는 것도 물어 보아야 합니다.

이사하는 것도 물어 보아야 합니다.

된장,고추장 담그는 날도 물어 보아야 합니다.

벽에 못하나 밖는 것도 물어 보아야 합니다.

마음대로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귀신에게 일일이 물어서 했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귀신이 노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산실령이 노했다. 바다의 용왕이 노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화를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귀신 저 귀신을 섬기다가 그 많은 귀신의 지배로 평안을 잃어 버리고 두려움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부정타고, 저렇게 해도 부정타고, 아침에 일가다가 무엇을 만나면 부정타고, 귀신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귀신을 섬기며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년 정초에 부적을 사고, 점쟁이, 무당에게 갖다 바치는 돈이 어마 어마 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신을 노하게 하지 않아야 일이 잘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귀신에 붙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을 좇아 내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때 병을 고치는 일과 귀신을 좇아 내는 일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지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시고 그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분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입니다.

어떠한 문제든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해결 되는 것입니다.

 

첫째, 은혜중에도 돕는 은혜가 가장 귀합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보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간다’ 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남의 도움이 없이도 살수 있다’ 라고 말 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철권통치를 휘두르는 독재자 역시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외롭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효도를 하고, 부부가 아무리 사랑을 해도 인간의 깊은 내면속에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그 외로움은 하나님만이 채워 줄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은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때를 따라 도와 주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때를 따라 돕는 다고 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 주신 다는 말씀입니다.

평소에는 곁에서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혼자의 힘으로 애를 써보게도 하십니다.

그러다가 도움이 필요한때가 되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일일이 모든 것을 간섭하는 것보다, 때를 따라 도와주시는 은혜가 더큰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도움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 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위해 돌아 가신주 날 받으옵소서

 

예수님은 은혜의 우물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서 때를 따라 도와 주시는 은혜의 샘입니다.

(요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물을 찾아서 목마른 발걸음으로 헤매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제일 큰 소원은 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샘을 파주는 것이 그들에게 제일 큰 선물입니다.

목욕은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고 평생 목욕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함부로 쓸수 없는 것입니다.

물을 길으러 가려면 하루 종일 갔다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도 깨끗한 물이 아닙니다.

짐승도 첨벙 첨벙 들어가서 먹고, 사람들도 옷입고 들어가고 하는 그런 물입니다. 진흙탕물입니다.

그물을 먹으면서 생활을 합니다.

우리들은 그들을 보면서 불쌍하게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아프리카에서만 볼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모습을 이렇게 보신 것입니다.

물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그것이 너무나 미흡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쌍한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물을 파 주셨습니다.

구원의 우물을 파 주시고, 생활에 필요한 우물을 파 주셨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온갖 환난과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우리 인류를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생명의 샘물을 파주셨습니다.

 

우리는 목마를 때마다 세상이 주는 물을 먹지만 인간의 근본적임 목마름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세상이 주는 물과 다른 것입니다.

 

이샘은 어떤 샘입니까?

첫째, 힘쓰고 애씀이 없을 지라도 마실수 있는 샘입니다;. ‘목마른 자들아 다 이라오라 이곳에 좋은샘 흐르도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이 샘에 오면 다 마시겠네’ (찬136장)

힘쓰고 애쓰는 일반 종교의 샘이 아닙니다.

과학의 샘이 아닙니다. 지식의 샘이아닙니다. 도덕의 샘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과 힘으로 파는 샘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씀이 없을지라도 우리의 모든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는 이 샘은 주님께서 파주신 생명의 생수가 흐르는 샘인줄 믿습니다.

 

둘째, 이 샘은 누구든지 마실수 있는 샘입니다.

‘이 샘에 나는물 강같이 흘러 온 천하 만국에 다 통하네 빈부나 귀천이 분별이 없이 다와서 쉬고 마시겠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이 없이 병든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분별이 없이 나와서 먹을수 있는 물이 바로 주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주시는 생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마른 자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입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선교가 되는 것은 세상에는 언제나 목마른 사람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외롭고 슬프고 불행한 분들이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생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면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 물은 신기한 물입니다.

‘신기한 샘물을 마신자 마다 목다시 갈하지 아니하고 속에서 솟아나 생수가 되어 영원히 솟아 늘 풍성하리’

사람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주님의 은혜로 해결할 때 사람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기한 샘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이곳에서 흐르는 물은 신기합니다.

죄인이 먹으면 거룩해 지고, 약한자가 먹으면 강해집니다.

강도가 먹으면 선한사람이 되고, 가정을 떠난 자가 먹으면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둘째,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야 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은혜를 많이 받으려면 은혜를 사모하고, 내 마음을 넓게 열어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사람은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몸에 있는 모든 노폐물 찌꺼기를 밖으로 내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교회에 나와서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육적인 것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사랑의 물을 많이 마시고, 미움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감사의 은혜를 마음껏 마시고 불평, 불만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온갖 질병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지만 질병을 찌꺼기 처럼 밖으로 내보내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신령한 은혜를 받아서 저주와 가난과 멸시와 천대와 환난과 시험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다 내보내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요, 성도의 삶입니다.

교회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나오는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와서도 은혜의 샘을 못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습니다. 배가 부르기 때문입니다.

헛된물을 너무많이 마셨습니다. 그래서 배가 부른 것입니다.

은혜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 준비하고 나온 사람만이 마실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지 않고 나온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 할지라도 평소에 그분을 위해서 기도해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온 사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저의 형님이 요즘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요예배도 나가고, 새벽기도회도 나간다고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교회에 가라고하면 들은척도 안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들어와서 갑자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새벽기도 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본인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그를 위해서 기도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은혜의 샘을 먹을수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된사람이 은혜를 받을수 있습니다.

주일을 위해서 토요일에 준비를 하고, 주일날도 예배시작하기 전에 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하는 사람들이 은혜의 샘을 마실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개방시대가 되어서 목사님들이라고 해도 일반성도들과 같이 옷을 입고 같이 놀기도 합니다.

그러나 몇십년전만 해도 목사님들은 화장실도 안가는 것처럼 여겨질때가 있었습니다.

 

과거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설악산 수련회에 갔다가 경포대해수욕장에 단체로 수영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목사님들이 옷을 벗고 수영복을 입는다는 것이 어렵게 여겨졌던 시대입니다.

목사님들은 옷벗기가 쑥스러워서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모두 파자마로 갈아입고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파자마를 입고 물속에 들어가니 참 볼만한 구경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정신병원에서 단체로 나온 사람들 같기도 하고 그곳에 놀라온 수영객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더 웃지못할 광경은 목사님들이 물에서 나오면서였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 까지는 그렇다치고 나올 때 파자마가 물에 젖어서 몸에 달라붙어서 더 웃지 못할 구경이 되었습니다.

 

해수욕장에 가면 수영복을 입어야 하고, 운동을 하면 운동복을 입어야 합니다.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놀때는 즐기고 노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지난번에 아이들과 야구장을 갔을 때입니다.

몸은 야구장에 와있지만 저는 야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을 던지는 피처는 어떻게 하든 타자를 잡으려고 하고, 타자는 어떻게 하든 피처가 던지는 공을 쳐서 점수를 만드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던 서로를 이겨야 합니다.

치열한 경쟁입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피처도 마음대로 공이 던져지지 않고, 타자는 타자대로 잘 쳐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합니다.

인생도 야구와 같구나, 누구나 다 이기고 싶어하지 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잘 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잘되는 날이 있고, 잘안되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운이 따르는 날이 있고, 운이 따르지 않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던 사람이 저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봤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Enjoy the game’ 하는 것입니다. 야구장에 와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제가 보기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디 있느냐, 무었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자세가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수영장에 가면 수영복을 입어야 하듯이 교회에 오면 교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교회의 옷은 무엇입니까? 예배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받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준비된 마음으로 온 사람, 빈 그릇을 가지고 온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 가는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영혼속에 쌓여 있던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새 은혜를 받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자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문제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도와주십니다.

 

‘레몬’이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이 과일은 너무 쓰고, 시어서 그냥 먹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거기다 물을 타고, 설탕을 넣으면 맛있는 레몬에이드가 됩니다.

 

인생의 수많은 문제와 고통이 ‘레몬’ 과일과 같이 쓰고, 먹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도우심,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해지면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은혜의 보좌앞에 나와서 ‘레몬’과 같이 쓰고 고통스러운 우리의 인생을 ‘레몬에이드’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레몬’이 되지 마시고, ‘레몬에이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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