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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전쟁(4) 고봉 의 마음

마음의 전쟁(4) 고봉 의 마음 행13:20-23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우리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성공과 실패가 마음에 달렸고, 행복과 불행이 마음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소월의 시에도 말하기를 ‘인생의 고와 락도 마음에 달렸소’ 라고 하고 있고,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도 마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영적전쟁이라고 했는데 그 전쟁이 일어나는 곳도 마음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라고 했습니다. 중심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보시고 그의 마음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a man after my own heart.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좇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를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설교 제목을 고봉의 마음이라고 붙인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다윗의 마음이 고봉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고봉’이라는 단어는 과거에는 사용했지만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입니다.

‘고봉’이라는 말은 높은 산의 봉우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과거에 많이 사용하던 뜻은, 되나 말을 될 때 수북이 담는 것을 뜻했습니다.

 

과거에 한국에서 쌀집 앞을 지나다 보면 쌀을 쌓아 놓고 거기에 쌀을 담는 되에다가 쌀을 수북이 쌓아 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되에다 쌀을 담으면서 깍아서 담아 놓은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수북이 흘러 넘치도록 쌓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고봉’으로 담았다 라고 했습니다

 

밥을 그릇에 담을 때도 수북이 담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에는 밥그릇에 산처럼 높이 고봉으로 밥을 담았습니다.

요즘은 밥을 접시에 담아 먹기도 하고, 그릇에 담더라도 고봉으로 수북이 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고봉으로 담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원래 ‘되’는 용량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저울과 같은 도량형기 입니다. 그러므로 되를 사용하려면 정확하게 재어야 할 것 입니다.

일본사람들은 되를 사용할 때 수북하게 담지 않고 정확하게 깍아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한국민족은 그렇게 사용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

쌀을 살 때 되를 사용하면서 항상 넘쳐야 합니다.

어떤 그릇에 담아도 수북이 담아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입니다. 정확하게 따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수북이 넘치도록 담아 주어야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술잔을 가득 채우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반만 따라서 홀짝 하고 마십니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술잔을 넘치도록 채워야 합니다.

반만 따라 주었다가는 욕이 나가고 싸움이 생깁니다

우리 민족은 정이 많습니다.

쩨쩨한 것을 싫어하고 넘치도록 풍성한 것을 좋아 하는 민족입니다.

정이 많기 때문에 싸움도 많이 하고, 정이 많기 때문에 한도 많습니다.

 

‘고봉’의 또 다른 뜻은 그릇에 채워도 더 이상 채울수 없을 만큼 최고로 담는다는 뜻입니다.

되에다 쌀을 담으면서 흐르는 데도 계속 담아서 더 이상 담을수 없을 만큼 최고로 담는 것 그것이 ‘고봉’인 것입니다.

 

‘고봉의 마음’은 이와 같이 높은 마음, 그리고 무한한 마음, 비어있지 않고 꽉 차서 흘러 넘치는 여유 있는 마음입니다.

 

성경에는 위대한 신앙과 실패한 신앙이 나옵니다.

위대한 신앙인은 무엇이 다른가?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존경받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똑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사람마다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들은 그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때 유다는 요셉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말고 애급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자고 했습니다.

같은 형제들인데 유다와 무엇이 달랐는가 하면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축복된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가장 노력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가는 일인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있는 죄악의 찌꺼기 들을 씻어 내고, 수시로 생기는 미움, 시기, 질투, 분노와 같은 죄악의 마음, 마귀가 가져다 주는 마음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열매들은 모두 ‘마음’에서 맺어지는 열매들입니다.

 

믿음은 있는데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마음의 그릇이 너무 작고 째째한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데 마음의 그릇이 깨어지고 휘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고봉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게 하시고, 최고의 왕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전쟁을 할 때 마다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이 잘못을 해도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셔서 그 나라를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흡족해 하신 것이 바로 다윗의 마음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다윗과 같은 마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봉의 마음을 가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새사람이 된다고 말을 합니다.

무엇이 새사람입니까?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삭게오는 예수님을 만나기전에 돈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돈을 위해서 그는 형제도 민족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향해 침을 뱃고 욕을 했습니다.

그래도 삭게오는 돈을 만지며 행복해 했던 사람입니다.

 

이런 삭게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을 방문하시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삭게오는 너무나 감격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예수님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어둡던 삭게오의 마음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마음이 변하였습니다. 삭게오는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남의 것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습니다.

 

삭게오는 자신이 생명보다 아끼던 재물을 조금도 아까워 하지 않고 내어 놓았습니다.

무엇이 변한 것입니까?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마음이 새로워 져야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던 마음이 남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휘어지고 틀어진 마음이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화평케 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앞에 욕을 먹는 일을 많이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마음이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을 받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만 알고, 자기만 위해달라고 하는 마음으로 있으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흔히 마음을 그릇에 비유를 합니다.

그릇은 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그릇에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담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담겨있는 것이 얼굴에 나타나게 되고, 가정에 나타나게 되고, 삶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마귀의 창고로 사용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의 그릇에는 하나님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떻게 고봉의 마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것은 다윗은 자신의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을 고봉으로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든 사람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을 고봉으로 담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가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음의 그릇에 하나님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도 함께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담을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것은 재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전부 소유하고 싶어 하십니다.

1%의 다른 것에도 자리를 내어 주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마음을 전부 다 드리는데 인색합니다.

하나님에게 마음을 다 내어 주는 것이 마치 손해를 보는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일 부분만 내어 주고 있습니다.

 

왜 주님에게 마음을 다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주님에 대해서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안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가득 담은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가득담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주님을 고봉으로 담은 사람은 자연히 사랑이 충만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모신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사랑이요, 말하는 것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마음에 고봉으로 담은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는 간절한 사랑이 그 마음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82장 1절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밤낮 불러도 아쉽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마음에 주님이 가득한 사람은 밤낮 주님을 찬송해도 아쉽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보고 있는데 또 뭐가 보고 싶은 것입니까? 마음에 사랑이 가득하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탤런트 최수종과 하히라는 잉꼬부부로 소문나 있습니다.

지난번에 두 사람이 사랑의 고백을 하는 내용이 기사로 난 적이 있습니다.

좀 느끼하고 닭살이 돗는 내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1000년 마다 우는새 눈물 바다가 될때까지,

그리고 그 바다가 마를때 까지 사랑할께…’

천년에 한번 눈물을 흘리는 새의 눈물이 모아져서 바다를 이루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그리고 그 눈물로 이룬 바다가 마를때 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표현이 아닐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만물을 만드실 때 그 속에 ‘사랑’이라고 하는 귀한 선물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모든 세포와 유전자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사랑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다”고 하였고,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 글래드스턴도 “재물이나 지위도 사랑에 비하면 쓰레기와 같다”고 하였으며, 데싱도 말하기를 “사랑 없는 인간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큰 일을 한 지도자들은 지식과 영도력을 갖춘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큰 사랑과 뜨거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기록한 시편들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고백이 절절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18: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의 전에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 세상에서 몇 년을 지내는 것보다 좋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성전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어른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여행갈때도 출장 갈때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돌아 올때도 집에 가기 전에 하나님의 성전에 들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마음의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처럼 과격하고 쉽게 흥분하고 서로에게 미움과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오늘 이 사회를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빛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황홀하게 합니다.

사람을 가치 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주님의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시작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그 마음에 고봉으로 차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가득찰 때 이웃도 사랑할수 있고, 원수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을 어둠과 슬픔에서 건져낼 이가 누구입니까?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있어야 됩니까?

하나님의 큰 사랑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이 임할 때만이 어두움도 물러가고 슬픔도 물러가고 저주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아야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 져야 행복할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수 없습니다. 지질학자들은 지구가 수억년이 된다고 말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5천년,6 천년이 넘지를 않습니다.

그전의 것은 다 상상일 뿐입니다.

인류가 인간으로 살아온 기록은 5,6천년이 전부입니다.

그 역사가 보여 주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좋은 집에 있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나라, 어느 민족의 역사도 똑 같습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집, 높은 자리만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머무는 마음의 집을 짓는 일에는 별관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허무하게 죽으면서 똑 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가는 것입니다.

인생무상, 헛되고 헛되다 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인간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지금 이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도 많고, 고통스러운 것도 많고, 원망스러운 것도 많은 지금 행복할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아 지하의 땅굴에서 오랬동안 살았습니다.

땅속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땅속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행복했습니다

그 마음에 주님이 가득하니까 주님이 꽉 차 있으니까 행복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위대한 가정, 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의 왕국이 번성 한것도, 다윗의 나라가 영원한 것도 다른 것이 아닌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고봉으로 담겨있는 그 마음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고봉으로 넘쳐 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인생이 복되고, 우리들의 가정이 복되고, 우리들이 있는

자리가 복된 그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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